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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작성자
Lv.4 인력난
작성
12.01.18 19:30
조회
403

야자타임

“한조,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야?”

“아직 이다. 재촉하지 않아도 기회는 온다.”

나의 물음에 진지하게 얼굴을 굳힌 한조가 전방을 주시했다. 손에 든 몽둥이를 까닥거리며 하품을 하던 담임의 손이 불룩한 주머니를 뒤적인다. 그 상태로 입을 쩝쩝 다시며 꼼지락거리기를 수차례, 콧구멍을 한 번 후빈 담탱이가 앞문으로 나간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지금...!”

후다닥 일어난 한조를 뒤따라 빠르게 튀어나왔다. 담임이 멀어진 곳을 주시하며 그 반대편으로 내빼는 한조의 걸음이 예사롭지 않다. 공향(跫響)이 울리지 않게 조심하며 어두운 복도를 기어가는 모습은 흡사 장롱 속을 질주하는 돈벌레 같았다.

“어떻게 담탱이가 나갈 줄 알았어?”

“쉿! 목소리를 낮춰.”

날카로운 대답에 기가 죽은 나는 잠자코 그의 뒤를 따랐다. 교실을 나오기 전에 미리 책가방을 채워두었기 때문에 덜그럭 거리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처음에야 빈 가방으로 도망갈 속셈이었지만 어느 정도 무게가 있는 편이 낫다는 한조의 말에 승복한 결과다.

실내화 가방 또한 최대한으로 압축하여 책상 안에 넣어두었다. 돌아온 담임이 우리의 자리를 본다면 어느 정도 혼동을 줄 수 있으리라.

한조를 따라 우측 계단을 쭉 내려갔다. 5층에 있는 우리 교실에서 출입구가 있는 1층까지는 약 3분 거리. 각 코스를 배회하는 선생들의 패턴은 한조가 파악하고 있다. 3층까지 단숨에 내려온 우리들은 그늘진 계단사이로 숨었다.

“잘 들어. 이제부터는 논스톱이다.”

어두운 탓에 그늘진 한조의 얼굴이 귀신처럼 둥둥 떠 있었다.

“으, 응.”

“여기서부터는 2학년 선생들의 구역이다. 다행히 오늘은 영어교사와 국사교사가 교대로 지킨다고 들었다.”

“뭔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다행이라고 하니까 괜찮겠지.”

“장난할 시간 없어!”

궁시렁 거리는 나를 무시하며 한조가 말을 이었다. 늘 생각하지만 쓸데없는 일에만 부단히 진지한 녀석이다. 그 정신으로 공부를 했으면 전국모의고사 1등을 가볍게 했을 텐데 말이지...

“두 사람은 교사 중에서도 나이가 많은 편이다. 추운 복도에 나오기 위해선 그만큼 각오가 필요하겠지. 그 말인 즉, 그들이 교실에 있을 동안 우리는 자유롭다는 이야기다.”

“오오!”

“아직 긴장을 풀기에는 일러! 앞서도 말했듯이 우리의 주적은 30,40대의 왕성한 교사들. 오늘 같은 경우에는 미친개라고 불리는 우리의 담임이라고 할 수 있겠지.”

“윽...”

담임을 생각하니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날카롭게 째진 눈이나 와이셔츠로도 확연히 드러나는 근육들은 상대방을 주눅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와 일면식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와 생활하고 있는 학생들로써는 어떻게서든지 피하고 싶은 사람 1위에 당당히 오를 정도였다. 소위 끗발 좀 날린다는 학생들도 담임 앞에서면 고양이 앞에 쥐나 진배없었으니 일반 학생이야 말해 무엇 할까.

그런데 하필 그런 담임이 담당일 때 도망가는 우리들은 뭐냐고?

선도부장을 역임하고 있는 담임은 평소엔 1층 숙직실에서 있다가 자신이 담당일 날에만 5층에 머문다. 나의 절친한 친우이며 평소 친구들 사이에 브레인을 맡고 있는 한조가 이 맹점을 이용해 지금에 다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철저한 계획은 오늘 저녁부터 조심스럽게 시행되었고, 눈을 반짝이며 지켜보던 내가 그 계획에 동조한 것은 너무나 자신만만한 그의 태도를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석식 후에 잠시 교무실에 들른 건 알고 있지?”

