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중세시대라하면 많은 분들이 무역도 없고 외교도 없고 경제및 기술적 교류도 없는 완벽한 혼란기라 생각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요. 중세시대는 분명 막장이고 대단한 혼란기니까요. 하지만 그런 혼란기에도 황금은 여전히 그 요사스러운 빛으로 사람을 홀리기 마련이고, 그 황금을 얻는 가장 쉬운 방법중 하나는 바로 무역입니다. 그리고 흔한 생각과는 달리, 무역은 중세시대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중 하나였습니다.
우선 중세 초기부터 차근차근 살펴보기로 합시다. 중세 초기에 무역이라는 것은 사실상 동방에서만 통용되던 개념이였습니다. 인도 각지에서 데나리우스 은화가 유물로서 발굴됨으로서 증명 된 로마시대의 인도 무역로는 과거의 영광을 잃은채 어느정도 무너져내렸지만,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간다고 여전히 풍요와 황금을 제국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었습니다. 비잔틴 제국은 이집트를 통제함으로서 알렉산드리아 -> 홍해 -> 인도양 -> 인도를 잇는 인도와의 육상무역로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사산조 페르시아는 비교적 동방에 위치해 있다는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해 중국과의 실크로드와 인도와의 육상교역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해서 중세 초기의 서방세계에서 무역을 찾아볼 수 없냐면 그것은 아닙니다. 중세 초기에도 서방세계에는 동방과의 무역을 담당하는 2개의 대도시가 있었습니다. 바로 베네치아와 키예프. 우선 베네치아부터 봅시다.
베네치아는 아드리아해 북부에 고대시대부터 존재해온 지역으로서, 카시오도루스라는 인물의 기록에 의하면 서기 후 6세기 가량까지는 소금과 생선을 특산물로 가지고 있었다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초기의 베네치아는 딱히 특별한 것 없고 어디에서나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그저 그런 어촌이였습니다. 하지만 서기 후 6~8세기 가량에 이탈리아의 권력공백을 노리며 독일로부터 롱가바르드족이 남하하면서 비잔틴령 북이탈리아는 롱가바르드족에게 함락됬고, 북이탈리아의 대도시에 사는 많은 시민들은 약탈을 두려워하며 해안가의 섬으로 도주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베네치아에 많은 이민자들이 모여서 대도시로서의 베네치아를 시작했고, 콘스탄티노플의 황제로부터 실질적(De Facto) 독립을 인정받고 비잔틴 제국과의 거래를 허락받으며 크고 빠르게 급속도로 번성했습니다. 하지만 중세 초기는 아직 베네치아가 한참 성장할 시기이고, 전성기를 맞이하려면 좀 더 지나야합니다.
한편, 키예프의 역사는 베네치아와 살짝 다른 방식으로 흘렀습니다. 키예프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중세 초기 러시아의 역사를 살짝 얘기해봐야합니다. 서기 후 9세기 가량의 러시아는 바랑기아인이라 불리는 스칸디나비아계 이주민들, 쉽게 말해 바이킹들에 의해 지배받고 있었습니다. 서기 후 11세기 가량에 키예프의 수도승인 네스토르(Nestor)라는 사람이 쓴 역사책인 The Primary Chronicle에 의하면 슬라브족은 서로간에 싸우다가 하도 질린 나머지 법, 평화, 그리고 안정을 간절히 갈망하게 됬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쪽에서부터 바이킹들을 불러와서(!?!?!?) 슬라브족 모두를 굽어살피며 법과 평화와 안정으로서(!?!?!?) 지배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법, 평화, 그리고 안정을 원할 때는 바이킹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한다는 역사적 교훈이 여기서 보입니다.
정말 평화롭고 질서로운 광경이군요!!!
여하튼 바랑기아인이라 불리게 된 러시아 지역의 바이킹들은 루릭 삼형제의 지도아래 우왕ㅋ 굳ㅋ하며 러시아지역을 지배하게 됬습니다. 여담이지만, 훗날 이 루릭은 나머지 형제가 모두 죽자 러시아의 나머지 지역을 상속받아서 슬라브 러시아를 통일한 후 앞으로 수백년간 러시아를 꽉 붙잡을 루리키드 왕조를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바이킹이 괜히 바이킹인 것은 아니지요. 바랑기아인중 일부는 몇년만에 러시아에 싫증이 났는지 세상의 황금이 모두 모인다는 짜르그라드, 콘스탄티노플을 무려 약탈하기 위해 배타고 강따라 남하를 시작합니다. 역시 바이킹다운 패기입니다. 정말 평화로워요. 여하튼, 소수의 바이킹들이 강따라 남하하다 카자흐족의 영향력에 놓여있던 초기의 키예프를 강가에서 발견했고, '어, 저 부동산 제법 있어보이는데?' 란 생각이 들었는지 그대로 그곳을 점령해버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루스 러시아 최대의 대도시인 키예프의 역사가 시작했습니다.
키예프는 그 후 올레그라는 사람이 키예프를 수도삼아 러시아 전체에 영향력을 확장하면서 그의 팽창하는 제국의 심장으로서 급속발전을 시작했습니다. 러시아에 풍부한 상품인 털가죽, 밀랍, 꿀, 노예는 키예프에 모여져 지중해로 운송됬고, 콘스탄티노플에 모인 동방의 부는 다시 키예프를 걸쳐 발트해로 흘러가면서 키예프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주었습니다.
쓰다보니 제법 길어지네요. 시간도 늦어서 전 이만 쉬다가 자러가야겠습니다. 중세 중기와 후기는 아마 다음에 기억나거나 하면 마저 쓰겠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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