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재미는 없습니다.
동생 죽은 후로 1주일 내내 침울해져 있었습니다.
동생 화장하고 난 다음에 바로 동아리 캠프를 갔다왔죠.
저는 가기 싫었는데 부모님이 억지로 보내셨습니다. 하기야 집 구석에서 세 사람이 우울하게 박혀 있어봐야 더 우울해질 뿐이니까...
부모님도 동생 흔적들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고요.
아무튼 그렇게 이번 주 월요일까지 캠프에 있다가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집구석 정리하다가 바로 어제야 교육봉사 애들이 생각났죠.
동생 죽은 그 날이 바로 교육봉사 마지막 날이었는데, 동생 사고 때문에 그냥 마지막날을 휭 날려버렸거든요.
그래서 애들한테 전화를 돌렸죠. 방학 되기 전에 한 번 만나서 못 다한 뒤풀이를 하자고.
애들이야 공짜 밥 먹여준다니까 아주 좋아서 날뛰더군요. 전화상으로도 폴짝폴짝 뛰는 게 느껴질 정도. -_- 썩을 녀석들....
그러다가 저를 졸졸 쫓아다니던 녀석도 한 번 불러야 하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안 부르자니 인연이 너무 각별-_-하고, 부르자니 또 무슨 곤욕을 치를지 모르겠고...
저번에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너무 쌀쌀맞게 대하고 돌아선 것 같아서 마음이 좀 걸리더군요.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어제 저녁에 전화를 때려봤는데...
....이 자식이 전화를 받지도 않고 끊어버리대요?
바빠서 못 받았나, 싶어서 다시 걸어보니까
....또 끊어버립디다. -_-
그래서,
'야, 임마. 너 뭐여! 왜 내 전화 무시해!' 이런 메시지랑,
'이 좌식, 내일 두고 보자!' 이런 메시지를 보냈죠.
....문자 메시지도 씹더군요.
아예 내 번호를 통째로 수신거부 한 게 아닌가? 싶어서 부아가 치밀더군요.
그래서 오늘 봉사확인증을 제출하러 그 중학교에 갔습니다.
가서 서류 제출 다 마친 다음에, 애들 기말고사 시험 시간 끝날 때까지 정문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면서 대기를 탔죠.
웬 험상궂게 생긴 놈이 중학교 앞을 어슬렁거리니까 지나가던 선생님들이 겉으로는 웃으면서 "무슨 일로 오셨어요?" 하고 물으시지만 속으로는 '써글 생긴 것도 엿 같이 생긴 애가 왜 얼쩡거려?' 하는 게 티 팍팍 나는 얼굴로 물어보시더군요.
대충 교육봉사자인데 멘티 학생 기다린다고 둘러댔죠. -_-
뭐...걔가 제 멘티는 아니지만 어쨌든 100% 거짓말은 아니니까!
아무튼 시험 시간 끝나자마자 그 녀석이랑 같은 반인, 제가 가르쳤던 학생에게 전화를 넣어서 교무실 앞으로 나오게끔 하라고 시켰죠. 예.
그렇게 걔 기다리고 있는데 웬 머리 벗어진 선생님이 지나가다가 또 저더러 묻더군요.
누구 기다리느냐고 하기에 1학년 학생 기다린다고 하고, 그 학생 이름이 뭐냐기에 그 녀석이 이름을 대답해줬죠. 그랬더니 마침 그 녀석이 친구들이랑 같이 딱! 나타나더군요.
머리 벗어진 선생님이 걔더러,
“이 분이 네 멘토 선생님이야? 너 멘토링해?”
하고 물으시니까 그 녀석이
“아뇨. -_-”
-_- 이런 XXX!!!
아, 물론 제가 걔 멘토 선생님도 아니고 멘토링해주지도 않지만....
거기서 그렇게 대답해야겠냐!!
그 녀석은 천연덕스럽게 제 시선을 피하면서 그 대머리 선생님한테 수학 왜 이렇게 어렵게 냈냐고 징징거리기만 하더군요. 아놔, 썩을 녀석. 내가 지금 난처한 상황에 빠진 거 안 보이냐. -_-
아무튼 저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는 그 대머리 선생님한테 ‘우리 반 학생은 아니지만요! 저를 막 쫓아다니면서 괴롭힌... 엉엉 ㅜㅜ’ 등등 온갖 변명을 해서 어찌어찌 보내고...
그 녀석 멱살을 부여잡고 탈탈탈 털고 싶은 것을 참으면서 목소리를 높여서 있는 대로 갈구었죠.
“네 녀석이 두 가지 면에서 네가 나한테 혼날 게 있다.”
“뭔데?”
“이 자식이 끝까지 반말이야.. -_-”
“아오 친구들 앞에서 욕할 수도 없고...”
“내가 할 말이다, 이 자식아아아!”
