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이 된다면 운영자분께서 삭제해주시길 바랍니다. 저 지금 시험기간이라 일일이 대응할 자신이 없습니다. 또한 본인은 토론장 한번도 들어가지 않았기에 이에 말할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장르시장에 대해 고민한 바가 있기에 문피아의 현위치에 대해 본인이 생각하는 바를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에 말했다시피 시험기간인지라 핵심만 말씀드리죠.
먼저 문피아의 기본이념을 봅시다. 외부에서 보는 문피아는 대여점 시스템에 맞춰서 최소한의 기준에 맞춘 최대량의 작품을 다작하는 것에 그 목적과 의의를 둡니다. 자본의 유입이 주로 영화나 그 외 영상산업으로 이뤄지다보니 소설과 같이 개인작업의 창작물은 아무래도 시장이 넓어지기 힘들죠. 그 해결책으로 금강님은 일단 작품의 저변을 넓히는 것을 첫번째 조건으로 꼽으셨습니다. 이건 이미 논단에서 수차례 언급된 말씀이니 모두들 수긍할 것입니다.
문제는 다작과 표절의 미묘한 상관관계에 있습니다. 창작이란 결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소재로 작품을 만드는 작업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소재는 현실에 있는 새로운 문화나 기술의 발전을 창작물에 투영했을 때 비로소 나타납니다. 창작과 현실의 기술발전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판타지나 SF는 성립될 수 없으니까요. 다만 문화나 기술을 보면서 나타난 생각이 창작물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죠. 즉 사회가 새로운 발전을 하지 않는다면 창작물 역시 새로운 발전을 이루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발전이 이뤄지기까지 나오는 모든 작품들은 결국 고만고만한 소재와 생각으로 이뤄진 작품이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대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입니다. 평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잘나봤자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표현을 못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특수한 경우도 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천재나 그에 준하는 시대를 이끄는 자들은 어느 분야에나 있습니다. 그런 천재들은 그냥 나오지 않습니다. 분야의 개척기에는 순전히 노력과 직감만으로 기존에 없던 개념들을 쌓고, 그 분야의 전성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쌓아온 성과를 이성과 감각으로 받아들여 평범한 것처럼 시작하지만 절대 남들은 흉내내지 못하는 창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균과 천재. 그러나 이 경우에도 전제조건은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미 그것을 시도했고, 그 시도가 다른 이에게 계속 전해지고 있다.
이 명제를 문피아의 입장에 대입하면 제법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판타지는 그렇다쳐도 무협만큼 오랜 시간동안 특색있는 클리셰를 쌓아온 장르도 없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많은 작품이 나오다보면 중요한 것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클리셰를 쓰고 있고, 이것을 왜 하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묻겠지만 솔직히 이중에서 가장 초창기의 무협을 읽어보신 분이 몇분이나 되십니까. 부끄럽지만 저는 남들이 그렇게 극찬을 하는 영웅문조차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언제고 읽어야지 하지만 마치 소설 토지를 읽는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져서 뒤로 미루게 되더군요. 이것이 꼭 저만의 문제는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불과 5년 차이로도 장르시장에서는 그 세대차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클리셰의 유형은 혹 이어질지 몰라도 그것의 참 의미까지는 전달이 안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왜 참신했는지에 대한 자각없이 작품을 짓기 위해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결국 똑같은 느낌의 작품을 양산하는데에 일조하게 되는 겁니다.
가장 두려운 문제는 문피아가 노리는 시장층입니다. 문피아는 언제나 10대를 노립니다. 10대는 모든 문화의 뿌리를 담당하기 때문에 저 역시 찬성합니다. 하지만 10대가 성장하면서 무협을 버린다면 그리고 문피아는 끊임없이 새로 유입되는 10대를 노린다면 이 싸움은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입니다. 당장 통계청에 나오는 자료만 봐도 10대의 수가 얼마나 줄어드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당장 새로 유입되는 10대에 맞추지 못해 도태되는 기존작가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이영도 작가가 왜 그렇게 이름 이는 작가가 됐다고 고민해 보셨습니까? 전 그 사람이 개척자의 위치에서 점차 독자와 함께 발전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소설적인 주제는 데뷔작인 드래곤라자에서 크게 못 나아갔다고 쳐도, 그 사람이 보여주는 소설적인 형식과 스펙트럼의 요소는 오히려 더 나아지는게 눈에 보입니다. 저는 드래곤라자의 1인칭 장광설보다 피를 마시는 새에 나오는 문장이 더 좋습니다. 훨씬 절제되고 세련됐으면서 느끼는게 더 많거든요.
다른 사이트에서 문피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압니까? 똑같은 요소를 계속 끊임없이 복사하는 주제에 저작권을 따지는건 뭐냐, 이중적이지 않느냐.
제가 이 문제에 대해 판결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전 토론의 바깥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고 고민한 끝에 이 글을 쓰는 거니까요. 다만 이런 것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애초에 우리나라 - 좁게 보면 무협시장에는 팬픽이라든지 기타의 2차 창작물에 대한 개념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점차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후반 일본 애니메이션의 유입에 따라 캐릭터의 상품화도 같이 따라왔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클리셰의 반복에 따라 오마쥬와 표절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는 문피아의 경우, 2차 창작을 받아들일 풍토가 많이 희박하다고 여겨집니다. 정확히는 여유가 없다고 보는 게 맞겠죠. 그 작품에 문제의 소지가 있더라도 이렇게까지 심하게 터질리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 나라에는 2차 창작에 대한 이해와 개념이 확연하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대상에 무협이 빠져있습니다. 사실, 기존에 애니화가 된 장르가 아니라면 2차 창작이 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수요가 없고, 그 전에 노하우도 없거든요.
저는 여기에서 굳이 이 글을 관통하는 결론을 제시하지 않겠습니다. 무리하게 내린 결론은 언제나 피를 부르거든요. 그러나 마지막에 제기한 문제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제가 장르시장에 대해 평소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을 정리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글을 읽고 무언가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ps: 일이 이렇게 터지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문피아에 있는 작가와 독자의 감응이 부족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독자는 이미 수 년 동안 읽은 작품이 수십에서 수백편을 넘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몇 년을 써야 작품 하나를 완결 짓는 경우도 있습니다. 단순히 분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량만큼의 질을 따지면서 참을성 없는 독자는 작가를 매도하고, 작가는 그 비난을 못 이겨 절필하고...... 누군가는 그 돌고도는 관계를 끊어야겠는데 자율적으로는 안되니까 결국 문피아내 규정으로 비판을 억제하고, 그러면 독자는 꾸욱 참다가 기어이 폭발하고...... 그런 억제된 분노가 이번 토론에 불을 붙인 건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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