“어. 모르는 문제를 질문하러 갔다며?”

“그것은 거짓말이다.”

“뭐?”

“내가 간 것은 담탱이의 담배를 숨기기 위해서다.”

나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지금에 와서 이런 미친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담탱이는 1시간마다 담배를 핀다. 나는 그 시간을 조율할 필요가 있었다.”

한조가 3층 복도 쪽을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하얗게 머리가 센 교사 하나가 복도를 걸어 다니며 교실을 감시하고 있다.

“미친개의 니코틴 주기는 시계처럼 정확하다. 나는 그 주기가 거의 1시간가량으로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1시간이 지나면 습관적으로 담배를 피우게 되어 있지.”

“그 말은...!”

“쉬는 시간에 피우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때는 1층의 선생들이 출구 쪽에서 담배를 피우기 때문에 우리가 도망갈 수 없게 된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한조를 보며 교복 아래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교무실로 들어가 담배를 숨기는 대담한 짓을 물론, 지금의 상황까지 예상하고 모든 안배를 해둔 것이다. 밤하늘처럼 고요한 그의 눈이 일순간 번쩍였다.

“재떨이가 있는 간이흡연실까지는 약 1분. 다른 선생들과 이야기라도 나누면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추운 장소에서 혼자 피는 담배인 만큼 3분도 길다. 결국 많다고 해봐야 겨우 5분이 걸린다는 이야기지.”

“그, 그러면 우리가 이럴 때가 아니잖아? 빨리 가야 되는 거 아냐?”

“그래서 논스톱이라고 했잖아. 교사들이 들어간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가방끈을 말아 쥔 주먹이 긴장으로 떨린다. 한조를 따라 살금살금 복도를 건너간 나는 중앙계단을 미끄러지듯이 내려갔다. 교무실이 있는 1층이야 말할 것도 없고 2층 4층의 야자 담당 또한 꽤나 부지런한 상대인 듯하다. 한조가 굳이 3층부터 중앙계단을 이용한 까닭은 그러한 이유에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좌측 우측 출입구는 애초부터 봉쇄된 상태. 1층으로 내려온다고 하더라도 중앙에 있는 출입구에 도달할 수 없다면 야자에서 도망치기란 요원한 일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늙은 선생이 담당인 층에서 승부를 본 한조의 기지가 빛났던 순간이었다.

1층 중앙 홀에 거대한 거울을 보고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리창 너머 검은 허공이 아늑해 보인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한조와 마주본 나는 멋쩍은 웃음을 날렸다.

“의외로 시시하게 끝났네.”“그렇지.”

“저 문만 벗어나면 우리는 야자에서 도망간 최초의 학생이 되는 거야.”

어찌 보면 참으로 역사적인 순간. 그 찬란한 순간에 한조는 부드러운 미소로 나를 떠밀었다.

“먼저 양보하지. 바로 뒤따라가마.”

“내가 어찌...”

“뭐, 나를 믿고 따라준 선물이라고 생각해.”

역시 이 녀석은 멋진 녀석이다. 남다른 배짱과 거대한 그릇이 보통 학생과는 차원이 달랐다. 지금만 해도 이런 영광적인 순간을 나에게 양보하는 이 너그러움이 증거라 할 수 있겠다.

“그, 그럼...”

한조의 말을 듣고 순진하게 발을 놀린 순간,

그 녀석이 오히려 한 발짝 발을 돌린 것은 나조차도 예상 못한 일이었다.

“엥?”

바보 같은 신음을 흘리는 나와 중앙 계단 아래 작은 창고실로 달리는 한조.

상황을 파악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끄럽게 울리는 사이렌과 나를 결박하는 교사들 틈바구니로 천장 구석에 교묘하게 감춰진 감시카메라에 조용히 웃고 있는 한조가 비친 것 뿐이었다.

그날, 한조는 야자를 깠고 나는 못 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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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때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그래도 나름 재밌었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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