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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작성자
Personacon ALLfeel
작성
12.11.16 15:54
조회
1,039

안녕하세요 정담분들. 오랜만입니다.

기억해주시는 분이 10% 아래라고는 생각하지만 아무튼 오랜만입니다.

그냥 심심하기도 하고, 정담이 아니면 연락할 수 없는 분들도 몇 계시니 근황을 남깁니다. 제 인생 속에서는 비교적 파란만장했던 일주일이라고 생각하니 다른 분들도 재밌게? 읽어주세요.

3500자 정도 되니 물론 깁니다.

저번 주 화요일 배가 기묘하게 아프더군요. 그리고 변도 나오질 않고요. 그치만 뭐 장염은 언제나 제 인생을 함께한 친구였으니 별 걱정은 안했습니다. 지난 1월 경인가 언젠가에 입원했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게 웬걸.

언제나 절 무지하게 괴롭히다 질리면 자연히 제 곁을 떠나던 장염 군이 이틀이 지났는데 떠나긴 커녕 더더욱 심해지더군요.

이건 안 되겠다. 아무래도 변비가 원인인듯 싶으니 병원에 가보자.

그래서 저번에 입원을 2~3번 정도한 병원으로 다시 찾아갔습니다.

외래에서 적당히 약받아 올 생각이었는데 의사 선생님은 헛소리 하지 말고 응급센터로 가보라고 하네요(물론 실제로는 좀 더 상냥하게 말하셨지만은).

불안감과 함께 찾아가자 X선 검사, 피검사, CT검사가 스무스하게 진행됐습니다. 그와 동시에 저는 엄청난 불안감에 휩싸였죠.

"이거 설마 입원하는 거 아니야?"

당시 6일 화요일. 수능이 8일 목요일이었으니 입원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고 직감과 이성이 동시에 알려줬습니다. 이것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돌아온 것은 집에 가도 좋다는 소리가 아닌 콧줄이었습니다. 콧구멍으로 얇은 플라스틱 줄을 쑤셔박더군요. 소장까지 그걸 박아서 관을 통해 거기 있는 걸 빼낸다고 하더군요.

그건, 정말, 괴로웠죠.

처음 꽂을 때 엄청난 구역질이 났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않겠죠. 그 후로도 계속 관 덕분에 구토감과 목 통증에 시달린 건 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제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단어는 단 한 가지.

"수능"

결국 입원을 당하고 하루가 지나 7일 수요일이 되었습니다. 그래요, 당장 내일이 수능이었지요. 제 개인적인 입시 사정상 수능을 그렇게 잘 볼 필요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낙제점을 맞거나 불참을 하면 당연히 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는 일 때문에 뉴욕으로 일주일 간 출장간 상태. 콧줄을 소장까지 쑤셔박혀있고 링거대에 매여 침대에 폐인 상태로 있었던 저를 위해 싸워줄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능력자인 어머니 덕분에 수능 당일 병원에서 외출하는 것이 허가되고, 보건실에서 혼자 수능치는 것으로 되었습니다.

그리고 8일 목요일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콧줄을 빼고 링거를 빼고, 모 고등학교의 보건실로 찾아갔지요. "링거를 빼고" 말입니다.

혹시 아주 건강하셔서 입원을 한 번도 한 적 없는 축복받으신 분들이라면 모르실 수도 있지만 소화기 계통으로 입원한 환자는 99% 금식이 됩니다. 입원 1~2일 정도에는 물도 안 되고요.

그래서, 여기서 링거를 뺐다는 건 에반게리온으로 치면 에너지 선이 끊겼다는 게 됩니다. 5분 활동하면 활동정지가 된다는 말이죠. 저 같은 경우에는 1교시가 그 5분이였던 모양입니다.

개인적인 입시사정상 수능공부에는 별로 힘을 들이지 않았음에도 언어는 확실히 쉬었습니다. 이 시점에서의 저는 '뭐야! 이런 상태에라도 할 수 있잖아!' 라고 들뜨며 자의식과잉이 되어있었죠. (그걸 비웃듯히 이번 수능 언어의 1등급컷은 괴악하게 높지만요)

하지만 아까 말했듯히 에너지 선이 끊겨도 버틸 수 있는 건 1교시까지였습니다. 아름다운 간호사 분이 주사를 놔준 덕분에 속 쓰리거나 배고파 죽겠거나 하진 않았지만 뇌에 포도당을 주지 않으니 바로 파업에 들어가버린 겁니다.

보건실에서 보건 선생님과 감독관 한 명과 저 한 명이라는 사치스러운 환경이었지요. 저 한 명의 학생을 위해 선생님 두 명이 붙은 거니까요. 문제를 다 풀고 피곤하면 바로 옆에 있는 침대에 눕는 것도 허가되는 환상적인 환경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2교시부터 제가 푼 문제는 커녕 무슨 과목이었는지 조차도 기억이 애매합니다. 아무래도 이 즈음부터 두뇌는 물론이고 멘탈이 무너지기 시작한 거겠죠.

병원으로 돌아왔습니다. 내시경과 소장 검사를 하기로 하더군요. 근데 금요일에는 시간이 찼고 주말은 다들 쉬니 월요일까지 그 기한이 늘었습니다.

금식인 채로 월요일까지 병원침대에서 버티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5천 자 정도로 쓰고 싶지만 재미없을테니 이건 생략하죠.

