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이길조
작품명 : 숭인문
출판사 : 발해
편의상 반말로 하도록 합니다.
숭인문.
문피아에서 연재된 소설으로 출간된지 얼마되지 않는 소설이다. 그러나 뭐랄까, 제목을 너무 잘 지으신 탓에 나는 연재본을 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사람을 위하는 문파.
제목에서부터 착함, 선함의 포스가 물씬 풍겨오는 것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악당이 좋다.
그것도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그 목적이 대의와는 상관없이 스스로의 영달만을 위한 것이라면 더욱 마음에 든다.
그것이 현실이니까.
착한 놈? 뭐 사람이 많으니 그런 녀석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다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일 뿐, 다른 이가 죽어나자빠져도 인상을 찌푸릴뿐 상관하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취향으로 본인은 이를테면, 사야지존처럼 죽이고 죽이는 내용을 좋아하는 탓이다. 게다가 세상을 보는 시각이 조금 냉정하기도 하다.
아무튼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그런 취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악[惡]의 성향인 것이다.
그런 내가 책방에서 이 소설을 보고 대여를 한 것은 내용을 살짝 엿보았던 것에서 뭔가 흥미가 동했던 탓이다.
'문파'를 중심으로 하는 소설.
이런 류가 뭐가 있었더라? 아 군림천하가 있었지.
아주 오래전에 군림천하를 보았을 때의 감동을 기억하면서 그냥 한 번 맛이나 보자는 알량한 마음으로 책을 대여했다.
그러나,
결과는 대만족을 넘어
반드시 이 책을 구입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상에서 군림천하를 예로 들었는데 사실 양자는 문파를 중심으로 한다는 것 이외에는 동일성이라 할 것이 없다. 오히려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장강'이라는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장강.
장르문학 자체에 환멸이 느껴질 떄 보았던, 굉장한 수작이다. 주인공이 악인이 아니라도, 그저 이런 이야기로도 이렇게나! 재미있게 글을 풀어나갈 수 있다는 느낌을 받은 소설이다.
숭인문은,
뭔가 따뜻한 감동이 있는 글이다.
수없이 범람하는 지뢰작들의 홍수속에서 밝게 빛나는 등불처럼 마음의 양식이 되어줄만한 무협이다.
적어도 나는 이런 책을 기다렸다.
장르 소설을 구입하는 돈이 아깝지 않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책.
너무 오랜만이라 더욱 기쁜 것일까.
요즈음 나오는 책들은 솔직히 대여비도 아까운 것이 태반이다. 재미있는 작품도 간간히 있지만 구매할 생각은 전혀 없다. 빌려보기에는 적당하다고 보지만 구매할만한 가치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쓰다보니 과도한 칭찬이 되어버렸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본인으로서는 숭인문을 보고 그렇게 느꼈다. 그만큼 흥미롭게 읽었다는 소리다.
왜 이런 글을 연재당시에 보지 못한 것일까.
그 어리석음에 후회하면서 이렇게 감상을 올리게 되었다.
p.s 내용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은 것은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아서다. 다른 분들의 감상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 그저 취향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만족할 만큼의 수작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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