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國主義 중국이 다가온다 (1)◆
덩샤오핑은 25년 전 중국을 국제무대로 끌어내면서 '도광양회(韜光養晦)'라는 세계전략의 대원칙을 내걸었다.
실력을 기를 때까지 재능을 감춘다는 뜻.
그러나 이런 중국의 전략은 후진타오 주석이 들어서면서 '화평굴기(和平堀起)' 로 대체됐다.
'평화적으로 우뚝 일어선다'는 이 슬로건에는 중국의 자심감이 꽉 차 있다. 25 년 간 연평균 9% 이상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국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
이런 중국의 힘이 알게 모르게 한국을 짓누르고 있는 게 요즘의 한ㆍ중 관계 현주소다. 평등은 외교문서에나 나오는 말이고 실제 현실은 고압적 태도로 번 번히 한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들이 한숨이 나올 정도로 중국에 당하는(?) 사례는 부지기수로 찾아볼 수 있다.
최근 발생한 탈북자 북송도 그 중 하나. 지난 2월 베트남을 통해 한국행을 원 했던 탈북자 7명은 중국 남부 국경을 넘으려다가 중국 공안에 의해 붙잡혀 3월 초 지린성 투먼수용소로 이송됐다.
이들은 북한으로 송환돼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거나 공개처형되느니 굶어죽겠 다며 20일 동안 단식농성을 벌였다. 그러나 중국은 이들을 지난 5월 북한으로 강제 송환했다. 송환의 매몰참도 그렇지만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에 대해 이 사실을 한 달이나 늦게 알려줬다는 것.
물론 중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 내면에는 탈북자 문제를 국제문제화하는 탈북자지원 비정부기구(NGO)에 대해 본때를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다는 관측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지난 2001년 마약범죄를 저지른 한국인에 대한 사형집행. 이 역시 우리 정부에 사전통보 없이 이뤄졌다. 비록 사형수의 범죄행위가 형사 공조 대상이 아니라 할지라도 범죄인의 생명을 빼앗는 극형을 집행할 경우 범 죄인의 소속국에 먼저 통보하는 것이 국제적 관례라는 점에서 문제를 삼으려면 얼마든지 삼을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의 '깔보기' 외교 행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주한 중국대사관은 지난달 20일 열린 대만 천수이볜 총통 취임식에 참석하려던 여야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직설적 표현을 거침없이 사용하면서 불참을 요구 했다.
게다가 여야 지도부에 공문을 보내 이들의 취임식 참석을 취소하도록 압박했다 .
중국대사관의 한 인사는 "당장 (대만에 간) 의원들에게 조치를 취하지는 않지 만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한국은 얼마든지 윽박지를 수 있는 상대로 보고 있는 게 아니라면 그런 고압적 태도를 취할 수 없을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부 한 관계자는 "외교 관례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무 례를 넘어서 '내정간섭'의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지난 2002년부터 범정부적 차원에서 5년 간 3조원의 예산을 들여 고구 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시키려 하는 '동북공정(東北工程)' 프로젝트를 출 범시켰다.
한국이 이에 자극받을 것이란 점은 뻔히 예상되는 일이었다. 한국의 반발은 당 연했다.
그러나 중국에서 돌아온 대답은 "민간차원의 일"이라는 낯 두꺼운 반응이었다.
순수한 종교적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달라이 라마의 한국 방문이 성사되지 않은 것 역시 중국의 반대 때문.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는 중국으로서 대만과 티베트 문제에 민감하게 반 응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것이 '예의를 갖추지 않은' 외교적 압력으로 발 전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깔보기'식 외교도 문제지만 부당한 행위에 대해 철판을 깔고 당당하게 대하는 데도 한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는 게 외교가의 한결 같은 우려이다.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되면 가차없이 칼을 빼드는 것이 '중국 외교'의 실상임은 이미 마늘파동에서 경험했다.
당시 한국 외교부는 좀더 시간을 끌고 버텨보려고 했지만 불과 2주 만에 두 손 을 번쩍 드는 굴욕적 행태를 보였다.
그러다 보니 중국산 수입 꽃게에서 납이 나오고, 냉동 참조기에서 볼트조각이 나와도 중국 정부는 위풍당당이다.
주한 중국대사의 격도 한국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부분이다.
주한 중국대사는 중국 외교부의 국장급이다. 우리가 중진 정치인 출신이나 장 관급 외교관을 보내는 것이 대부분인 주중 한국대사와 격이 맞지 않다.
한국이 이렇게 중국에 질질 끌려다니는 데는 나름대로 속사정이 있기는 하다
한국은 중국과의 외교 마찰을 우려해 언제나 '조용한 외교'를 고집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탈북자 문제에 대해 '소리 없이, 실제적으로 탈북자들의 한국행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게 정부의 기본 방침이라고 설명한다.
탈북자들은 대한민국 헌법으로는 엄연히 남쪽 국민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중국과 혈맹 관계에 있는 북한의 주민이라는 모순된 지위에 있기 때문에 정부의 항변 도 이유가 있다.
하지만 탈북자들의 북송이 실행되고 중국이 우리 당국에 공식 통보할 때까지 정부는 아무런 실제적인 조치도 취하지 못할 만큼 대중국 외교력의 빈곤을 드 러냈다.
그 동안 베이징 한국 영사관에 대한 중국 공안의 진입과 외교관 폭행 사건 등 이 발생했을 때 중국측의 비외교적 '고압적' 태도와 우리측의 조심스러운 자세 가 대비됐다.
대만 총통 취임식 참석과 관련해 중국의 외교적 결례가 극에 달했지만 정부는 물론 정치권도 제대로 항의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
그 흔한 성명이나 유감 표명도 없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미국과 외교 현 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는 달리 중국에 대해선 위축돼 있다.
이것이 집권당 의원 63%가 가장 중점둬야 할 외교통상 대상국으로 꼽은 중국과 의 외교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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