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비평란

읽은 글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작성자
Lv.1 백민산
작성
07.08.18 14:47
조회
2,927

작가명 : 흑로

작품명 : 북해일도.

출판사 : 뿔미디어.

불친절한 작가의 능청스러운 이야기 한 마당.

 

 저는 우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밝히고자 합니다.

 무협이 소설인지 아닌지, 아니 무협 중에 자신 있게 소설이라고 밝힐 수 있는 작품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대개가 별 구분 없이 무협지 혹은 무협소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선 소설적 이론에 근거해서 작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또한 무협소설은 무협, 무림이라는 비현실적인 세계의 일을 이야기하고 있기에 무협이라는 무대, 그곳에서  작가가 누릴 수 있는 자유, 그 암묵적 자유에 대해서도 넓게 이해를 하고 작품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사족을 붙이자면 저는 이 작가와 그 흔한 토론방등에서도 대화 한 번 없었고 쪽지나 댓글 한번 없는 사이입니다.

즉, 저에게는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이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제 글을 읽는 분들이 있다면 꼭 소설적 이론에 의지해서만 살펴보았다는 사실을 인정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또 한 마디를 더하자면 비평이란 칭찬을 하기 위해서 쓰는 글보다는 문제를 밝히는 쪽으로 치우친 것이 어제오늘의 흐름이 아니라는 사실을 첨언합니다. 그리고 비평란의 비평총론으로 올라있는 onestar님의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저의 자세를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밝히지만 onstar님 또한 전혀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참고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북해일도, 북쪽바다의 칼 한 자루라는 이 제목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북해일도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동양의 오행사상에 근거해서 살펴보면 북쪽은 겨울을 뜻하는 것이며 사람으로는 늙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북쪽이 상징하는 계절은 겨울이며 색으로는 검은색이다. 그리고 북쪽은 어둠을 뜻하며 모든 것을 수렴하는 의미로 읽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다란 고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가?  그리고 북망산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쪽은 죽음의 세계를 뜻하기도 하고 북해에 곤이라고 하는 신비한 동물이 살고 있다는 말에 의하면 신비한 세계라고도 할 수 있고 또 왕이나 성인은 북쪽에 등을 기대고 남면(南面)하여 앉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글의 제목인 북해도 그런 의미의 북쪽 바다일까?

 그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불친절한 작가는 분명히 다음과 같이 단서를 제공해줬다.

"북명에는 물고기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고 한다. 곤의 크기는 거대하여 알 수 없는데, 어느 날 이 곤이 변하여 붕이 된다. 곤이 붕이 되면서 천지와 시기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으면 곤이 붕이 되어 남명으로 날아갈 수 없다. 또한 곤은 붕으로 변해도 결코 남명이상으로 날아가지 않는다."

 결국 이 이야기 속에 주인공의 장래와 미래의 시련이 설명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종결의 방향까지 설명되어 있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모든 생각들은 접어버리고 책장을 넘겼다.

뜬금없이 허수아비 서방이라는 제목의 글의 남편이 점점 허수아비가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대인이 되어가는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참으로 생각 없음에, 그 부조화에 아쉬워하던 느낌을 떠올리면서,

 

 인생, 그것은 계속 되어지는 행운의 연속인 것인가? 혹은 계속되어지는 시련의 연속인 것일까?

어린 주인공, 소락 그에게는 왜 계속 행운만 이어지는 것일까?

첫 번째 행운은 강도질에 성공해서 큰돈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곧 잡히고 만다. 그러나 그것은 더 큰 행운이 되어버린다. 대충 살펴보면 사실 부모의 얼굴도 기억을 못하는 고아가 갑자기 강도행위의 피해자로부터 하인이 되는 행운을 맞게 된다.

