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EarlGrey
작품명 : 풍진세계
출판사 : 문피아 연재중
감상란의 추천글을 통해 풍진세계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기 전까지 EarlGrey라는 작가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아니, <열세번째제자>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니 나도 모르는 사이 병아리 눈물만큼은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느덧 연재분의 마지막 글을 보면서 저에게 두 가지 하고픈 일이 생겼습니다.
하나는 너무나도 그의 전작이 보고 싶다는 마음이요, 둘은 글 솜씨도 없고 게으른 탓에 한 번도 하지 않은 감상란에 글을 올리는 일을 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풍진세계>는 우, 언, 구리 세 사람이면서도 한 사람인 그들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세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주인공이 하나가 아닐 경우 어느 순간 특정인물을 편애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려 때문에 추천글을 보고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글은 오히려 세 사람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냅니다.
<풍진세계>를 읽고 저는 ‘스토리텔링이란 이런것이다’를 느끼게 해준 천명관 작가의 <고래>라는 소설에서 느꼈던 기분을 다시금 맛보았습니다. 분명 장르도 다르고, 작가의 이야기방식(성향이라 해야 하나요?) 역시 다릅니다.
그럼에도 제가 비슷한 감흥을 느꼈던 것은 역시 서사의 힘이 주는 본질적 재미가 아닐까 합니다.
<고래>는 중심인물인 국밥집 노파-금복-춘희를 통해 바뀌어가는 전근대-근대-탈근대로의 이전의 모습을 끊임없는 이야기 속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벌떼를 이끌고 다니는 백발의 애꾸눈 노인인 국밥집노파, 우물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매력적이던 여인이었으나 남자가 되어버리는 금복, 120kg의 거구로 날로 뱀을 잡아 먹는 춘희등 기이한 인물들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서사 틀 속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 그것을 풀어내는 작가의 힘은 놀라울 정도이며 그것이 이 책이 주는 묘미라 생각합니다.
<풍진세계>역시 우-언-구리의 이야기를 자유로운 서사틀 안에 녹여내고 있습니다. 치부책을 통해 천하를 얻으려는 우, 천자의 틀을 깨고나온 언, 바람처럼 달리고픈 구리, 기이한 소년들은 점차 풍진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우리는 어느 날은 우의 이야기를 다음 날은 구리의 이야기를 또 언젠가는 언의 이야기를 마주하게 됩니다. 각기 다른 세 사람의 행보를 뒤따르는 순간 그것은 세 가지의 이야기요 또한 하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고래>가 책의 뒤편에 실린 “이 소설이 의도하는 게 정련된 글의 구조물이 아니라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의 잔치”라는 소설가 은희경의 평처럼, 주인공의 이야기 자체 보다는 정확히 말하면 이야기 속에 내제된 또 다른 이야기로 서사를 풀어내는 끊임없는 여담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면, <풍진세계>는 세 주인공을 굵직한 선으로 삼아 압축된 형식의 여담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어줍지 않은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지금 연재분량까지의 <풍진세계>는 앞서 추천을 해주신 SanSan님의 말씀처럼 무협의 틀을 빌리고 있는 기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막 나아가기 시작한 세 사람의 이야기를 무협이라는 장르 속에서 어떻게 담아낼지 지켜보는 일 역시 세 사람의 행보를 뒤따르는 일 만큼이나 즐거운 일이 될 것이라 기대해봅니다.
어디서나 이야기가 넘쳐나는 지금, 그 풍요로움 속에서 오히려 갈증을 느끼시고 계시는 분들께 이 글을 추천해 볼까합니다.
* 생각 외로 적은 조회수와 댓글 수에 놀라 부랴부랴 새벽에 글을 올려 봅니다. 감상쓰기가 생각보다 힘드네요...언제나 좋은 감상글을 올려주시는 분들의 대단함을 새삼 느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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