그래서 전화 통화 안 받은 것, 그리고 제 카톡 친구 목록에 뜬 아이디가 자기 것이 아니라고 옛날에 구라쳤던 것을 열라게 갈구어댔습니다.
걔가 제 번호를 갖고 있어서 제 카톡 목록에 웬 이상한 닉네임이 떴거든요. 애니 덕후 냄새가 풀풀 풍기는... 그래서 몇 주 전에 걔한테 ‘이 카톡 아이디 혹시 네 거냐?’ 하고 물어보니까 아니라고 그 녀석이 바득바득 우겼는데... 어제 그 녀석 친구한테 얻은 그 녀석의 전화번호를 연락처에 넣으니까 바로 그 녀석의 카톡 아이디라고 대놓고 알려주는 착한 카톡 시스템. ^^
“너! 너! 내 전화 통화 왜 씹었어! 문자 메시지도 왜 씹었어!!”
“바쁘니까. ^^”
“바쁘긴 개뿔이 바빠! 네가 무슨 대학생이냐!! 고작 중학생 기말고사 치르면서 뭐가 바빠!”
“친구랑 얘기하는데 짜증나게 전화 오잖아.”
“야, 이 썩을아! 그래서 아예 수신거부를 때려놓냐?”
“나 수신거부한 적 없는데? ㅇㅅㅇ 왜 혼자 피해망상?”
“그럼 왜 전화가 받지도 않고 끊어지는데!”
“내가 그냥 끊음. ㅇㅇ”
“더 나쁘잖아아!!!! 그리고 이 덕후 냄새 풀풀 풍기는 카톡 아이디가 네 것이렷다!”
“-_- 남이 애니메이션 좋아하면 좋아했지 덕후 타령하고 난리야. 인권침해로 고소할까부다.”
“시끄러! 무슨 얼어죽을 인권침해야!”
이딴 쓸데없는 대화를 나누었죠.
그 녀석 친구들은 안절부절못하면서 옆에서 지켜보고...
그러다가 그 녀석이 갑자기 물어보는데...
“근데 나 왜 불렀어?”
“엉?”
할 말이 없더군요.
원래 목적은 다른 애들 다 뒤풀이 부르는데, 너는 우리 반 아니지만 안 부르기가 뭣해서 부를 거라고 말해주려고 온 것이었거든요?
근데 막상 화 낼 거 다 내고 나니까 걔한테 호의를 베푸는 듯한 말을 하기가 참 어색한 상황이 되어버렸지 뭡니까. -_-
“아, 그게 원래 서류 제출하러 왔늗네 허ㅗ비험리ㅏ엄림ㄹㅁ”
“서류 제출하러 왔으면 서류만 제출하구 가면 되지? 나는 왜 불렀어?”
“아 그러니까 허비흐카음니ㅤㅏㅇ르ㅤㅏㄴㄹ햐...
아! 그냥!! 우리 반 뒤풀이하려는데! 너 안 부르기가 뭣해서! 부르려고 한다!! 그래서 시간 언 제 되냐고!! (엄청 웅얼거리는 소리 섞어서 말함.)“
“아,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겠어. 나중에 문자로 말하라고.”
“...-_- 문자 보내면 확인하기나 할 거냐.”
“ㅇㅇ 이번에는 함.”
“...-_- 진짜? 전화도 받을 거임?”
“ㅇㅇ 받는다고.”
뭐 비도 오고 걔 친구들도 빨리 집에 가고 싶어할 테니, 그냥 보냈습니다.
지가 잘 받겠다는데...믿어줘야죠. -_-
그래서 뒤이어 일 마치고 3시간쯤 지난 뒤에 집에 와서 전화를 때려봤는데... 의외로 순순히 잘 받더군요? 진짜로?
“누구세요?”
“나다. 포룬탁 선생. -_-”
“아는데.”
“....젠장. 토요일에 시간 되냐?”
“토요일? 음~ 토요일은 안 되는데~. 친구 생일 있어서~ 일요일은 되는데...”
“근데 일요일은 내가 일이 있음. -_- 다른 애들 시간까지 조율해야 하니까...시간 맞춰지면 연락하마.”
이러고 끊었습니다.
....목소리가 신났더군요.
아주 제가 밥 사준다니까 좋은가 봅니다. -_- 젠장.
처음에 전화 걸 때는 두 번이나 씹더니 이번에는 바로 받는데다가 전화 받을 때부터 목소리가 들떠 있었음... 썩을 녀석...
아무튼 이번은 이걸로 끝!
뭐, ‘선생님 좋아해요~ 가지 마세요~’ 댓글 썼던 분들 다 버로우하세요.
저 좋아하는 애가 제 전화 씹고 그러겠습니까?
다음 주에는 제가 운전면허 학원 때문에 통째로 못 만나니까, 다다음 주나 기다리세요!
이번에는 이걸로 끝이에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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