즉, 더 이상 끼니 걱정이나 편한 잠자리에 대해서 고민 할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는 말이다. 그리고 곧  절대고수 중 일인인 피해자의 아버지, 그 고수의 제자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다시 양자가 된다. 즉, 피해를 입혔던 사람의 동생으로까지 이어지는 행운이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원수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무상귀 조비로부터도 그가 얻은 깨달음을 값없이 물려받게 되고  냉심마녀 설수진에게  납치를 당하는 듯하나 결국은  설수진의 남편인 절대고수 양이문으로부터 새로운 극쾌의 도법을 물려받고 고월이라는 명도까지 물려받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물론 스스로 사양을 해서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게 되지만 천수곡의 곡주의 자리까지 아무런 노력도 없이 굴러들어온 호박처럼 바로 얻게 된다.

즉, 그런 주인공이 이 시대에 있다면, 그것도 노숙자 생활을 하다가  불량배들에게 쫓기게 되어서 도망을 치다가 넘어졌는데 무엇인가 손에 잡혀서 살펴보니 현금이 가득 찬 큰 가방이었고 미친 채 하고 낸 입사원서가 대기업의 합격 통지서로 변해서 날아오고 또 불로소득으로 로또를 샀더니 몇 주간 일등 당첨자가  없어서 계속 누적에 누적을 거듭해온 로또에 당첨 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무협식으로 얘기하자면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천고의 영약이 나오더니 곧이어 천고의 비급이 나오고 천하무적의 명검이 다시 나오는 식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아쉽고 납득이 되지 않은 것이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고아가 소락이라는 제법 그럴듯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차라리 나는 같은 곳에서 뒹굴던 나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개새끼라고 불려서 그것이 이름이 되어버렸고 자연스럽게 중국식으로 부르다보니  아소구(兒小狗 : 어린 개 새끼)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면 하고  생각해 봤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인연의 끈이 닿아있음을 느끼고 유한추가 작은 즐거움이라도 맛보는 삶이되라고 소락(小樂)이라고 지어줬다고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즉, 소설인 이상 신경을 써야 할 수밖에 없는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랬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 말이다.

 서두에 불친절한 작가라고 썼는데 고인이 되신 김동리 선생의 작품을 조금이라도 읽어본 독자는 금방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상고, 이로, 난로, 월로 등등 거의 모든 장에 한자를 함께 써 줬다면 나 같은 사람은 훨씬 이해가 빠르고 읽기가 편했으리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참으로 불친절한 그러면서도 뻔뻔스럽게까지 여겨지는 작가의 영리함에 나는 고소를 짓고 말았다. 그것은 세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 번째 이야기는 거의 모든 사건이 앞뒤 정황설명도 없이 불쑥 일어나버려서 어어! 하고 있으면 의뭉스럽게도 상당히 진행이 된 뒤에 불쑥 그 개연성 혹은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두 번째는 형식면에서 야! 이것 대하소설의 형식을 취한 것인가? 하고 보면 어느새 현재 주류를 이루고 있는 독자들의 수준(?)과 취향(?)을 잘 알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듯이 다시 주인공의 뒤를 쫒아가게 하고 있다.

 세 번째는 소설과 무협지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쉽게 읽히게 유혹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평하자면 나는 이 글이 재미만을 찾아서 책을 선택하는 독자들에게 거부당할만한 이유를 별로 발견해내지 못했다.

계속 이어지는 행운, 드디어 미인으로부터 감사의 대상까지 쉽게 되어버린 주인공 소락이 특별히 거부감을 갖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인 이상 재미뿐만 아니라 무엇인가 느끼고 생각할 수가  있어야한다고 말하는 독자들에게도 어느 정도는 부합하고 있다는 말이다. 사실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말하자면 작금의 무협시장에서 소설적 주제를 갖춘 책들이 양쪽의 독자를 아우르기 어렵듯이 으악! 쾅! 식의 글 또한 두 쪽 모두를 불러 앉힐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이 글에는 한 가지 힘이 있다.

 유한추가  주인공에게 남긴 말.

