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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v.29 스톤부르크
작성
09.10.12 22:14
조회
1,617

작가명 : 사토 유야

작품명 : 에나멜을 바른 혼의 비중 - 카가미 료코와 변화하는 밀실

출판사 : 학산문화사 파우스트 노벨

발행일 : 2007년 7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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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B반에 아야카라는 미소녀가 전학을 온다. 그녀는 전학 오자마자 반의 주도권을 잡으며, 반 학생들 모두에게 무시당하고 처참하게 학대받아 온 치즈루에게 이유 없는 친절을 베풀며 상냥하게 대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안 공작실에서 2학년 B반의 시마다가 살해당한다.

아야카는 코스튬 플레이가 취미인 소녀 우미와 함께 범인을 찾겠다고 뛰어든다. 그리고 두 소녀가 움직일 때마다 미래를 보는 예언자 카가미 료코가 나타나, 사건에 끼어들지 말라고 막아선다. 한편, 반에서 이지메 당하는 치즈루를 가장 잔인하게 괴롭혔던 후지키와 타자와가 차례차례 행방불명이 되는데…. <교보문고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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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메피스토 수상작인 '플리커 스타일'에서 이어지는 '카가미家 사가'의 두번째 작품입니다. 전작 '플리커 스타일'보다 과거인 1996년을 사건 배경으로 하며, 아직 고등학생이던 카가미 료코가 등장하지요. 플리커 스타일이 405페이지였으니, 대강 150페이지 정도 더 두껍습니다.

카가미가 사가는 이 외에 '수몰 피아노', '카가미 자매의 나는 교실'로 이어집니다만, '수몰 피아노'까지만 정발되어 있습니다. 그 외의 사토 유야 작품은 '크리스마스 테롤'이 정발되어 있네요. 파우스트 노벨 자체의 발간이 뜸하니만큼, 카가미 자매의 나는 교실이 정발 될 수 있을지는 살짝 의문이네요.

1. 사토 유야와 오타쿠

플리커 스타일도 그렇고, 에나멜을 바른 혼의 비중도 그렇고, 사토 유야의 책을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자극'과 '구제 불가능한 부정적 인물, 세계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의 허무주의나 염세주의 비슷할 정도로 작 내에서 '선악의 구분'이 무의미하며, 직접적으로 폭주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작 내 세계를 지배하는 중심 코드는 '광기'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카가미가 사가 자체가 "가족 구성원 모두가 정신병적인 가족"을 다룬다는 컨셉 자체의 문제도 있겠습니다만, 굳이 그것이 아니더라도 이 '독이 오른' 부정적 감정으로 가득 찬 소설은 단순한 흉내 수준으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닐겁니다.

사토 유야는 흔히 '파우스트 계열'이라 불리는 작가 중 한명입니다. 메피스토 상으로 데뷔한 작가들은 특이한 소설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라이트노벨'에 영합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만들어진 잡지(혹은 라이트노벨의 코드를 사용한 '문학'을 하려는 잡지)가 '파우스트'이고, 그 파우스트를 중심으로 활동한 몇몇 소설가 들 중 한명입니다.

여기에서 라이트노벨의 표방이라 함은 단순히 '가볍다', '만화 같다'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토 유야 소설이 가볍다고 하는 사람이 있던가요? 미시마 유키오상까지 받았는데?

파우스트 계열에서 말하는 '오타쿠적 문학'이란, 말 그대로 '비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 감성 자체에 있다고 봅니다. 니시오 이신도, 마이조 오타로도, 사토 유야도, 시대적, 공간적 배경은 현대 일본이지만, 그 감성과 사건 자체는 결코 현대 일본에서 일어날 수 없는, 상상의 나라나 다름 없습니다. 그 '공상'이 매우 비뚤어진 방향으로, 음산하고 광기로 넘치는 폭력적, 선정적인 방향으로 표출되어 오히려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가공품'으로 소비할 수 있게 된 그 상태가 파우스트 계열의 소설이 아닌가 합니다.

