작가명 : 성상영(고렘)
작품명 : 빈곤지독
출판사 : 마루&마야
딱히 치명적인 미리니름은 없는 듯 합니다.
0.
라이프 크라이를 읽다가 저자 소개에 '성상영(고렘)'이라 되어 있어, 문피아의 고렘님과 저자인 성상영이 동일인임을 이제사 알았다. 꽤 익숙한 이름이다 싶어 생각해 보니, 일전에 읽은 '신공절학'의 저자가 아니던가. 1인칭 서술자의 뒤에 비친 저자의 그림자가 유난히 인상 깊은 책이라 기억하고 있다.
라이프 크라이의 감상을 올렸더니 고렘님이 전작을 비평을 해달라 하셨는데, 이제는 내용도 가물가물한 신공절학의 평을 쓰기엔 무모한 감이 있어, 밤 12시가 가까워 오는 시각에 대여점으로 향했다. 일단 여기서 본인이 대여점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책을 가까이 하기 힘든 가난한 학생의 신분임을 밝힌다.
하여 빌려온 것이 바로 <빈곤지독>이다. 이에 고렘님을 위해 본인의 무디디 무딘 칼을 꺼내 찔러보고자 한다.
1.
제목이 <빈곤지독>이라 하였겠다. 이 제목에서 저자는 글의 목적을 드러냈다. 빈곤하기 때문에 값비싼 독물을 살 수 없는 처지인 가난한 소년이 독공(毒功)을 완성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 그것이 바로 <빈곤지독>이다.
따라서 전지적 작가인 서술자는 주인공 청운에게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이 절묘하게 활용되었다. 주인공이 스스로 한 자신에 대한 생각을 서술하는가 하면 전지적 작가의 눈에 보이는 주인공의 모든 것을 서술하기도 했다. 또한 주인공 주위의 인물의 관점에 비치는 주인공의 모습까지도 서술했다. 그야말로 주인공을 다각도로 살펴 남김없이 독자에게 밝히는 괴행에 가까운 서술이었다.
그리하여 제목인 <빈곤지독>의 의미대로, 주인공 청운이 빈곤 탓에 제멋대로 익혀버린 독공이 정점에 이르러 크게 활약하는 것으로 이야기의 마무리가 지어졌다. 제목에 비친 목적을 일관되게 수행한 저자에게 찬사를 보내 마땅하다 하겠다.
2.
<빈곤지독>이 주는 재미의 또다른 하나는 서술자가 집중하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다. 백지(白紙)에서 시작된 주인공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지켜보는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무림 및 무인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독특한 시각 역시 재미있다.
본래 주인공 청운은 평범한 점소이였다. 그런 그가 독공을 익히고 의술을 익히며 점차 강해졌다. 그러나 '독공을 익히기 위해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의술을 활용한 것, 즉 돈에 연연하는 과정을 통해 일반적인 무림인과는 궤를 달리하는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다.
그의 눈에는 정의를 숭상하는 정파의 무인조차 깡패와 다름없으며, 강자존의 법칙마저도 살인 방조라는 위법을 저지르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눈에는 정과 사의 구분이 없으며, 스스로 무림인이 아니라 여긴다.
이러한 과정이 그의 성격과 사고방식의 형성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그는 분명 특이하기 그지없는 인물이며, 특이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었다. 곧, 주인공을 바라보며 유쾌하다고 느끼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3.
<빈곤지독>은 앞서 말했듯 주인공을 중심으로 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그 부작용으로 주인공 외의 인물에 소홀한 면을 보였다.
최초에 주인공에게 동기를 부여한 흑명마제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조우했고, 유현산과 갈연은 사건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한 채 곁다리로 등장하다가 에필로그에 이르러서야 재조명되었다. 곽이연 역시 성수신의와 청운을 연결하는 역할로 최초 등장했으나, 그 이후 역할을 잃었다. 당세아도 납치당한 것을 끝으로 이야기의 진행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되었으며, 성지연은 당세아를 구하는 것이 역할의 전부였다.
그 밖에도 실로 많은 인물이,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죽지 않은 인물 중 주인공 청운과 그에 대적하는 세력을 제외하면 사실상 명확하게 역할이 부여되고 활약한 인물이 거의 없다.
그것은 주인공을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강력한 힘을 소유한 인물'로 설정한 것에 일부의 이유가 있다.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 결국 홀로 움직이는 것이 더 나으며, 결국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을 진행하는 것은 물론 마무리까지도 그 혼자만이 사건의 중심에 있을 뿐이다.
또한 미완성된 인물인 주인공의 완성에 소재와 사건이 영향을 미칠 뿐이며, 완성된 인물의 개입이 적다는 것이 나머지 이유다. 결국 그에게 성격적 변화의 원인을 제공한 인물은 모두 죽었다. 죽은 인물보다 산 인물이 훨씬 많은데도, 산 인물 중에는 그의 완성에 영향을 끼친 인물이 기껏해야 유현산 정도에 불과하다. 이 역시 인물의 역할 설정이 잘못되었음을 시사한다.