 "소락아 너는 겨울이 되렴. 차가운 겨울이 되어 북해풍도에 어울리도록, 가을은.......가을은 외롭단다." 등등의 시적이면서도 쉽게 읽히는  문장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고도 쉬우면서도 무언인가를 떠올리게 하는 탄탄한 서술구조와 길지 않은 문장들이 안고 있는  내용에서 어느 정도는 아쉬움을 달래주리라고 본다.

 물론 아쉬움은 남는다. 우선 앞에서도 밝혔듯이 연이어지는 행운이 세상의 이야기와의 거리를 스스로 멀게 해버렸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협이 소설이라면, 현재정도의 분량들을 그대로 유지하려면 이제는 다양한 군상들을 다루고  다양한 삶, 다양하고도 복잡한 세상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라도 대하소설의 형식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아직 읽지 않은 분들 중에 마땅히 고를만한 책이 없어서 고민 중이라면 쉽게 주인공을 따라 갈 수 있게 꾸며진 이야기니 한 번씩 읽어보라고 권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친다.


Comment ' 19

  • 작성자
    Lv.39 킹독
    작성일
    07.08.19 00:19
    No. 1

    그냥 한달음에 쭉~ 읽어 버렸습니다.
    대단한 분석력이시군요.
    제 글도 한번 평가받아 봤으면 하는 충동이 일 정도로요. ㅎㅎㅎ
    그런데 마지막 몇 단락을 읽고 나니 북해일도를 읽고 싶은 충동도...
    아무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 댄간
    작성일
    07.08.19 03:34
    No. 2

    전체적인 내용에는 동의합니다.
    요즘 무협은 기연이 남발하는 게 많죠.
    주인공은 항상 20대에 무적이 되고,
    여자도 무조건 예쁜 여자만 만나는 등
    천편일률적이라 지루할 수도 있죠.

    그러나 소설과 무협을 따로 보는 건 이해가 되지 않네요.
    소설이란 것 자체가 허구인데
    기연에 기연을 거듭하든 그것은 허구라는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처음 소설과 무협을 다르게 두시길래
    정말 다른가 하고 국어사전까지 검색해봤습니다.

    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허구적으로 이야기를 꾸며 나간 산문체의 문학 양식. <네이버 국어사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onestar
    작성일
    07.08.19 04:17
    No. 3

    소설과 이야기글의 같은점은 둘 다 허구 입니다.
    소설과 이야기글의 차이점은 개연성의 유무 입니다.

    그 차이가 소설과 이야기글로 나누어 집니다.
    처음 중국번역무협소설이 줄간할 당시 비평가로 부터 개연성을 인정 받지 못해 무협지로 불리워 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무협소설이라 부릅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십시요.
    단순한 허구의 이야기를 소설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2 Nui
    작성일
    07.08.19 09:35
    No. 4

    좋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백민산
    작성일
    07.08.19 11:02
    No. 5

    acquabroad님.
    안녕하세요.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은 읽을만한, 밝은 눈으로 살펴보면 무엇인가를 (순,역의 양면에서) 생각해봐야 할 수도 있는, 그냥 요즘 나오는 책들 중에서 걸리지 않고 읽힐만한 글이라고 추천하고 싶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백민산
    작성일
    07.08.19 11:06
    No. 6

    댁호님. 감사합니다.
    처음 무협과 소설을 나눈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금까지 수 없이 개연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설과 이야기의 차이는 똑 같은 줄거리의 이야기일지라도 인과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글은 소설이고 인과관계가 없이 사건만 나열 된 것은 이야기로 정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건강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백민산
    작성일
    07.08.19 11:10
    No. 7

    onestar님.
    반갑습니다. 저 역시 소설의 정의를 배운바 있기에 허구가 어떻게 소설작품으로 완성되어지는지, 허구가 아닌 소설이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문제는 바로 개연성, 그리고 더 나가서 인과관계가 있는 글이냐 없는 글이냐 이겠지요. 그리고 우리는 개연성에 대하여 광의의 시점에서의 시선으로도 살펴봐야 하지는 않을런지,.......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백민산
    작성일
    07.08.19 11:11
    No. 8

    nui님.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기를 기원 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六道熱火
    작성일
    07.08.19 17:49
    No. 9

