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흑로
작품명 : 북해일도.
출판사 : 뿔미디어.
불친절한 작가의 능청스러운 이야기 한 마당.
저는 우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밝히고자 합니다.
무협이 소설인지 아닌지, 아니 무협 중에 자신 있게 소설이라고 밝힐 수 있는 작품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대개가 별 구분 없이 무협지 혹은 무협소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선 소설적 이론에 근거해서 작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또한 무협소설은 무협, 무림이라는 비현실적인 세계의 일을 이야기하고 있기에 무협이라는 무대, 그곳에서 작가가 누릴 수 있는 자유, 그 암묵적 자유에 대해서도 넓게 이해를 하고 작품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사족을 붙이자면 저는 이 작가와 그 흔한 토론방등에서도 대화 한 번 없었고 쪽지나 댓글 한번 없는 사이입니다.
즉, 저에게는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이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제 글을 읽는 분들이 있다면 꼭 소설적 이론에 의지해서만 살펴보았다는 사실을 인정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또 한 마디를 더하자면 비평이란 칭찬을 하기 위해서 쓰는 글보다는 문제를 밝히는 쪽으로 치우친 것이 어제오늘의 흐름이 아니라는 사실을 첨언합니다. 그리고 비평란의 비평총론으로 올라있는 onestar님의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저의 자세를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밝히지만 onstar님 또한 전혀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참고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북해일도, 북쪽바다의 칼 한 자루라는 이 제목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북해일도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동양의 오행사상에 근거해서 살펴보면 북쪽은 겨울을 뜻하는 것이며 사람으로는 늙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북쪽이 상징하는 계절은 겨울이며 색으로는 검은색이다. 그리고 북쪽은 어둠을 뜻하며 모든 것을 수렴하는 의미로 읽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다란 고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가? 그리고 북망산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쪽은 죽음의 세계를 뜻하기도 하고 북해에 곤이라고 하는 신비한 동물이 살고 있다는 말에 의하면 신비한 세계라고도 할 수 있고 또 왕이나 성인은 북쪽에 등을 기대고 남면(南面)하여 앉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글의 제목인 북해도 그런 의미의 북쪽 바다일까?
그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불친절한 작가는 분명히 다음과 같이 단서를 제공해줬다.
"북명에는 물고기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고 한다. 곤의 크기는 거대하여 알 수 없는데, 어느 날 이 곤이 변하여 붕이 된다. 곤이 붕이 되면서 천지와 시기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으면 곤이 붕이 되어 남명으로 날아갈 수 없다. 또한 곤은 붕으로 변해도 결코 남명이상으로 날아가지 않는다."
결국 이 이야기 속에 주인공의 장래와 미래의 시련이 설명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종결의 방향까지 설명되어 있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모든 생각들은 접어버리고 책장을 넘겼다.
뜬금없이 허수아비 서방이라는 제목의 글의 남편이 점점 허수아비가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대인이 되어가는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참으로 생각 없음에, 그 부조화에 아쉬워하던 느낌을 떠올리면서,
인생, 그것은 계속 되어지는 행운의 연속인 것인가? 혹은 계속되어지는 시련의 연속인 것일까?
어린 주인공, 소락 그에게는 왜 계속 행운만 이어지는 것일까?
첫 번째 행운은 강도질에 성공해서 큰돈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곧 잡히고 만다. 그러나 그것은 더 큰 행운이 되어버린다. 대충 살펴보면 사실 부모의 얼굴도 기억을 못하는 고아가 갑자기 강도행위의 피해자로부터 하인이 되는 행운을 맞게 된다.
즉, 더 이상 끼니 걱정이나 편한 잠자리에 대해서 고민 할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는 말이다. 그리고 곧 절대고수 중 일인인 피해자의 아버지, 그 고수의 제자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다시 양자가 된다. 즉, 피해를 입혔던 사람의 동생으로까지 이어지는 행운이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원수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무상귀 조비로부터도 그가 얻은 깨달음을 값없이 물려받게 되고 냉심마녀 설수진에게 납치를 당하는 듯하나 결국은 설수진의 남편인 절대고수 양이문으로부터 새로운 극쾌의 도법을 물려받고 고월이라는 명도까지 물려받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물론 스스로 사양을 해서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게 되지만 천수곡의 곡주의 자리까지 아무런 노력도 없이 굴러들어온 호박처럼 바로 얻게 된다.