여기에 더해 사토 유야의 소설을 보자면 작 내 곳곳에 오타쿠 요소에 대한 언급이 넘쳐납니다. 이 '에나멜'만 보더라도 작 내 인물 중 한명은 코스플레이어이고, 동인 행사에 참석하는 장면까지 나오지요. 캐릭터들은 진지한 장면에서도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의 예시를 들어가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얼핏 섞이기 힘들 것 같은 이 '진지함'과 '가벼움'의 조화는, 사토 유야 자신이 오타쿠 세대라는 것에서, 그의 작품 내의 '세계관' 자체가 오타쿠의 관점에서 제조합된 '현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세계에서 만화 이야기를 하며 살인범과 대치하는 것은 딱히 무슨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 평범한 장면이란 것이지요. 그렇기에 그 장면을 '평범하게 읽을 수 있는' 독자들, 즉 오타쿠적 세계관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독자들을 위한 것이 '사토 유야'입니다.

2. 자극으로 들어찬 소설

전작 '플리커 스타일'은 근친상간, 유괴감금, 살인, 오컬트 등 자극으로 들어찬 소설이었습니다. 이번 '에나멜을 바른 혼의 비중' 또한 자극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책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 의해 '청소년 유해 도서'로 선정되어 19금 딱지를 붙이고 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인육 외의 다른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 소녀라던가, 갑자기 나타난 또다른 자신에게 '자신'을 빼앗겨버린 소녀라던가, 그 소녀를 주운 무언가 '일'을 하는 남자라던가, 극단적인 수준의 학급 내 이지메를 무심하게 저지르는 소년이라던가 당하는 소녀라던가, 도무지 무엇에도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코스프레로 도피하는 소녀라던가,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는 카가미 료코, 전학 온 너무나도 아름답고 우아하며 당찬 소녀, 그리고 마지막으로 밀실 살인.

일단 이야기는 식인 소녀 야마모토 사나에, 자신감 부족한 코스프레이어 카토리 우미, '의뢰'를 받고 한 소녀를 찾다가 '자신을 빼앗겼다'라 주장하는 소녀 하야마 리카를 줍게 된 오타 카츠아키, 이지메 그룹의 중심인 나카무라 히로시등의 시점을 넘나들며 복잡하게 전개됩니다. 중반 이후에는 야마모토, 카토리, 나카무라 등 2학년 B반 멤버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와, 리카와 오타를 중심으로 한 '도플갱어' 이야기 이 두개로 노선이 잡힙니다.

이 안에서도 각자가 안고 있는 문제는 각자 개별적이고도 별개의 문제로 보입니다만, 각 인물들은 저 두 노선 안에서 관계를 주고받으며 묘하게 얽혀 있습니다. 저 두 노선이 만나 진상이 규명되는 종장부는 그 모든 인과 관계가 얽히고 얽혀 터져나오게 되며, '이야기를 해결할 정답'이 아닌, 모든 이야기를 얽히게 한 '이야기의 정점', 혹은 '흑막'이 누구인가의 문제로 모이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비록 '밀실 살인'이 등장한다고 해도 '추리'랑은 살짝 떨어져 있습니다. 소개 문구도 그럴듯하게 적어두긴 했지만 캐릭터의 이야기에 몰입해야지, '사건'을 딱히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3. 감상

전작 플리커 스타일처럼 자극으로 몰아치는 스타일이지만, 전작보다 이야기 개개의 밀도가 훨씬 촘촘합니다. 단순하게 자극에 마냥 의존하지 않고, 그 자극적인 소재를 흥미롭게 배열, 독자를 이야기 자체에 몰입시킵니다. 다양한 인물의 시점을 시시각각 옮겨다니지만 흐름이 끊기지 않고 인물 하나하의 사건과 이야기에 몰입 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시각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기분 나쁜 묘사가 많습니다. 모든것을 가감없이 묘사하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에게는 도저히 읽으라고 권할 수 없는 작품이지요.