    주인공이 행운만 가졌다는 결론이 나온 것은 주인공의 불행을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과연 주인공이 행운만 가졌을까요?
    유소락은 유한추의 돈을 훔친 이유로 인해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유한추가 조무의 이목을 속이기 위해 일부러 힘없는 것처럼 행동했다는 것을 볼 때 유소락은 어떻게 보면 자신의 의지긴 하지만 불운하게 유한추의 계략에 얽혀 들어가게 되고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죠. 물론 어찌보면 유한추의 변덕이라고도 볼 수 있는 마음 때문에 그 불운이 행운으로 바뀌었습니다만, 분명 위기가 존재했다는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유직의 제자가 된 것도 유소락이 유한추와 유일한 연관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행운'이 아니라 '인연이 이어졌다' 라고 불리는 게 마땅합니다. 유직의 양아들이 된 것도 마찬가지로 유소락과 유한추가 뇌옥에서 더없는 유대감을 만들어 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유대감만을 설명하는 데에도 각각 책 반권씩을 들여가며 설명하였습니다.) 이것 또한 '행운'이 아니라 '인연이 이어졌다' 라고 불리는 게 마땅합니다.
    원수라고도 할 수 밖에 없는 조비에게서 심득을 이어가는 것 또한 행운이라고 불리기 어렵습니다. 이 기연을 얻는 시초는 악도영과 탁무군의 잘못된 오해에 얽혀드는 것부터 시작해서 탁무군의 아버지로부터 일장을 얻어맞아 빈사상태에 들고 결국 몸에 독이 되는 빙단을 먹는 것, 조비의 악연에 얽혀 같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 빙단의 부작용이 싸우는 도중 발작한 사실이라는 안좋은 사실도 분명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언급한 것들 모두다 한가지라도 얽혀들게 되면 분명 불운이라고 충분히 불릴만한 것들이죠. 조비가 굳이 유소락에게 심득을 전한 것도 자기 목숨은 얼마 안남았는데 주변에 있는 믿을만한 사람이 유소락 한명밖에 없는 이유 때문입니다.
    양이문에게 도법을 전수받은 것도 마찬가지, 용가의 자식에게 죽을 뻔한 불운이 분명 존재했었고 용가의 자식의 인피면구를 뒤집어쓰고 양이문게 인계될 상황은 자칫 잘못해서 계략이 어긋났으면 그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설수진과 양이문 또한 북해에 상당히 인연이 깊은 자고 두 부부가 조용히 은거하려는 상황에서 북해일도의 후계자인 유소락이 등장하니 유소락에게 자신들의 진전을 잇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건 단지 '행운'이라기 보다는 여러가지 사건이 유기적으로 얽혀서 발생된 '필연' 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5 日越
    작성일
    07.08.19 20:15
    No. 10

    댓글 잘못달았었네요..
    위에 마신에 대한 글에다 쓴 댓글이었는데 왜 이쪽에 달렸었는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 댄간
    작성일
    07.08.20 00:45
    No. 11

    아하 개연성과 인과관계로 갈리는 군요.
    좋은 거 배웠습니다.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백민산
    작성일
    07.08.20 12:59
    No. 12

