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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묵향을 전권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3번째 읽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 묵향은 저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는 소설입니다.
고등학교, 대학시절 구무협을 탐독하다가, 한 몇년 동안 무협소설을 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김용의 소설들을 읽게 된 계기가 있었고, 몇년 동안 다시 무협소설을 탐독하게 되었는데, 이 기간 동안 알게된 작가의 작품들이 용대운이나 좌백, 이름이 갑자기 생각않나는데 묘왕동주와 같은 작품들입니다.
그러다 다시 일상의 바쁨으로 몇년동안 무협을 읽지 않았는데, 아마도 읽을만한 신무협소설이 더 이상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다가 몇년전 우연한 기회에 묵향을 읽게 되었고, 묵향을 계기로 다시 무협소설을 읽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몇년이란 통상 5-6년을 말합니다)
묵향은 넓어진 신무협작가들의 작품 뿐만 아니라, 판타지계열의 작품들을 알게 만들어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몇년 동안, 책읽는 재미로 세상을 살아온 듯도 합니다.
저는 제 취향과는 다르게 묵향이 고무판에서 비류도와 더불어 워스트작품으로 선정된 이유를 이해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고무판 회원님들의 '리얼리즘의 허구에 대한 갈등'이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장르문학이 아무리 가상세계를 대상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소설적 구성은 필연적 요소이고, 소설적 구성과 시나리오가 약한 작품은 소설로서 평가받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깨달음만으로 일반무사에서 현경에 오르는 무위, 그 무위가 수십만 군대도 혼자 감내할 수 있는 정도로 가공하고, 징키스칸을 어린애 갖고 놀 듯하며, 마교가 보유한 무력으로도 세상눈치를 보며 경제활동을 하는 장면들은 어색하고 현실성이 떨어져 있는 것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뜯어보면, 흔히 말하는 먼치킨요소가 가득한 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장르문학으로서 묵향이 훌륭한 작품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장르문학은 가상세계를 다루는 소설입니다. 가상세계를 다루는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작품에는, 그래서 장치라는 도구가 아주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작가가 설정한 이 장치라는 도구와 그에 따른 논리적 흐름을 독자가 합의해주는 시점부터 작품은 시작된다고 보고 있고, 합의수준에 따라 작품의 수준도 결정된다고 봅니다.
묵향은 무협세계 뿐만 아니라, 판타지세계도 그 장치가 아주 훌륭한 작품입니다. 무위를 설명하는 장치를 보면, 구무협은 말할 것도 없고, 요즈음 신무협의 다수도 기연에 의존하고 있고, 그 기연에 의해 터무니없을 수 밖에 없는 주인공의 무위를 독자에게 납득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납득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연의 개연성은 작가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묵향은 눈에 띄는 특별한(속된 말로, 치졸한) 그런 장치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묵향은 독자가 일상에서 익숙해있는 '수련과 깨달음'이라는 단순한 요소를 소설적 장치로 활용합니다. 아주 교묘하지요.
수련과 깨달음이라는 장치를 활용하기 위해 묵향은 두가지 장치를 덧씌웁니다. 하나는 나이의 문제인데, 수련과 깨달음이 단시일에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일반적인 나이를 두배로 늘리는데, 이것이 또 교묘하고 독자들에게 먹히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수련과 깨달음의 정도를 설명하는 무공의 단계인데, 과거에는, 그리고 요즘의 신무협작품들에도 자주 보이는 반박귀진이니, 오귀조원이니, 삼화취정이니 하는 어찌보면 어렵게 인식되어질 무공단계의 구무협적 요소를 삼경의 단계라는 아주 쉽고 간결한 장치를 도입하는데, 저는 소설 묵향이 성공한 절반은 이 장치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아주 독특하고, 신선했으니까 말이죠.
작가는 여기에 하나 더해 작은 장치를 덧씌우는데, 삼경의 단계가 얼마나 힘든가를 설명하기 위해 과거에 현경에 든 고수는 구휘밖에 없었다는 멘트를 추가하는데, 삼경의 신비로움을 더해주는 작가의 천재적 발상이자, 신선함 그 자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보통은 마교의 창시자인 천마나, 소림의 달마나 그럴텐데 말이죠.
장르문학의 재미는 아이디어와 유머에서 나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묵향은 그런 재미가 가득한 소설이고, 작가는 도입한 아이디어 하나하나를 소홀히 하지 않고 작품전체로 관통시켜가는 힘이 있습니다.
일례로 갑자기 혈마가 등장하는데, 묵향을 처음 읽을 때 저는 단순히 '현경의 고수가 한명 더 있다'는 소설적 재미를 추가하는 것으로 보았는데, 그리고 혈마와의 일전으로 묵향이 깨달음을 얻는 장치-판타지세계로 넘어와 묵향은 혈마의 무공을 두번 사용하죠-로 알고 있었는데, 혈마를 통해 현경의 벽을 설명하고 있음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화경에서 현경으로 넘어가려면, 성장한(?) 의식과 육신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그 부조화는 사람을 미치게 하죠.
