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오공은 겨우 낙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도의 명성 답게 삐까번쩍 하기만 한 북경과는 달리
낡았지만 고색의 안정감과 풍성함을 더 해주는 도시였다.
“쯥 뭐 좀 먹어야 할 텐데…”
혼자말 처럼 중얼거리던 돈오공은 일순 낙양대로의 끝에 다다른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눈에 다가선 두 개의 객잔..
“낙양객잔이라.. 창의력하고는, 낙양의 객잔이라니 쯧쯧…
어! 논검객잔이라. 말빨 세우는 곳이라는 겐가? 그래도 낙양객잔 보다는 낫군.”
“어서옵셔!”
점소이의 의례적인 인사를 뒤로하고 내키는 대로 자리를 잡은 그는 오리구이와
죽엽청을 시킨 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좌측 창가에 앉아 있는 조손으로 보이는 남녀.
‘헉스! 저자는 치사, 졸렬, 쩨쩨 빤스라는 몽환옹이 아닌가?
저 소저는 제갈가의 장중보옥 제갈미미인 것 같은 데…
어떻게 둘이 같이 여기 있을 수 있는 거지?’
돈오공은 의문에 빠졌으나 그들이 하는 대화에서 나온 ‘의선’이란 단어로 인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그들의 대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할배! 도대체 ‘의선’이라는 책이 뭐길래 이리도 난리래요?”
깜찍한 용모를 가진 여자로서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걸걸한 목소리로
몽환옹이라 생각되는 환갑은 훨씬 지난 듯이 보이는 늙은이에게 물었다
“쉿! 이것아 목청하구는… 에잉! ‘의선’은 함부로 입밖에 내서는 안되는
현 무림의 현안이다. 제갈가의 여식이 이렇게 경솔해서야.. 쯧쯧”
돈오공은 귀를 쫑긋 세울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천리지청술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그들 노소의 얘기를 듣기에 안간힘을 썼다.
“그 책은 단순한 의원에 관한 기록이 담긴 책이 아니다”
몽환옹은 제갈미미의 도끼눈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거의 들리지도 않을 목소리로
천천히 얘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세간에는 양연소라는 의원의 일대기가 전설처럼 부풀려져 적혀있는 책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최근 그 말 많은 돈오공이라는 작자에 의해 ‘태극인왕십팔공’이라는
절세기공이 행간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만 것이야. 도가의 태극권과 불가의
인왕신공이 합쳐진 초극무공의 실체가 어이 없게 까발려진 셈이지. ‘의선’으로 인해
무림은 한바탕 혈풍에 휩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것아! 입조심하거라!”
“헹! 그게 뭐가 대수라고.. 그런데 그런 위험한 물건을 만든 작자는 대체 누구래요?”
제갈가의 장중보옥이며 깜찍한 용모와 앙증맞은 작은 입을 소유한 제갈미미의
말하는 투는 매우 거칠기 이를 데 없었다.
제갈미미의 말에 다시 한번 “쉿”하는 소리는 내면서도 몽환옹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갈융(喝融)이라는 의계에 몸을 담은 듯한 사람이 저술했다고 알려져 있단다.
물론, 그 사람의 정체는 알려진 것은 없다. 다만, 하도 성격이 곧아 칼같다고 하여
칼융이라고도 불린다고 하지. 이제 그만 해야겠구나. 저쪽에 앉아 있는 작자가
아무래도 ‘강호풍파객’이라 불리는 재수없는 돈오공 같다. 조심해야 할 작자지…”
‘뭬야? 저 주책맞은 늙은이가… 뭐가 어째! 콱! 그냥.”
한편, 그토록 지겨운 연담살수의 추격을 뿌리친 북천은 만신창이의 몸으로도
어풍비행을 극한으로 펼치고 있었다. 그믐의 밤에 언제라도 살수의 칼끝이
보일 것 같은 숲의 언저리에 도착한 북천은
“여기가 바로 고무림인가. 이 숲속에 유림의 터로 알려진 정규연재가 있고
그 두 번째 서재에 ‘의선’이 있다고 했으니 책만 손에 넣는 다면 강호는
바로 나의 손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지… 푸핫핫핫핫핫핫하하하하하하하하하!”
북천은 그 희열을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두 번째 서재에 도착한 북천은 차근차근 책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무법자(에잉 이런 촌스런 제목의 책이), 희소(뭐야 작가는 가소라니 가소롭군),
한 권씩 침착하게 들쳐보던 북천은 취접에서 잠시 멈추는 듯 하더니 마침네
스물 한 번째 책에서 원하던 ‘의선’을 얻을 수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이 책이 나에게 왔는 가? 의원이 보면 화타나 편작이 부럽지 않고
무림인이 보면 고금무적의 무공을 얻을 수 있다는 바로 그 ‘의선’이….
이제 복수도, 군림천하도 머지 않았다. 기다려라 강호여… "
희열에 어쩔줄 모르던 북천은 다시 한번 책을 보는 순간,
"아니, 이럴수가! 1권이 없다니!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그 죽일놈의 돈오공이 나에게 사기를 쳤단 말인가?”
북천은 망연자실함 속에서도 갑작스런 섬찍함에 몸을 추스리며 뒤를 돌아다 보았다.
원래 그 자리에 있은 듯이 조용히 나타난 몽면인, 북천은 어떠한 표정도 볼 수 없음에도
그의 자세만으로도 지독한 절망감을 맛보고 있었다.
“아니.. 너는 출판사(出判邪)! 잘된 글만 찾아 절단마공을 심어 놓고 강호동도의 심장에
칼을 꽂는 다는….”
분노인지, 실망감인지 아니면 공포인지 모르는 감정에 휩싸인 북천를 보고 있던 출판사는
“그러니까 매일 보라고 했잖아 새꺄! 그리고 작가는 땅파먹고 산다던?
책 좀 사보란 말이다. 응! 응! 그리고 니가 들고 있는 책 맨 뒷 장을 봐봐. 빨리!”
말의 내용과는 달리 장단고저가 없는 얼음짱 같은 출판사의 말에 엉겁결에
책의 맨 뒷 장을 펼쳐 보았다. 북천은 맨 뒷장의 내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그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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