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1 레전드 열전①] '사이보그' 제롬 르 밴너
공격 또 공격..영원한 싸움반장
“K-1이 예전 같지 않다.”
최근 K-1 행보를 지켜보는 팬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한때 입식 격투 최고봉이었던 K-1은 여러 문제로 '잠정휴업'의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새로운 경영진과 함께 제2의 출발을 선언했다. 그리고 FEG에 이어 K-1을 이끄는 단체로 확정된 K-1 글로벌은 예전의 월드 그랑프리를 부활시키며 야심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K-1은 갈 길이 너무 멀다. 과거 명성을 떠올렸을 때, 선수층이 너무 빈약하다. 이런 점은 스타급 파이터들이 대회 흥행에 미치는 파급력을 놓고 봤을 때는 더더욱 두드러진다.
현재 K-1에 소속된 선수 가운데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인물은 미르코 크로캅과 바다 하리 정도다. 카탈린 모로사누-폴 슬로윈스키-자빗 사메도프-헤스디 게르게스-아마다 히로미-벤 에드워즈 등 낯익은 이름들이 있긴 하지만, 과거의 화려했던 전성기를 기억하는 팬들을 만족시키기엔 부족하다.
더 아쉬운 것은 네임밸류 ‘빅2’인 크로캅과 하리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크로캅은 예전의 기량을 상실한, 이름값만 있는 노장일 뿐이다. 하리는 또 사고를 치고 나가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외려 레미 본야스키-구칸 사키 등을 보유한 라이벌 단체 '글로리(Glory)'가 현재로서는 더 나아 보인다.
물론 K-1측 역시 이런 사실을 어느 정도 감안하고 시작한 분위기다. 꾸준히 대회를 치르면서 규모를 키우다보면 머지않아 새로운 스타들을 바탕으로 얼마든 재도약도 가능하다. 이러한 K-1의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며 과거 화려한 시절을 이끌었던 스타들의 활약상을 되짚어본다.
K-1 대표하던 공격형 하드펀처
K-1 인기 파이터를 논할 때 결코 빠지지 않았던 선수로는 '하이퍼 배틀 사이보그' 제롬 르 밴너(40·프랑스)도 있다. 1995년 데뷔 이래 흥행전선에서 이탈하지 않고 꾸준하게 팬들의 사랑을 먹었다. K-1 팬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확실한 존재감을 자랑했다.
일단 밴너는 승패를 떠나 화끈하다. 물러설 줄 모르는 특유의 파이팅을 바탕으로 난타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후퇴를 모르는 이른바 '전진본능(?)'은 수많은 이들을 빨아들였다.
밴너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것이 무시무시한 펀치다. 눈앞의 상대를 무자비하게 두들겨 부수는 펀치 세례는 보는 것만으로도 움찔거릴 정도로 가공할 파괴력이 묻어난다.
전성기 구사하던 레프트 스트레이트는 “상대 가드를 부수고 안면까지 박살낸다”는 평가를 이끌어냈을 정도로 전가의 보도급이다. 헤비급 프로복싱계의 레전드 에반더 홀리필드의 스파링 파트너는 물론 프로모터 돈킹에게 프로복싱 입문 제의를 받을 정도로 밴너의 펀치는 그야말로 K-1에서도 으뜸이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공격적인 스타일 탓에 득 못지않게 실도 많았다. ‘무관의 제왕’이라는 자랑스럽지 못한 훈장을 달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진밖에 모르던 '무관의 제왕'
K-1 역사를 돌아보면 묘하게도 이른바 '하드펀처' 타입의 선수들은 챔피언 타이틀과는 그다지 인연이 없었다. 킥복서이면서도 절묘한 타이밍에서 펀치를 꽂았던 브랑코 시가틱과 혀를 내두를 정도의 맷집을 자랑하는 마크 헌트 정도를 빼고는 대부분의 그랑프리 우승은 킥 기술이 빼어나거나 킥 기술을 겸비한 파이터들이 차지했다.
밴너를 비롯해 마이크 베르나르도, 레이 세포 등 당대 ‘강펀처’들은 항상 중요한 길목에서 분루를 삼켰다. 기량, 인기, 명성, 존재감 등 모든 면에서 챔피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면서도 유독 타이틀만 없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피터 아츠, 앤디 훅 등 전설적인 챔피언들을 상대로 천적의 포스를 내뿜었던 '철완(鐵腕)' 베르나르도, 최고의 맷집과 파워로 무장한 헌트도 감히 난타전을 두려워하던 ‘싸움반장’ 밴너는 그야말로 운이 없었다는 말 밖에는 그들의 ‘무관’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베르나르도는 초창기 흥행을 이끌었던 '4대 천왕' 가운데 하나로 그중에서도 최고의 펀치와 파워를 자랑했다. 하지만 그랑프리 우승이 없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때문에 당시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세대 중에는 그를 잘 모르는 이들도 많고, 보았다고 해도 뇌리에서 점점 잊히는 게 사실이다.