작가는 이미 혈마를 통해 묵향이 국광의 삶을 산 이유를 설명했는데, 판타지 막판의 검사 엘프(이름이 잘 기억이.....^^)와의 비무와 그 이후 대화를 통해 눈치채게 만들고, 좀 더딘 독자를 위해 불황이 현경으로 들어서는 과정을 통해 이해하게 만들죠.
묵향이 단순히 유머스런 에피소드나 아이디어의 재미만으로 나열된 작품이 아니라, 정말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소설인 이유는 바로 장치에 대한 작가의 충실함, 그리고 그것을 끌어가는 작가의 힘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묵향이 먼치킨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개연성 역시, 작가가 설정한 그런 장치를 먼저 이해한다면, 장치와 장치를 잇는 개연성이 얼마나 뛰어난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작가의 치밀함일 수도 있겠는데, 단순한 에피소드 하나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판타지편 마지막장, 아르티어스친구(역시 이름이...긁적긁적)가 레어에서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자신의 레어로 돌아가던 중, 새로 건설한 황궁에서 포도주를 홀짝이던 미네르바에게 브레스를 뿜어대는 장면은 유쾌,상쾌,통쾌의 압권을 넘어 작가가 얼마나 치밀한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대목입니다.
개연성을 납득시키기 위한 정황설명때문에 짐짓 작품이 늘어지거나 지루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특히 요즘 신무협에서 종종 보게 되는 경향들입니다, 묵향은 작가의 치밀함에도 불구하고, 그 속도가 의외로 간결합니다. 아마도 제 생각에 그 이유는 잔가지는 쳐내고, 본류와 본류를 이어가는 작가의 능력에 있다고 보여집니다.
작가는 또 시류에도 정통한 자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르문학의 독자들이 무협과 판타지를 찾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가 대리만족인데, 대리만족이 필요한 이유는 독자가 살아가는 일상이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 때문이 가장 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 일상이 만족스럽지 않은가? 그것은 아직도 한국사회가 많이 완화되었다고 하더라도 배경과 힘에 의해 지배되고 있고, 그 배경과 힘에 의해 개인의 노력과 합리가 쉽게 꺽이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회에서의 경험은 힘으로 자기의 생각(독자가 볼때는 독자의 합리)을 관철해가는 묵향이 대리만족으로서는 으뜸이라고 보여지는데, 그런 성격의 주인공을 그리는 작가의 자질은 바로 시류를 읽는 눈에서 나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묵향이 여진으로 귀환해서 동영으로 들어간 16권입니다. 물론, 16권은 독자들의 비판대로 늘어지기 전형일 수도 있고, 그만큼 재미가 덜한 이야기구성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작가가 일본편을 먼저 들고 나온 이유가 분명히 있을 터이고(대략 짐작은 합니다만, 그렇다고 이거다라고 말씀드리기는 뭐합니다), 그럼에도 독자들의 맹렬한 비판으로 그 일본편을 잇지 못하고 서둘러 중원으로 귀향조치 시킴으로서, 16권을 사장시킨 것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습니다. 단순히 마교와 야마토영지의 무역로를 연결시키는 것으로 일본편을 마무리짓는 것은 16권의 무게가 너무 무겁습니다.
제가 묵향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쓴 이유는,
제가 얼마전 모작품에 대한 비판글에 대해 운영진과 관련있다고 추정되는 분이 고무판에서 베스트는 시장에서는 워스트이고, 고무판에서 워스트인 작품이 시장에서는 베스트더라는, 그러면서 묵향은 대표적인 워스트로 꼽히는 작품인데 시장에서는 아주 잘 나가는 작품이더라는 댓글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묵향이 워스트로 지목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해는 가지만, 그렇다고 저 역시 거기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묵향이 근래 장르문학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라고 생각해 오고 있었고, 그래서 그 이유를 이렇게 적어보았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15년동안 기업에서 마케팅만 해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연령별 취향이 다르고, 고무판과 시장의 독자층간의 괴리감이나 대여점 중심의 장르문학 사정도 이해합니다. 사실 대여점의 주고객층이 10대이고, 그래서 시장도 그 연령대를 중심으로 형성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장르문학 본연의 요소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임준욱의 신간, 쟁천구패의 대여점반품사태(제가 살고 있는 집에서 반경 50M이내로 대여점이 9개가 있고, 그 중 6군데에서 쟁천구패가 들어왔다가 현재는 한군데만 쟁천구패를 대여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반품사태라는 말은 순전히 저의 주관적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는 이런 점에서 이해되는 부분입니다.- 글이 너무 긴 관계로 이 부분은 다음에 기회닿는 대로 말씀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장르문학에 대한 마케팅의 문제이기도 하고, 장르문학 본질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보검박도 이야기일 수도 있고, 무대보의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장경의 암왕과 전동조의 묵향이 있습니다. 누가 저한테 어느 작품이 소설로서의 가치가 뛰어난가로 묻는다면, 저는 묵향은 쳐다보지도 않은채 단연코 암왕이라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영역을 장르문학으로 한정지어 어느 것이 장르문학의 대표작품이냐라고 묻는다면, 전 묵향을 들 것입니다. 오늘, 이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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