    六道熱火님.
    저는 주인공이 고아라서 불행한 삶을 살아온 것은 보았으나 그 외의 불행은 보지를 못했습니다. 물론 그 시련들이 모두 행운으로 바뀌어버리는 시련들은 보았습니다.
    즉, 강도짓을 한 이상 그에 응하는 벌칫을 받는 것이 세상의 사례고 그러다보니 그것이 일반의 상식이 되어버렸지요. 그러나 주인공에게는 아무런 벌도 없이 그냥 행운으로 변해버리지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런 비상식적인 결과들에 대해서는 개연성을 논하지요. 그러나 저는 분명 무협이라는 세계를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고 개연성의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해서 문제가 없어지는 것일까요?
    그리고 강도짓을 한 단 하나의 원인(인)에 줄줄이 행운(과)가 연결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과연 주인공같은 사람이 몇명이나 존재할까요?
    만약 육도열화님이 소설이니까 그렇다고 말씀하신다면 저는 소설이니까 바로 그 점이 문제가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의 맺는말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백민산
    작성일
    07.08.20 13:04
    No. 13

    댁호님.
    '쓰레기' '양판소' '야설'등이라고 불리는 일부 작품(?)들을 소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아주 적을 것이라고 보십니까?
    즉, 저는 많은 무협의 책들 중에서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작품이 그렇지 않은 글보다는 훨씬 적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비판자들의 입에 가장 자주 오르내리는 문제점이 바로 개연성이었습니다. 또한 소설이론의 첫 강의에서 가르치는 것이 바로 인관관계가 분명히 드러나 있는 이야기는 소설이고 똑 같은 결과의 이야기일지라도 인과관계가 드러나지 않은 글은 이야기로 치부해버린다는 것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六道熱火
    작성일
    07.08.20 14:52
    No. 14

    백민산님
    유소락이 유한추와 연결된 인연을 단순한 유소락의 행운이라고 보십니까?
    유소락이 유직의 양아들이 된것을 단순한 유소락의 행운이라고 보십니까?
    유소락이 조비의 심득을 이은 것을 단순한 유소락의 행운이라고 보십니까?
    유소락이 양이문의 절기를 이은 것을 단순한 유소락의 행운이라고 보십니까?

    하나의 원인에 바로 줄줄이 행운(과)가 연결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분명 그 중간에 안좋은 사건도 존재하고, 왜 유소락이 그런 인연을 이을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설명도 충분히 내용 안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런 안좋은 사건을 거쳐거쳐 결국에 좋은 인연으로 연결되는 것이죠.

    주인공이 어떠한 기연을 이었을때 기연을 얻을때까지 진행된 내용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한 주인공의 행운이라고만 생각한다면, 모든 무협소설은 단순히 행운이 분에 넘치는 주인공밖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백민산
    작성일
    07.08.20 15:57
    No. 15

