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항상 지하철을 타고 출, 퇴근을 합니다.
그런데 이 지하철이라는 것이 참 오묘하더군요.
아무 일 없는 듯 평온하게 지나가는 듯 하는 날이 있는가 하면 생각하지도 못했던 사건이 난무하는 날도 있습니다.
정말 우리의 일상과 맥을 같이 하는군요.
그날도 저는 무사태평한 하루를 보낼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지하철의 변덕스러움은 저의 그 바람을 처참하게 뭉게더군요.
첫번 째로 한 커플이 있었습니다.
서로 껴안고 있는 것으로 봐서 상당히 친밀해 보이더군요.
"자기야~(이름을 불렀는데 기억나지 않는 관계로 차용합니다)"
여성은 남성의 볼을 이러저리 잡아당기며 희희낙낙해 있었습니다.
보기 민망하더군요.
여성의 행동은 점점 접입가경이라 볼에 있던 손이 코로 옮겨가 남성의 얼굴은 완벽하게 유린당하게 되었지요.
->콧구멍 속에도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니까요.
보기 딱했습니다.
남성의 얼굴은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무언가 먼 곳을 응시하는 듯 하네요.
그런데 급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지하철이 갑자기 급정지를 한 것 입니다.
그와 동시에 아주 묘한 타이밍으로 여성의 팔꿈치가 남성의 안면을 가격했습니다.
마치 짜여진 각본처럼요.
찢어지는 비명...(실제로 매우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그 순간 착각했던 것 일까요?
저는 그 비명이 상처입은 야수의 포효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반전이 일어났지요.
갑자기 남성이 여성을 밀치고 주먹으로 그녀를 가격하기 시작한 것 입니다.
주먹과 발은 마치 영화에서 나오는 동장과 같이 예술적으로 그녀를 가격했습니다.
가격당하는 여성 역시 영화속의 여 주인공 같이 우아하게 맞으며 신음 하나 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상황은 종료.
여성은 그로기 상태(?)가 되었고 남성은 폭력을 멈췄습니다.
여성은 울고 있었지요.
남성은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쯤이면 지하철 쪽이나 사람들이 말릴 줄 알았는데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그들을 말리지 않더군요.
"흑흑흑. 미안해..."
여성은 정말 서럽게 울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남성은 고통스럽게 응시하고 있었지요.
그리고 쥐어지는 주먹. 약간 모자란 듯 쥐어질 듯 말듯 풀어진 주먹의 흐트러진 모습은 마치 슬램덩크의 '왼손은 거들 뿐'과 같이 묘한 여운과 감각적인 영상미를 자랑하는 듯 했습니다.
저는 이 순간 그가 여성을 향해 최후의 일격을 날릴 것 같다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것은 묘한 기대감과 함께 야릇한 쾌감의 느낌이었지요.
하지만 상황은 제 예상대로 전개되지 않았습니다.
"나도 미안하다!"
그것은 진정 한 편의 드라마였습니다.
사소한(?) 다툼 후 이루어지는 화해(?).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애정의 대서사시였지요.
그리고 그들은 다음 역에서 바람과 같이 사라졌습니다.
마치 여백의 미를 더하듯 2% 부족한 그 상황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군요.
그렇습니다,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입니다.
*추신*
약간의 과장이 섞여 있습니다.
실제 상황을 요약해 보자면...
조용히 잘 있던 연인->지하철 급반동 때 남성, 여성을 구타(위와 같이 야만적으로 구타하지는 않았습니다)->여성, 울면서 남성에게 사과->남성, 그 모습에 죄책감을 느끼고 사과->관계 복귀->다음 역에서 바람과 같이 사라짐.
이렇게 됩니다. 시간은 약 2분에서 3분 사이 정도고 아차! 하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사람들도 나설 타이밍을 잃었던 것 같군요. 정말 이렇게 싸우고 다시 화해할 수 있는 그들의 정신력에 존경의 말을 보내며 글을 마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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