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만족이란 ‘내가 아닌 타인의 행위를 접하면서 마치 내가 행한 일 인양 뿌듯해 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결’에서 스타들이 가상의 결혼 생활을 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나, 각종 몰래카메라에서 대상자를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것 역시 일종의 대리만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대리만족은 문학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쳐서 매우 깊은 관련을 가집니다.
그런데 요즘 장르소설에 대해 논하시는 분들 중에서는 대리만족을 그저 ‘주인공이 별다른 어려움 없이 고난을 극복하고 갑질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는 것 같습니다. 이건 대리만족을 너무 협소한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 아닐까요?
솔직히 전 대리만족이란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자기는 다이어트하지만 먹방하는 BJ를 보면서 대리만족, 육아는 싫지만 육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대리만족, 내 인생은 평범하지만 스타들의 삶을 엿보면서 좋아하는 대리만족.
제가 게임을 좋아하고 프로리그 경기를 시청하는 것도 좋아하긴 하지만, 경기 시청도 대리만족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전 특별히 응원하는 팀 없이 그저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재미있는 경기를 바랄 뿐이거든요. 스포츠 경기를 좋아하는 분들 중에서는 한 팀의 팬이 되어서 응원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같이 그냥 재밌는 경기를 바라고 엎치락뒤치락하는 그것 자체가 재밌어서 보는 분들도 계시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저는 장르소설을 볼 때도 그냥 성공하는 주인공은 그다지 끌리지 않습니다. 광기, 갈등, 예상치 못한 순간에 튀어나오는 유머 등을 좋아하는 엄청 마이너한 취향이죠.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보는 경우도 있지만 작가의 참신한 소재, 스토리 진행, 복선과 반전 등등을 더 즐깁니다. 굳이 따지자면 주인공이 아니라 작가에 대리만족한다고 해야할까요.
전생, 회귀, 미래시 등을 가지고 승승장구하며 갑질하는 소설이 인기가 많은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대리만족이라고, 현실이 팍팍하니 그냥 시원하게 주인공이 다 해먹는 소설이 장르소설의 본질이라고 못박아버리면 좀 곤란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따지면 드래곤 라자, 세월의 돌,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 룬의 아이들은 대리만족이 너무나도 부족한 소설이 되어버립니다.
그냥 단순히 주인공이 성공해서 갑질하는 소설이 아니라, 작가의 참신하고 기발한 상상력, 스토리를 기대하는 독자들도 많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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