    六道熱火님.
    우선 저는 그 누구와도 논쟁을 벌리거나 낯을 붉히고 싶지는 않다는 것을 먼저 밝힙니다. 그리고 되묻고 싶군요. 과연 소락이 자신이나 타인을 위해서 유직의 양아들이 되기까지 한 일이 무엇인가요?
    오직 자신을 위해서 강도질을 하고 유한추가 가자고 하자 따라서 간것 외에 무엇이 있었지요?
    혹은 강도질이라는 분명한 원인이 있으니 그후에 행운이 중첩 되건 말건 비평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인지요?
    더구나 저는 공격적이거나 비판의 어조로 글을 끌고가지도 맺지도 않았음을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첨언을 하자면 강도질의 댓가로 행운이 중첩되는 그런 내용도 비평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면 과연 무엇이 비평의 대상이 되어야 할지, 물론 조비의 심득을 얻는 과정에서도 함께 싸움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조비를 위한 행동이었습니까? 자기가 살기 위한 본능적인 대응이 아니었을까요. 물론 그 행위는 절대 비평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라는 합의를 쉽게 도출해 낼 수 있는, 즉, 상식적인 행동이었기때문입니다. 반대로 소락이 다른 동료가 유한추에게 강도질을 하는데 불쌍한 환자(?)를 상대로 악한짓을 한다고 말려준 댓가로 유한추의 하인~동생 등등이 되었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지겠지요.
    소설은 분명 허구의 세계이고 모두가 꾸민 이야기입니다. 역사소설이라고 해도 약간의 사실위에 갖가지 허구(거짓)를 덧잎히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 소설은 비록 허구의 이야기지만 그럴듯한 이야기라고 못을 박아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분명히 밝혔습니다. 무협이라는 특수한 세상과 그에 인한 작가의 자유를 인정하고 살펴보겠다고요.
    아무리 무협이라고 자기 친지를 죽이거나 피해를 입힌 사람과 결혼을 하거나 별 이유 없이 한 편이 될 경우 많은 독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어 있습니다.
    즉, 상식적인 선에서 쉽게 동의 할 수가 없기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도, 더구나 분명 중첩 되는 행운, 그것도 거의 불로소득적인 행운이 이어지는 것은 쉬 납득하기가 어렵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요?
    소락이 물론 형 혼자서 감옥 생활을 자청해서하고 있는 것을 보고 달려갑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그리하소 싶다는 자신의 감정을 만졳ㅣ키기 위한 행위였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조비와 협력해서 대항한점은 아까 밝혔습니다. 그리고 의원이 몰래 독단을 먹였는데 그 결과도 죽지 않고 오히려 조비만 피해를보고 자신은 공력이 높아집니다.
    혹시 주변에 이렇게 나쁜짓, 아니 선한행위라도 좋습니다. 한 가지 행동의 결과로 행운이 중첩 되는 사람을 보거나 이야기를 들은적이라도 있는지요?
    그리고 댓글을 달아준분들 중에서 저와 비슷한 시각으로 본 사람들도 잘못 읽었다는 말씀인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백민산
    작성일
    07.08.20 16:06
    No. 16

    덧붙입니다. 인연, 불교적인 시각에서 이 인연을 보자면 두 사람의 만남은 분명 악연이였습니다. 그러나 그 악연을 유한추가 선연으로 바꿨습니다.
    어떤 사람이 지방 출장을 다녀오다가 서울역에서 노숙자에게 몰매를 맞고 주머니를, 아니 몰매는 관계 없습니다. 주머니를 털렸습니다. 그 사람은 가해자에게 인연이 있다고 생각 되어서 형제가 됩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방송이 됩니다. 이때 일반 시청자들의 반응이 어떻겠습니까?
    그래 맞아 당연한 인연이야 라고 할까요? 아니면 그사람 참 이상한 사람이네 라고 할까요? 이것이 바로 그럴듯한 이야기와 그럴듯하지 않은 이야기의 차이이며 비록 두 가지 다 허구이지만 상식적인 반응과 비상식적인 반응의 차이이며 개연성의 차이가 아닐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六道熱火
    작성일
    07.08.20 18:33
    No. 17

    소락이 유직의 양아들이 되기까지 한 일은 많습니다.
    일단은 안좋은 인연이지만 유한추와의 인연을 맺습니다. 시작은 안좋았습니다만, 유한추와의 끈끈한 정을 이어가게 되죠. 다른 가문의 양아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유한추를 따르고 뇌옥에까지 같이 들어갑니다. 유한추가 유직에게 유소락의 안위를 부탁한 점과 유소락이 1년동안 뇌옥에서 유한추와 같이 지내고 유한추의 임종까지 지켜본 사실은 유직이 유소락을 자신의 양자로 받아들일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소락이 유직의 양아들이 되기까지 한 일이 강도질 이외에 전혀 없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양아들이 되기까지 분명 수많은 일이 존재하고 유직의 마음을 이해할 정도로 충분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비의 행위도 마찬가지 충분히 상식적이었습니다. 조비가 왜 독에 중독될 수 밖에 없었는가는 자신의 상세를 유소락의 냉기로 호전시키기 위해서 했다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조비는 얼마못가 죽을 상황이었고, 자신의 제자를 찾아갈 시간조차 남아있지 않습니다. 주변엔 유소락빼고 아무런 인물이 없습니다. 비록 악연이지만 유소락은 그래도 북해의 네 가문중 하나의 후계자였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타인보다는 친근합니다. 조비가 왜 유소락에게 심득을 전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데 단지 '행운'이나 '불로소득' 이란 단어만으로 으로만 이러한 사실을 설명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유한추의 행동을 부연설명하자면, 유한추는 얼마 못가 죽을 상황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었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남은 삶 동안 의외의 선행을 많이 한다는 점을 비추어 볼 때 소락을 거두어들인 사실을 완전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하긴 그렇습니다. 분명 얼마간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볼때 유한추와 소락의 인연이 맺어지는 사실이 완전 말이 안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무협소설의 주인공은 기연을 분명 피해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기연에 도달하는 과정을 충분히 납득할 만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기연의 숫자는 그렇게 큰 관계는 없습니다. 기연에 도달하는 과정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단지 그 기연의 숫자만을 따진다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백민산
    작성일
    07.08.20 23:11
    No. 18

