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성 글은 쓰고 싶지 않지만...
저도 즉흥작을 하나 쓰는 입장에서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의견들이 많네요.
메인 작품은 워낙 장편이라 나노 단위 계획 하에 쓰고 있습니다만,
얼마 전 여러 가지 이유로 즉흥작을 하나 쓰기 시작했습니다.
즉흥작이라지만 실은 오래 전부터 마음 속 어딘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던 이야기이긴 했지요.
다만 서사 구조(플롯, 시놉, 완결)는 짜두지 않고 모티브와 컨셉에만 의존해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남들 보여주는 목적이 아니더라도 소통 욕구는 있는 것이고, 꼭 골방 금고에 꽁꽁 싸매둘 필요는 없는 거니까요. 그러나 메인 연재가 아니라서 연재주기를 보장할 수 없기에, 또 혹시나 보는 사람이 생기면 묵시적 완결 보장 계약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없기에 ‘이 글은 즉흥소설입니다’ 라고 미리 간판을 걸어두었습니다. 자유 여행 하는 기분으로 어깨에 힘을 빼고 걷고 싶었거든요.
즉흥 연재라는 건 책임감 없는 태도다, 라는 의견까지는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이 글은 즉흥 연재입니다’라고 알리는 행위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네요.
오만이니 천재적으로 보이고 싶어서니 하는 것은 터무니 없는 억측이고,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그 반대겠죠. 소심한 면책 욕구. 조금 무책임해지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이면 연재를 하면 안 된다? 그런 태도로 글을 쓰면 안 된다?
글쎄요. 오늘도 작가의 사정으로 중단되는 수많은 연중작들이 모두 지름작은 아닙니다. 철저한 계획에도 끝까지 가지 못하고 넘어지는 길도 있고, 플롯은 있지만 표현이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작가 신변 상의 이유로 중단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계획된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것처럼, 계획되지 않은 일이라고 해서 이루어지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건축이라면 반드시 도면이 필요하겠지만, 조각이라면 에스키스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초대작인 경우 얘기가 달라지지만요...
아마추어의 연재 심리는 항상 이중적입니다. 소통하고 싶은 욕구와 소통에 뒤따르는 책임에 대한 두려움.
‘즉흥소설입니다’라는 말에는 그런 이중 심리의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소통의 책임이 두려우면 혼자 일기장에 쓰라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연중이나 리메이크 가능성을 상정하고 미리 면책하려는 무책임한 태도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명시적으로 비난하거나 당위성을 논할 계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툭 터놓고 말해서 미리 위험성을 고지했으니 의심스러우면 안 읽으면 그만입니다. 아마추어 연재를 읽는 것은 투자에 가까운 행위입니다. 시간을 투자해 재미를 벌어들이는 행위. 건축물이라면 어떤 경우에도 무너지지 않을 것을 보장해야 하지만, 투자는 원금보장형이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바닥 없는 추락도 가능합니다. 단 연재중단의 경우 투자의 손실은 금전이 아니라 글을 읽는 데 소모한 시간과 감정적 공허함이겠지요. 그런데 사실 이 위험성은, 즉흥작에만 있는 게 아니라 모든 비계약 연재물에 공평하게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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