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럭~`
명보형님을 잘 모른다고 하시기에 대략적으로 알아왔습니다.~~~
우선...
세계의 해설자들은
그에게 이런말을 남겼다.
"홍명보선수는 한국의 기형적인 축구시스템이 낳은 기형아이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저런 선수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94년 월드컵 이탈리아의 해설자
“홍명보가 만일 지금 다시 축구를 시작한다면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유럽에서 백만장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 인터내셔널해럴드트리뷴(IHT)의 칼럼니스트 랍 휴스
"마치 두명의 말디니가 서있는 것 같군요."
-세계 올스타 경기에서 말디니와 함께 수비를 조율하는 홍명보를 보고 이탈리아 해설자
"나폴리를 떠나 유벤투스로 가게된 치로 페라라의 자리를 홍명보선수로 메우고 싶었는데 안타깝다."
-94년 홍명보 선수 영입에 실패한 나폴리 구단주
"J 리그에서 어떻게 해서든 결과를 남기겠다."
-홍명보 선수가 처음 J 리그 가서...일본 취재진의 최고 연봉을 받은 것을 알고 있냐는 질문에
(결과:가시와 레이솔 나비스코컵 우승및 종합3위. 그 다음해 종합 2위.
한국인최초로 J-LEAGUE에서 주장. 이 때 일본에서는 유럽선수도 아니고 한국선수를
그렇게 비싸게 데리고 오는 것에 대해 반감이 컸다는군요. 이것도 조금 빈정거리는 투로 질문했답니다.)
"홍명보선수를 귀화시키자.
나카다와 홍명보를 주축으로 팀을 운영하면 월드컵에서 4강이상 이룰수 있다."
-일본의 축구해설자 (처음 J-리그 갔을 때 나카타와 같은 팀에 있었다죠..)
-장래 J리그의 감독이 될 생각은?
"일본의 팀은 인솔하고 싶지 않다. 나의 영혼은 항상 한국에 있다."
(제가 개인적으로 제일 감동한 멘트입니다.
일본에서 주장으로 뛰면서 하위권 팀을 우승까지 이끌자 일본 신문에서는
그런 가능성까지 점치고 그랬나봐요. 근데 이 대답때문에 엄청 배신감 느꼈다네요...
그당시 이 기사때문에 일본인들한테 한국으로 가라고 욕두 많이 먹었데요.)
나카타가 본 홍명보
"그는 세계최고 레벨의 선수다. 아시아에서는 비슷한 선수조차 찾을 수가 없다.
(벨마래 시절) 나조차도 그의 말을 따르며 볼을 찼다. (그가 아시아를 벗어난선수
인것이 분명하기에) 아쉽다. 더 큰 무대로 갈수 있었다"
- 월드컵 직전의 인터뷰 중에서
"이번에도 일본에게 지면 차라리 축구화를 벗겠다."
-일본과 평가전을 위해 소속팀(가시와)에서 국대로 떠나는 홍명보에게
경기 결과가 어떻게 될거 같냐는 질문을 한 일본 취재진에게
(이 대답에 일본 취재진들이 다들 놀랐다는군요...역쉬 멋집니다.
이때가 일본에게 연패를 당하고 처음으로 가지는 평가전이었죠...결국 이겼습니다.
93년 일본에게 진후에도 "다시 일본에게 진다면 축구화를 벗겠다"는 말을 했던 적이 있어요.
그후 홍명보가 있었을때는 한번도 진적이 없었지요.)
"골대를 지키고 있다 보면 앞에 선 등번호 20이 얼마나 크게 보이는지 모른다."
-가시와의 골키퍼 미나미...홍명보 선수가 오면서 수비가 비약적으로 안정되었다면서..
(98년 가시와레이솔 => 경기당 실점율 1.7점 그런 하위권팀
99년 가시와레이솔 => 경기당 실점률 0.8점(홍명보입단후) 수치만 봐도 그의 효과는 명명백백)
"오늘 홍명보 선수 완전히 부심이네요."
-2001년 수원에서 열린 대륙간컵(호주와의 경기)을 중계하던 해설자
경기장 분위기에 얼어서 스크린쪽 부심은 반칙도 가려내지 못하고
상대방이 거칠게 나오자 우리 선수들을 자제시키면서 반칙이 나올때마다
주심에게 일일이 찾아가 반칙내용을 지적하고.. 퇴장까지 얻어내는 홍명보를 보며....