    六道熱火님.
    소락이 유한추의 임종을 지킨 것은 우선 사형제가 된 사람의 마음에서였다고 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렇게하고 싶다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키 위한 행위이기도 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조비가 어떤일을했건 그것은 오직 조비 자신의 판단과 유익을 구하기 위한 행위였다는 말입니다. 그 결과 조비는 생명을 크게 단축하게 되고 소락은 독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지요.
    즉, 이 장면에서도 소락은 자신을 위해서도 조비를 위해서도 별다른 노력없이 커다란 행운, 독으로부터의 행운과 심득을 얻게 되는 행운을 동시에 거머쥐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앞의 답글에서 쓴 하나의 예입니다만 예를 들어서 작가님이 처음의 만남은 소락의 다른 못된 친구가 유한추를 상대로 강도짓을 하는데 그것을 온몸을 던져서 구하는 것으로 설정을했다고 가정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랬을 경우 님께서는 작가님의 첫 번째 설정에 점수를 더 주시겠습니까 아니면 두 번째의 설정에 더 많은 점수를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기연의 숫자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너무나 많은 행운이 거듭해서 심지어 시련마져도 행운을 얻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빈번하게 사용된 것 같아서 조금의 아쉬움을 표한 것이고 충분히 비평의 대상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분명히 밝히자면 비평은 작가를 공격하거나 점수를 깎으려는 행위가 아니라 부자연스럽거나 잘 못된 부분을 지적해서 작가가 발전 할 수 있도록 하는 행위입니다.
    다시 한 번 더 저의 결어부분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六道熱火
    작성일
    07.08.20 23:34
    No. 19