11일 일요일이 제 생일이었지만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것도 슬플 뿐이니 넘어갑시다. 부모님이 생일선물은 입원비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던 제 마음을 정담 분들은 이해하실 수 있겠지요.

(마침 보험을 들어놔서 90%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어머니는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요)

대장내시경.

설사약을 마셔서 모든 것을 물로 승화시켜 자신의 몸안을 청소시키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오후 7시부터 새벽 3시까지, 그리고 다음 날 아침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숨막히는 폭풍설사의 계절. 얼마나 지옥같았는지 2만 자 정도 쓰고 싶지만 이것도 재미없을테니 생략하죠.

소장검사.

바륨이라고 하는 괴악한 액체를 종이컵 4개 분량 정도 마시는 게 얼마나 힘든지 5천 자 정도 쓰고 싶지만 이하생략.

검사 결과가 나오는 건 늦었습니다.

미약한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인지라 정말 버티는 건 힘들었습니다. 더욱 힘든 건 입원한지 이틀 된 날부터 통증은 전혀 없었다는 점이었지요. 제가 아프다면 납득하고 입원할 수 있는데, 전혀 안 아픈데 입원을 계속 하라는 건 당시의 저에게는 상당한 정신적 데미지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온 결과가 크론병이었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언제나 같이 해왔던 장염 친구, 1년 전 했었던 치루 수술(정담에서는 당시 다른 수술이라고 말했었는데 그거 거짓말입니다), 이번 년도 초에 있었던 장염입원.

그걸 종합해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왜 몰랐을까 궁금했을 정도로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크론병이 아니면 대체 뭐냐고 되물을 정도로요.

의학해설을 하는 건 굉장히 지루한 일이기에 간단히 설명하자면 소화기관 전체에 염증이 발생하는 만성 질환입니다. 윤종신 씨가 걸려서 한 때 유명해졌었지요. 군대 신검에선 5급 판정일 겁니다.

이 병은 꾸준한 음식 관리와 적절한 약 처방이 있으면(그리고 약간의 운) 아무런 문제 없는 생활을 지낼 수도 있지만은, 이 병의 끔직한 점은 치료가 불가능해 "평생" 친구로 삼아야 한다는 점과 혹시 증상이 심해지면 끔찍한 합병증이라는 처벌이 내려진다는 점일까요.

아무튼 그렇게 해서 난치병과 함께 평생을 약속해버린 올필이었습니다.

글은 꾸준히 쓰고 있었지만 수험생이라는 신분 덕분에 너무 더뎌왔네요. 게다가 이번 일로 인해 신경써야할 짐이 하나 더 생겨버렸으니 다음 작품을 내놓을 수 있는 건 적어도 2013년이 되려나요. 죄송할 따름입니다.

티리엘 님도 크론병이셨다고 하셨던 기억이 있는데 혹시 이 글을 보고 계신다면 댓글 남겨주세요. 선배로서 혹시 가르침과 깨달음을 주실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Comment ' 10

  • 작성자
    Personacon 유주
    작성일
    12.11.16 16:02
    No. 1

    이런, 제 오랜 친구님 별일이 다 있으셨네요
    쪽지 주세요. 오랜만에 연락이나 하고싶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이설理雪
    작성일
    12.11.16 16:18
    No. 2

    남 일이 아니네요. 만성 질환이라도 관리만 잘 하면 염증수치가 많이 줄어들기도 합니다. 부디 힘내시길.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히나(NEW)
    작성일
    12.11.16 16:23
    No. 3

    저런... 힘내세요 올필님 ㅠㅠ) 정말 힘드셨겠다 수험생이었던 점도
    맘고생 많이 하셨겠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1 집파리
    작성일
    12.11.16 17:18
    No. 4

    많이 힘드셨겠네요..

    얼렁 몸조리 잘해서 건강을 찾으세요.

    찾아보니 희귀난치성질환으로 국가서 지원을 해준다는데..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참조 하시라구 사이트 링크 합니다.

    <a href=http://helpline.cdc.go.kr/cdchelp/disease.gst?method=detailView&NO_DISEASE_CODE_SEQ=543&cateCode=&OMIM_ID=&searchKind=&Kof=11&Enf=&searchWord=&mediExpenses= target=_blank>http://helpline.cdc.go.kr/cdchelp/disease.gst?method=detailView&NO_DISEASE_CODE_SEQ=543&cateCode=&OMIM_ID=&searchKind=&Kof=11&Enf=&searchWord=&mediExpenses=</a>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0 동넷사람
    작성일
    12.11.16 19:38
    No. 5

    그래도 무사히 수능 마치셨다니 다행입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2.11.16 20:46
    No. 6

    그런 일이 있었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묘로링
    작성일
    12.11.16 21:00
    No. 7

    크론병....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낭만냥
    작성일
    12.11.16 22:11
    No. 8

    힘드셨겠네요... 수능크리가 참 대단하던데 시험전날 장염크리라니....
    올필님 힘내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구름돌멩이
    작성일
    12.11.16 22:54
    No. 9

    그래도 고생하셨습니다ㅠㅠ 몸조리 잘 하시길 빌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셸a
    작성일
    12.11.24 14:53
    No. 10

    어휴.... 참 큰일 당하셨네요. 고생 많으셨고 몸조심 하시길...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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