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마존이님의 죽음에 대한 글을 보니 제가 경험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정말 '이제는 죽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경험이지요.
2007년 11월, 그때까지 3년 가까이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퇴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귀국길이었습니다. 아침 8~9시 무렵 출발한 대한항공 비행기는 순조롭게 북상하고 있었지요. 마침 날씨도 맑은데다 자리 또한 창가인지라 창밖으로 보이는 퀸즐랜드의 모습과 산호해를 보며 쏠쏠한 눈요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파푸아뉴기니를 지나 남태평양으로 진입하던 도중이었지요.
잘 가던 비행기가 살짝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안전벨트 메라는 지시등이 켜지더군요. 뭐, 이때까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태평양 오가는 비행기에서는 난기류 만나는 일이야 흔한 편이었으니까요. 덕분에 어떤 분들은 별 일 아니겠지, 하는 생각에 벨트를 안 메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때 벌어졌습니다.
쑤욱!
하며 내려가는 느낌, 아시죠?
놀이공원에서 바이킹 탈 때 자주 느끼는 거.
갑자기 그런 느낌이 온몸을 사로잡았습니다. 옆자리에서 벨트 안 메고 있던 아저씨가 시트에서 천장까지 수직으로 튀어오릅니다. 들고 계시던 음식이 사방으로 날리고, 갑작스러운 하강에 지르는 여자들의 비명이 귓가를 가득 채웁니다.
놀라서 기내에 있는 디스플레이를 보았습니다. 항로와 고도, 등등을 간략히 표시해주는, 그거.
그거 본 순간 눈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고도가 100~200미터 정도 뚝 떨어지는 게 보였거든요. 창밖으로 보니 아니나 다를까, 비행기가 날던 자세 그대로 아래로 쑥 밀려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밑으로 밀려가나 싶은 비행기가 이번에는 2~300미터 정도 수직으로 치솟더군요. 천장까지 날라갔던 아저씨는 이제 이마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아이쿠, 땅바닥에서 나뒹굽니다. 비명이 더욱 커집니다.
혹시나 해서 돌아봤습니다.
스튜어디스들도 표정이 굳고 창백하더군요.
그제야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거, 실감이 왔습니다.
그 뒤로도 상황은 계속 악화되었습니다.
난기류를 아주 제대로 만난 비행기는 마치 널뛰기 뛰듯 2~300미터를 수직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정신없이 움직였습니다. 한 번의 수직과 하강에 드는 시간은 불과 2~3초. 정말 엄청난 속도로 휩쓸렸지요. 사람들의 비명과 울음도 덩달아 더욱 커졌습니다.
문득, 뭔가 억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니, 허탈한 느낌과도 비슷했습니다.
영화나 뉴스 이런 데에서 비행기 추락하는 장면들을 숱하게 보았는데, 내가 그렇게 되게 생겼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듯 떠올랐습니다.
두근두근.
심장이 조금씩 빨리 뛰기 시작하고, 손발에 핏기가 살짝 가시면서 조금 서늘해지는, 등에서는 소름이 돋고 호흡은 빠르고 얕아집니다. 공포가 찾아오는 것이었죠.
하지만 가장 참기 어렵고 가장 무서운 건 그 순간 떠오른 가족들 생각에서였습니다. 평생 저만 보고 살아오신 우리 부모님, 이제 나 이렇게 죽으면 어떻게 사시나 싶은 생각이 드니까 그게 정말 미칠 듯이 무서웠습니다.
그래도 꼴에 무서운 티는 안 낼려고 잔뜩 굳은 얼굴로 시트 팔걸이만 꾹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평생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계산 속도로 구명조끼의 위치를 살피고 추락시 어떤 자세가 그나마 안전할까를 미친 듯이 궁리했지요.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요. (무척 길게 느껴졌지만 지나고 나니 5분은 안 넘었을 것 같습니다.)
당장이라도 비행기를 추락시킬 것 같던 미친 난기류가 거짓말처럼 뚝 멈추었습니다. 기내는 정적에 휩싸이고, 조금 있으니 여자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물론 벨트를 안 메셨던 아저씨는 꽤 다친 상태였습니다.
기장님의 기내 방송이 들리더군요.
난기류가 너무 심해서 기존 항로를 벗어나 대만쪽으로 빙 돌아가서 비행하겠다구요.
그제야 다리에 힘이 풀렸습니다.
살았다, 싶으니 온몸에 힘이 쭉 빠지더군요. ㅎㅎㅎ
덕분에 한 시간 가량 늦게 인천공항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사고가 나지 않은 걸 생각하면 값진 경험 했다 생각하는 기억입니다.
아... 쓰고 나니 뭔가 굉장한 장문이 되어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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