지나치게 비중이 높은 주인공, 그리고 주인공을 목표로 하는 대적자, 그 결과는 지나칠 정도로 주인공 중심적인 소설의 탄생이며, 그 반작용으로 주인공 이외의 인물이 지나치게 비중이 낮아지는 현상을 초래하였다.
4.
<빈곤지독>을 포함하여, 저자인 성상영이 보이는 특징 중 하나는 묘사의 배제다. 부족이나 절제가 아니라, 그야말로 배제다. 심지어는 인물의 외형조차 제대로 묘사하지 않으며, 무협소설의 백미라 일컫는 전투조차 묘사가 배제되어 있다. 묘사를 대신하여 추상적인 설명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저자 성상영은 묘사의 배제를 통해 이야기를 빠르게 전개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는 극히 최소한의 묘사만을 지극히 평범하게 표현하였으며, 그 외에는 묘사를 배제함으로써 독자를 이야기의 전개에 집중하도록 했다.
묘사를 배제한 대신에 선택한 것은 빠른 전개다. 저자는 묘사를 할 틈을 만들지 않기 위함인지 잠시도 정지 화면을 등장시키지 않는다. 인물이 끊임없이 말하고, 움직인다. 서술자의 눈도 끊임없이 옮겨다닌다. 서술자는 묘사보다는 관점을 이동하는 것으로 독자에게 이야기와 상황을 전달하며, 결국 독자는 묘사가 부족하기에 머릿속에 그려낼 수 있는 것은 없는 대신에 간단명료하게 이야기의 진행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의도적이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저자의 특징인지는 아무래도 판단하기 힘들다. 그러나 묘사의 부재는 결국 글에 흥미를 떨어뜨린다. 독자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 중 하나가 누락되어 있기 때문에.
5.
<빈곤지독>의 이야기 진행에 대한 불만이 하나 있다. 바로 '반전이 없다'는 점이다.
반전을 일으킬 여지는 적지 않게 있었다. 반전을 일으킬 수 있는 인물도 많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반전은 없었다. 어째서인지를 생각하면, 솔직한 생각이지만, 7권에서 그대로 완결을 내기 위함이 아닐지.
내용상 중요하게 언급되었던 인물은 모두 드러났다.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주인공 또한 완성된 인물의 형태로 디자인되었기에 변화할 여지가 없었다. 반전을 일으킬 만한 사건의 싹은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하여 결국 이야기의 절정 직후 바로 결말이 났다. 반전은, 없었다.
물론 반전이라는 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절정 직후 결말이 오는 것도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7권의 중반까지만 해도 반전을 일으킬 여지는 충분히 있었다. 완결권의 바쁜 진행이 반전의 여지를 없앴다고 생각하면 안타깝기가 그지없다. 8권까지 가지 않기 위한 행보가 7권에 담겨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아쉽기가 짝이 없다.
6.
이는 단점이라기보다는 아쉬운 점이라 할 수 있는데, <빈곤지독>에서 드러난 주인공 청운의 사고방식은 결국 '신공절학'의 주인공 진다전의 것과 결정적인 차이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차라리 저자가 동일인이 아니었다면 크게 문제삼을 것도 아니련만.
무림인은 깡패고, 정파조차 위법자의 집합에 불과하며, 무공은 결국 뛰어난 초식이나 내공이나 깨달음보다는 강인한 육체가 우선한다는 등, '무협'을 바라보는 서술자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은 '신공절학'의 당시에 비해 그다지 발전하거나 변화한 바가 뚜렷하지 않다.
무릇 저자는 서술자가 아니며, 또한 서술자 역시 저자의 화신이 아니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쓰는 글마다 똑같은 눈으로 대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다른 관점을 원한다면 생각을 바꿔야 하며, 생각을 바꾸는 것은 저자 본인의 사고방식까지 완전히 바꿀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다. 단지 눈의 위치를 바꾸면 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가면'을 쓰면 되는 일이다.
'전작과 별로 다르지 않다'라는 말을 듣는 것은 작가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모욕이다. 그것을 자처해서는 재미있게 읽는 독자로서 탐탁지 않다.
7.
<빈곤지독>은 분명히 재미있는 소설이다. 그러나 그 재미가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는 점이 아쉽다.
플롯의 구성 단계에서부터 주인공에게 너무 큰 무게가 지워지고 주인공 외의 인물이 너무 가볍게 취급되었다. 역할 설정의 잘못된 배치, 중요도에 상관치 않는 등장, 사건과 인물의 약한 연계성, 사실상 <빈곤지독>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불어 '신공절학'과 <빈곤지독>의 사이에 저자에게 발전이 보이지 않는 것도 '성상영'이라는 이름에 대한 기대에 한계선을 긋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부디 저자가 현재 집필중인 '라이프 크라이'는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 마지않으며, 더 발전된 모습을 보이길 기대해 본다.
덧붙여, 의도치 않게 혹평이 된 본문에 대해 저자인 고렘님께 사과와 함께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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