(이 경기 다들 아시죠?? 우리나라 유럽에 줄줄이 5:0으로 패하고
사진 게시판에서는 멱살잡힌 홍명보 사진으로 유명했던 그 시절이랍니다.)
"4강 진출가능성은 적지만...불가능하진않다...프랑스가 우리를 5:0으로 이겼듯이
우리도 호주를 5:0으로 이길수 있다..그것이 축구다..
우리는 종료휘슬이 울리는 마지막순간까지 최선을 다할것이다."
-다시 5:0으로 지고 가진 인터뷰에서...선수와 감독을 비난하는 듯한 질문을 하는 취재진에게
( 이 멘트로 우리나라에는 비난이 줄고 모두들 희망을 품었지만..
지금은 월드컵 4강으로 다 보상 받았지만..)
이정도로 정말 잘하셨습니다... <-- 요거는 네이버에서
국내리그
1997년 아시아클럽선수권 우승,
1996년 K리그 인기상,
1996년 K리그 베스트 11 미드필더 부분 선정,
1995년 K리그 베스트 11 수비수 부분 선정,
1994년 아시아 최고 수비수 선정,
1994년 AFC 베스트 DF,
1994년 K리그 베스트 11 수비수 부분 선정,
1992,94,95,96 K리그 베스트 11,
1992년 K리그 MVP ,
1992년 K리그 베스트 11 수비수 부분 선정
96년 8월 25일 전북 : 포항(전주) 해트트릭 기록
후반 9분, 라데 페널티 지역 왼쪽에서 땅볼 패스, 홍명보 아크서클 정면에서 오른발 슈팅
9골(득점 홍명보, 도움 라데) :
후반 18분, 황선홍 아크서클 왼쪽에서 땅볼 패스, 홍명보 아크서클 정면에서 오른발 슈팅
골(득점 홍명보, 도움 황선홍) : 후반 23분 페널티킥, 오른발 슈팅 골
J리그
1997년~1998년 벨마레 히라쓰카
1999년~2001년 가시와레이솔
★2000년~2001년 가시와레이솔 주장☆
☞ J리그 최초로 외국인이 주장을 맡음.
J리그 올스타전 총 2회
1999년7월31일(백넘버 5번, MF, 90분 풀출장)
2001년8월4일(백넘버 14번, DF, 오른쪽정강이 피로골절로 출전불가)
※2000년에도 선발자 명단에 올랐으나 시드니올림픽출전으로 포기함
J리그 드림매치(일본VS용병 올스타전)총 2회
1998년10월10일(백넘버 2번, MF, 전반45분 교체투입됨)
1999년10월11일(백넘버 7번, MF, 전반 45분 선발출장함)
국가 대표경력 - 총 135회 출장, 9골, 60승-44무-31패
2002년 한일월드컵 국가대표,
2001년 J리그 올스타전 출전(감독추천),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국가대표,
1994년 미국 월드컵 국가대표,
세계 올스타전 출전 4회 (94,95,97,98)
▲`크리스마스 세계올스타전'(94년)
▲`일본 고베대지진 자선올스타전'(95년)
▲`프랑스월드컵 본선조추첨 올스타전'(97년)
▲`터키축구협회 창립 75주년기념 세계올스타전'(98년)
국가대표 데뷔 - 1990년 3월(고려대 재학중),
청소년 대표팀(16세 이하),
2002년 7월 2일 체육훈장 맹호장,
2002년 7월 1일 로이터통신 선정 월드컵 베스트 11 선정,
2002년 한일월드컵 브론즈볼 수상(아시아 선수로는 최초 수상),
2002년 6월 28일 한일월드컵 FIFA선정 월드컵 올스타,
A매치 출장 133회 한국기록 수립(2002년 6월),
2002년 FIFA 선수분과위원회 위원
- 국내 최초의 드래프트 거부(with 황선홍)
- 프로축구 최초로 연봉 1억 돌파(이후 프로축구 선수들의 1억 연봉 시대 도래)
- 월드컵 4회 연속 출전 및 출장한 최초의 한국선수
참고로 국내에 명보형님만한 수비수 하나만 더 있었어도
월드컵에서 우승까지 바라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
명보 형님 은퇴로 빈 자리가 너무 커보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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