즉, 그런 주인공이 이 시대에 있다면, 그것도 노숙자 생활을 하다가 불량배들에게 쫓기게 되어서 도망을 치다가 넘어졌는데 무엇인가 손에 잡혀서 살펴보니 현금이 가득 찬 큰 가방이었고 미친 채 하고 낸 입사원서가 대기업의 합격 통지서로 변해서 날아오고 또 불로소득으로 로또를 샀더니 몇 주간 일등 당첨자가 없어서 계속 누적에 누적을 거듭해온 로또에 당첨 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무협식으로 얘기하자면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천고의 영약이 나오더니 곧이어 천고의 비급이 나오고 천하무적의 명검이 다시 나오는 식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아쉽고 납득이 되지 않은 것이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고아가 소락이라는 제법 그럴듯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차라리 나는 같은 곳에서 뒹굴던 나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개새끼라고 불려서 그것이 이름이 되어버렸고 자연스럽게 중국식으로 부르다보니 아소구(兒小狗 : 어린 개 새끼)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면 하고 생각해 봤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인연의 끈이 닿아있음을 느끼고 유한추가 작은 즐거움이라도 맛보는 삶이되라고 소락(小樂)이라고 지어줬다고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즉, 소설인 이상 신경을 써야 할 수밖에 없는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랬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 말이다.
서두에 불친절한 작가라고 썼는데 고인이 되신 김동리 선생의 작품을 조금이라도 읽어본 독자는 금방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상고, 이로, 난로, 월로 등등 거의 모든 장에 한자를 함께 써 줬다면 나 같은 사람은 훨씬 이해가 빠르고 읽기가 편했으리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참으로 불친절한 그러면서도 뻔뻔스럽게까지 여겨지는 작가의 영리함에 나는 고소를 짓고 말았다. 그것은 세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 번째 이야기는 거의 모든 사건이 앞뒤 정황설명도 없이 불쑥 일어나버려서 어어! 하고 있으면 의뭉스럽게도 상당히 진행이 된 뒤에 불쑥 그 개연성 혹은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두 번째는 형식면에서 야! 이것 대하소설의 형식을 취한 것인가? 하고 보면 어느새 현재 주류를 이루고 있는 독자들의 수준(?)과 취향(?)을 잘 알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듯이 다시 주인공의 뒤를 쫒아가게 하고 있다.
세 번째는 소설과 무협지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쉽게 읽히게 유혹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평하자면 나는 이 글이 재미만을 찾아서 책을 선택하는 독자들에게 거부당할만한 이유를 별로 발견해내지 못했다.
계속 이어지는 행운, 드디어 미인으로부터 감사의 대상까지 쉽게 되어버린 주인공 소락이 특별히 거부감을 갖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인 이상 재미뿐만 아니라 무엇인가 느끼고 생각할 수가 있어야한다고 말하는 독자들에게도 어느 정도는 부합하고 있다는 말이다. 사실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말하자면 작금의 무협시장에서 소설적 주제를 갖춘 책들이 양쪽의 독자를 아우르기 어렵듯이 으악! 쾅! 식의 글 또한 두 쪽 모두를 불러 앉힐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이 글에는 한 가지 힘이 있다.
유한추가 주인공에게 남긴 말.
"소락아 너는 겨울이 되렴. 차가운 겨울이 되어 북해풍도에 어울리도록, 가을은.......가을은 외롭단다." 등등의 시적이면서도 쉽게 읽히는 문장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고도 쉬우면서도 무언인가를 떠올리게 하는 탄탄한 서술구조와 길지 않은 문장들이 안고 있는 내용에서 어느 정도는 아쉬움을 달래주리라고 본다.
물론 아쉬움은 남는다. 우선 앞에서도 밝혔듯이 연이어지는 행운이 세상의 이야기와의 거리를 스스로 멀게 해버렸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협이 소설이라면, 현재정도의 분량들을 그대로 유지하려면 이제는 다양한 군상들을 다루고 다양한 삶, 다양하고도 복잡한 세상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라도 대하소설의 형식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아직 읽지 않은 분들 중에 마땅히 고를만한 책이 없어서 고민 중이라면 쉽게 주인공을 따라 갈 수 있게 꾸며진 이야기니 한 번씩 읽어보라고 권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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