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가 멸망하고 야만인들이 밀물처럼 몰려들던 시기, 마지막 로마 군단을 이끌던 사령관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그는 브리튼 방벽을 수호했고, 마인츠의 라인 강 전선의 사령관이었으며, 제국정부가 브리튼 속주에 보내는 포기선언을 전달하러 가는 마지막 전령이었다...
끝장나게 잘 쓴 책이다!
제국의 노화와 중첩되는 모순, 나태해지고 무관심해져가는 국민, 썩어빠진 정치, 야망에 빠져 황제를 참칭하는 군벌들 등등...한때 수십개의 군단을 동원하고 야만족을 물리쳤던 지중해의 무적군단을 가진 로마의 멸망은, 다른 흔한 제국들의 멸망처럼 머리로는 이해는 가나 가슴으로는 이해가 안가는 것이었다. 인구가 준 것도 아닌데 그 많던 로마 병사들은 다 어디로 간것인가? 책을 읽다보면 왜 그렇게 된건지 절절히 이해가 간다. 사실 멀리서 볼 것도 없었다. 기득권층의 군역 회피, 경직화된 관료제, 부정부패, 공적 기관의 사세력화, 모럴 해저드 등등...요즘 다 볼 수 있는 것들 아닌가.
이런 암울한 제국의 쇠퇴기, 아니 멸망기에 아직 타락하지 않은, 나태하지 않은, 자존심을 가진 늙은 군인이 어떻게 발버둥 치는지 절절하게 묘사된다. 그렇다고 처절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장군이 있고 그를 따르는 6000명의 군단이 있고, 전우애란 말로는 부족한 남자들, 군인들 간의 뜨거운 연대가 있다. 세계대전을 겪은 군인이었던 작가가 묘사하는 군대와 군인의 심리는 정말 대한민국 군필 남자에게도 다시 군대 한번 가볼(...;), 아니 이건 아니지만, 여하튼 설레게 하는게 있다.
전쟁과 역사만 있는 것도 아니다. 작가는 정말 절묘하게 인물을 배치해서 멋진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로마를 배신하고 야만족에게 떠난 주인공의 죽마고우, 평생을 함께한 전우, 평생의 추억이 되준 아내, 명예를 아는 야만인 동맹군과 적군, 기독교도지만 존경할만한 위인인 사제 등등...심지어 내부의 적처럼 보이는 답답한 관료, 보좌관 아르토리우스 조차 결국엔 다 ‘자기 사정이 있는' 인물로 재등장한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충격적 사건을 절대 직접 묘사하지 않는 수법이었다.
아버지가 죽고, 친구가 배신하는 장면에서 결코 아버지, 죽음, 배신 등등의 직접적인 단어를 안쓰고도, 얼굴에 들이대는 듯한 충격을 주는 듯 묘사를 하는게 정말 일품이었다.
시작부터 완결까지 장엄하고 광대한 서사를 보는 듯한 느낌이 유지됐고, 엔딩에서 긴 여운이 남았다. 예전에 문피아 감상란에서 감상을 보고 기억이 남아 골랐던 거 같은데 정말 굳 초이스였다..
이 소설을 보기 전에 마침, ‘로마 제국과 유럽의 탄생'이란 로마 멸망기부터 1000년까지의 중세 초기를 다룬 책을 보던 참이라 몰입이 배로 됐던 것 같다.이 책도 추천드린다. 로마 멸망기-중세왕국 형성기를 본격적으로 다룬 거의 유일한 책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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