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밑에 맹상군 이야기도 나와서 신릉군 이야기를 올리려고.-_-v
위나라 공자 무기(신릉군)는 위나라 소왕의 막내아들로 위나라 안희왕의 배다른 동생입니다. 사실, 세간에 널리 알려진 인물은 맹상군이지만, 정작 사공자 중 가장 어진 사람을 꼽으라면 사람들은 신릉군을 꼽습니다. 에 저도 일화를 하나~
이 당시 진나라의 국력이 강성해, 삼진과 연 등 중간에 낀 나라를 압박하고 있었습니다. 진이 조나라 쳐들어 가자, 위의 안희왕이 조나라를 도우려고 명장 진비와 십만여 군사를 파병하였습니다. 이때, 진의 왕이 위왕에게 사자를 보내
"나는 곧 조를 멸망시킬 것이다. 만일 조나라를 도운다면, 그 나라를 멸망시켜버릴 것이다."
라고 전했죠. 위왕은 겁을 먹어, 진비에게 진격을 멈추게 하고 업에 성을 쌓도록 하였습니다. 조나라를 돕는 척 하면서, 대세를 관망한 다는 의도였죠. 이에 조나라 평원군이, 신릉군에게, 위의 태도를 꾸짖었습니다. 신릉군도 평원군에게 시집간 누이가 걱정이 되어 위왕에게 청하였으나, 위왕은 묵묵답답이었죠.
결국, 신릉군은 어진 선비 후영이 권한 대로, 과거 신릉군에게 목숨을 빚진 왕의 애첩 여희에게 부탁하여, 병부를 빼돌렸습니다. 그리고, 후영이 추천을 한 백정 주해와 함께 진비가 머물고 있는 업으로 갔습니다.
이 때 후영은,
"공자가 진비의 군대에 이르는 날, 북쪽을 바라보며 죽겠습니다." 라고 하였고, 실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결국 병부를 들고 진비의 군대에 도착한 신릉군은 진비에게 조나라를 구원하러 가자고 하였으나 진비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주해가 소매속에서 40근 철퇴를 꺼내 진비를 쳐죽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군대에 같이 있따면 아버지를 돌아가게 하였고, 형과 동생이 같이 있으면 형을 돌려보냈고, 외아들 또한 돌려보냈습니다. 이렇게 하자 병력은 8만이 남았죠. 이 8만으로 진의 병력을 한단-조의 수도-에서 몰아냈습니다. 조왕은 신릉군에게 최고의 예를 갖추어 대접하였습니다.
그리고, 신릉군이 병부를 훔쳐 진비를 속이고 죽인 것에 대해 고맙게 여기며, 신릉군에게 성 다섯개를 봉읍으로 주려고 했습니다. 신릉군이 이 말을 듣고 교만해지는 듯한 기색이 보이자 빈객 중 한명이 신릉군에게 말했습니다.
"세상 일에는 잊어서는 안될 일도 있지만, 잊지 않으면 안 되는 일도 있습니다. 그중에서 남이 공자께 베푼 은덕은 잊어서는 안되지만, 공자가 남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위왕을 속여 진비를 죽이고 군사를 빼앗아 조나라를 도운 것은 조나라에게는 큰 공이지만, 위나라의 충신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공자께서 교만해져, 공자의 공로가 크다고 하시니, 이는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이 말을 듣고 공자는 몹시 부끄러워 하였습니다. 조나라 왕이 몸소 길을 청소하고 직접 나와 공자를 맞이하여 주인의 예로써 서쪽 층계로 공자가 오를 수 있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공자는 가로 비켜서 걸으며 사양하고, 동쪽 층게로 올라, 위나라를 저버리고 조나라에 공을 세우지 못하고 죄를 지었다고 하였습니다. 조나라 왕은 공자와 함께 술을 마셨지만, 다섯개의 성을 바치겠다는 말을 꺼내지도 못하였습니다. 공자가 너무나도 겸손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서양에 이런 격언이 있습니다. '자신이 남에게 베푼 은혜는 모래에 새기고, 남이 자신에게 베푼 은혜는 대리석에 새겨라.' 이 위에서도, 남의 은혜는 잊으면 안되나, 자신이 남에게 베푼 은혜는 잊으라고 하였습니다. 에, 우리 모두 자신이 남을 도운 일로 교만하지 말고, 남이 자신을 도운 일에 감사를 한다면, 훨씬 살기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출처:Go!武林 落華流
직접 썼다우~-_-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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