밴너를 아꼈던 팬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 중 하나도 바로 이점이다. 지금이야 챔피언 못지않았던 불세출의 선수로 기억하고 있지만, 은퇴 후 한참의 시간이 흘러서까지 기억에 남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뚜렷한 강점과 약점
어네스트 후스트가 4차례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배경에는 여러 요소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이유를 꼽자면 눈에 띄는 약점이 없었다는 점이다.
다른 정상급 선수들처럼 팬들의 이목을 확 끌어당길 만한 강력한 임팩트는 덜했지만 체력과 스피드, 펀치, 킥, 가드 등 특별히 모자란 부분이 없었다. 게다가 특유의 지능적인 플레이와 노련미, 다양한 컴비네이션을 바탕으로 전설로 추앙받게 됐다.
반면 베르나르도는 묵직한 주먹을 바탕으로 화끈한 KO퍼레이드를 펼치며 경기마다 팬들의 함성을 이끌어냈지만 지나친 펀치 위주 스타일 탓에 상대적으로 부족한 하체방어 능력으로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지는 경우가 잦았다.
물론 웬만한 상대들은 이 같은 약점을 알아도 공략하지 못했지만 비슷한 레벨의 강자들과의 경기에서는 발목을 잡는 요소로 작용했다. 때문에 하루에 몇 경기를 치러야하는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상대 선수들이 노골적으로 로우킥을 남발했고, 결국 데미지가 쌓여 다음 경기에서 허무하게 무릎을 꿇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물론 밴너는 베르나르도와 달리 킥의 공격과 방어 모두 우수했다.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밀어붙이는 저돌적 공격 스타일 탓에 유리한 흐름을 타면서도 뒤집히는 등 고질적인 ‘패턴의 약점’은 결국 보완하지 못했다.
좋은 경기를 펼치고도 세포, 헌트 등에게 카운터를 허용하며 무너진 것이 대표적이다. 조금 더 지능적으로 운영했다면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물론 저돌적인 스타일로 인해 뜨거운 인기를 얻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점 때문에 지지했던 팬들도 나중에는 노련한 밴너를 요구할 정도였다.
하지만 밴너는 끝까지 그런 스타일을 고수했다. 한때 인파이터의 라이벌로 꼽혔던 '벌목꾼' 아츠마저 시간이 흐른 뒤에는 스타일을 바꾸고 노련미를 입혀 ‘제3의 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했지만, 밴너 만큼은 세월이 흘러도 한결 같았다. 일각에서는 “고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고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비관적인 분석도 제기했다.
상대를 진정 배려하는 가슴 따뜻한 남자
2005년 오사카 대회서 팬들의 눈길을 끈 승부가 있었다. 작은 체구에도 특유의 스피드를 살린 움직임과 정확한 타이밍에서 나오는 한 방으로 K-1 헤비급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 태국의 무에타이 전사 카오클라이 카엔노르싱, 그리고 그와 맞선 상대는 부메랑 훅과 쇼맨십으로 유명한 '남해 흑표범' 세포였다.
체급을 무시하고 헤비급의 존재감 있는 선수들을 연파하던 카오클라이는 주최 측에서는 썩 반기지 않았다. 주최 측 입장에서 카오클라이는 헤비급 무대를 어지럽히는 미꾸라지 같았다. 결국, 주최 측 의도 하에 세포가 이른 바 ‘처형자(?)’ 역할을 맡았다.
약한 상대를 만나면 여지없이 희롱에 가까운 도발을 감행하는 세포는 카오클라이의 몸놀림을 잡지 못해 답답해했고, 경기 자체에 대한 집중보다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도발을 감행했다. 일본 관중들은 세포의 괴상망측한 퍼포먼스에 화끈하게 응답했고, 세포는 큰 점수차로 승리했다.
태국의 순박한 청년은 억울함과 분노로 잔뜩 상기된 표정에 금세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했고, 안쓰러운 눈으로 지켜보던 후스트가 보낸 가벼운 위로의 제스처를 끝으로 쓸쓸히 퇴장했다.
그 순간 국내 팬들 뇌리에서 떠오른 남자가 있었다. 다름 아닌 밴너였다.
밴너는 상대가 강하든 약하든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공격을 감행하는 파이터의 예의(?)에 충실하고, 다소 흥분한 상태에서도 선전을 다짐하는 상대의 제스처에 꼬박꼬박 화답한다. 밴너의 경기에서 상대방이 억울함을 표시하는 경우는 드물다. 불같은 파이팅을 선호하는 스타일상 모호한 판정이 나오는 빈도가 낮고, 다운이나 KO가 속출하기 때문이다.
K-1이 입식격투계의 아이콘으로 성장했던 이면에는 라운드가 짧은 대신 화끈한 승부가 자주 펼쳐졌다는 요인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가장 K-1다운 파이팅을 아끼지 않는 밴너에게 팬들이 열광했던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다. 다른 선수들처럼 딱히 캐릭터를 꾸미고 개성을 강조할 필요가 없었다. 링에서 보여주던 파이팅 그 자체가 팬들에게는 최고의 쇼맨십이었기 때문이다
-윈드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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