    백민산님의 말씀을 요약하면 주인공이 어떠한 기연을 얻기 위해서는 주인공의 거기에 상응하는 노력이 꼭 동반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듯 한데... 그것이 절대명제는 아닙니다.
    주인공이 특별이 그런 기연을 얻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경우와 오히려 그런 기연에서 멀어지려 노력하는데도 기연이 주인공의 의사에 반하여 다가오는 경우도 힘들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백민산님이 주장하신 게 일반적인 명제였다면 그 이전의 무협소설에서도 기연과 주인공이 들인 노력과의 연관성을 문제로 수많은 논란이 있었겠지요.
    정말 중요한 것은 그 기연에 도달하는 데에 얼마만큼 설정에 위배되지 않고 개연성을 갖추었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기연을 얻었는데 자기 자신의 노력이 들어갔느냐 아니냐로 제대로 된 기연을 얻는 과정이다 아니다라고 구분짓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첨언하자면 '비평은 작가를 공격하거나 점수를 깎으려는 행위가 아니라 부자연스럽거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서 작가가 발전 할 수 있도록 하는 행위입니다.' 라는 문장에는 분명 동의합니다만, 백민산님이 잘못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근거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에 리플을 다는 것입니다.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비평란 게시판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찬/반
692 무협 디예형 님의 무림사계비평에 대한 반론 +11 Lv.8 hyolgiri.. 07.08.21 2,202 3 / 11
691 무협 천망회회 (추리소설인가??) +3 창염의불꽃 07.08.20 1,665 5 / 3
690 기타장르 판타지의 한계점과 그 고찰념... +12 트라이 07.08.20 2,132 11 / 9
689 기타장르 국내 장르소설과 라노벨, 제 생각입니다. +20 SanSan 07.08.20 2,592 9 / 15
688 기타장르 음마무적을 살펴보고 +4 진명(震鳴) 07.08.20 3,341 4 / 3
687 기타장르 한국소설 일본 라이트노벨보다 못하다? +46 Lv.22 asdfg111 07.08.20 4,712 9 / 26
686 판타지 GG- 랑스(미니리즘) +5 Lv.1 나일뿐이다 07.08.20 2,491 5 / 2
685 판타지 GG - GREAT GAME..막 가자는 건가?(누설주의) +11 Lv.12 김갑환 07.08.19 2,210 4 / 0
684 무협 마신(설정의 한계인가) +19 단우운 07.08.19 3,054 6 / 15
683 무협 독보군림을 읽고 +5 Lv.1 꿈꾸며살자 07.08.18 3,264 7 / 4
» 판타지 불친절한 작가의 능청스러운 이야기 한 마당. +19 Lv.1 백민산 07.08.18 2,927 8 / 2
681 무협 금룡진천하 6권...작가님이 깜박 조신건가? (누설... +15 Lv.12 김갑환 07.08.18 3,211 5 / 8
680 판타지 이안부르크의 칼 +2 Lv.99 슈퍼노바 07.08.17 1,780 4 / 2
679 기타장르 작가 프로필.. 제데로 적어서 책을 출판을 했으면 ... +7 Lv.99 맛잇는키스 07.08.17 2,312 11 / 4
678 무협 음마무적 해도 너무한다.... +21 Lv.4 kaio 07.08.16 7,350 11 / 4
677 판타지 내가 너무 까칠한건지.. +17 Lv.2 기운생동 07.08.16 3,077 20 / 2
676 기타장르 요즘 판타지의 문제점 Lv.1 우륜 07.08.16 1,803 1 / 3
675 무협 <화산지애>..내가 요즘 코드를 못따라가는 ... +11 Lv.71 예하 07.08.15 3,067 22 / 5
674 기타장르 글을 너무 쉽게 생각하시는 어린 작가님들께... +19 윤하늘아래 07.08.15 2,957 27 / 1
673 기타장르 장르문학의 개연성. +7 Fractal 07.08.15 1,675 6 / 1
672 기타장르 취향, 소설, 비평에 대한 오해 +4 Lv.1 onestar 07.08.15 1,788 4 / 4
671 기타장르 비평과 비난의 차이. +1 Lv.7 투렌바크 07.08.15 2,854 3 / 4
670 기타장르 "왜"가 중요하다 +11 SanSan 07.08.15 2,236 20 / 8
669 기타장르 권의의식을 버리자 +10 데모스 07.08.14 2,032 6 / 29
668 공지 비평을 위한 이벤트합니다. +3 Personacon 문피아 07.08.14 2,563 2 / 3
667 기타장르 비평을 위한 이벤트합니다. +5 Personacon 문피아 07.08.14 1,680 1 / 0
666 무협 '무림사계'를 보고..(스포일러성 글) +9 디예형 07.08.14 2,751 5 / 12
665 판타지 작가 이그니시스의 가능성.. 리셋라이프를 읽고. +20 Lv.99 惡賭鬼 07.08.14 4,346 4 / 3
664 기타장르 비적유성탄.삼류무사 +19 Lv.1 비천무림 07.08.13 2,100 2 / 29
663 기타장르 군림천하 1,2권을 읽고 황당함...! +19 Lv.1 하이그비 07.08.13 2,570 9 / 36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genre @title
> @subjec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