이야기 전체가 불건전하고 부정적인 분위기와 감정, 혹은 무신경 그 자체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설픈 이성과 일반론은 가볍게 무시. '리얼리티의 부제'라는 말을 스스로 언급하는 나카무라 처럼 어찌 하지도 못하는 폭력과 그 연쇄속으로 독자를 내던집니다. 이 세계 안에서 선악의 구분따윈 없습니다. 강자와 약자의 구분 조차 모호합니다. 그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고 충돌하고 방해받고 방해물을 배제하며 자신의 안위와 만족을 위해 과감히 행동하는, 혹은 반대로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들만이 넘칩니다. 그렇기에 누군가 죽거나 파멸에 이르는 것도 단순하게 옳고 그름, 혹은 좋고 나쁨을 따질수가 없습니다. 심지어는 '소망을 이루는 것' 조차도.

'이면성'조차 내팽개쳐 버린, 아예 무언가 정의내리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듯 한 인물들의 꼬이고 꼬인 심리와 관계가 하나로 모여들고, 그것이 충돌하고 겹쳐 하나씩 '제거'될때 마다, 독자는 카타르시스가 아닌 '상실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 어떤 대단한 이야기를 가지고 온 자들조차도 매우 간단하게 이야기에서 배제되고, 자기를 감당못해 사라지고, 강자와 약자의 구도가 뒤바뀌며 이야기를 더욱 모호하게 합니다. 일관된 '상식' 따위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 처럼.

사실 엽기 사건이 다발하고 초능력이 막막 등장하는 이런 작품에 상식이 있겠냐마는.

마지막까지 이 이야기 내의 소규모 '구도 반전'은 끊임없이 나타타고, 서술 트릭과 복선 구조, 이야기의 연결점을 교묘하게 사용한 플롯은 결국 하나의 종착점으로 이야기를 전부 모아줍니다. 하지만 그것에서 '명확한 것'은 나오지 않습니다. 끝까지 남는 것은 결국 '섬뜩함'과 '불안감'입니다.

4. 마치며

시험 기간에 잠시 쉬려고 잡았다고 정신없이 몰입해서 읽어버렸습니다(...). 아, 망했어요.

플리커 스타일은 '자극' 그 자체를 즐기는 타입이었다면 에나멜을 바른 혼의 비중은 작 내 서사와 캐릭터에서 충분히 재미를 끌어냅니다. 더군다나 국문과 나온 분께서 번역한 덕인지 책 자체를 읽기가 무척이나 편했습니다.

여러모로 평범하진 않지만, 이 '정신나간 재미'를 위해 일부러 읽는거고, 에나멜을 바른 혼의 비중은 그 기대치를 아득히 넘을 정도로 충족시켜 주었습니다.

이번에 대학도서관에 한국에 출간된 마이조 오타로의 모든 책들을 신청했습니다만, '좋아해 좋아해 너무 좋아해'는 이미 들어와 있었으니 별 무리 없이 통과 되겠지요. 일단 시험기간이 끝나면 수몰 피아노, 크리스마스 테롤에 이어 천천히 읽어 볼 까 합니다. 듣자하니 세이료인 류스케의 '코스믹'이 올해 안에 정발된다고 하니, 메피스토 출신 '정신나간 소설들'을 더 즐길 수 있을 듯 하네요.


Comment ' 2

  • 작성자
    Lv.65 天劉
    작성일
    09.10.16 00:53
    No. 1

    감상문 딱 사서 보고 싶을 정도로 잘 쓰셨는데 리플이 없군요 -_-;;
    문피아에선 역시 이쪽은 마이너일려나? 하튼 이번에 한번 믿고 구입해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7 쟈벨
    작성일
    09.10.16 23:31
    No. 2

    너무 좋은 감상문입니다. 구매 리스트에 책 한권이 더 늘어났군요.
    문피아에서도 마이너지만 작품의 성향으로 볼때 메이저에게 어필하기는
    힘든 작품이니까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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