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에 처음 글써보네요.
방금 일어난 일을 어디다 말하고 싶은데 아는 사람에겐 말 못하겠고
여기가 제일 덜 비웃을 것 같네요...
하도 어이없는 일 적느라 좀 길어요..
10시쯤 탄산음료가 먹고 싶어 밖으로 나왔습니다.
근데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자마자 깨달았어요.
열쇠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사실 처음에는 절망감보다는
우리 집 담장에 가시 철창만 있고 조금 높을 뿐이지 쉽게 넘을 수 있을거야.
이런 생각에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우선은 음료수를 사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다시 와보니 담장이 너무 높았어요..
핸드폰도 없고, 저 혼자 다시 집에 돌아왔고
그나마 계단이 이어졌던 윗집마저 불이 꺼져 있었어요.
그래도 혹시나 싶어 미친듯이 두드렸지만 아무 대답이 없더군요.
사자성어로 쓰면 완전 사면초가
원래 혼잣말을 별로 쓰지 않는데 자연스럽게 ㅅㅂ ㅈㄴ ㅁㅎㄷ 이 말이 나오더군요.
처음에는 화분을 옮겨서 그걸로 발판을 삼아 올라가보려 했어요.
그럼 그렇지..
발바닥 두개 고작 들어가는 화분이 중심을 못잡고 뒤뚱거려서 실패
결국에는 주위의 사물을 이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싶어
길거리를 미친 승냥이만치로 배회했습니다..
쓸만한 받침거리를 찾기 위해..
결국 찾은 건 주차장 앞에 버려져있던 폐타이어,
인력대기소 앞에 쓰려고 놔둔 김장할때 쓰는 통,
중고 가전제품 매장에서 비닐 덮는 데 쓰는 의자 밑판 5개..
그거 하나하나씩 낑낑대면서 들고 오는데
절로 욕이 나오면서
와.. 이래서 무협, 판타지 읽나보다 이생각이 들더군요.
무협에서는 이따위 훅 날라다니면 그만인데...
판타지에서는 비행 마법 쓰면 그만인데...
그 짧은 시간에도 현실과 이상간의 괴리가 어찌나 원망스럽던지.
그런 생각이 드니 더 집중도가 떨어지고 한탄만 더...
어찌저찌 모으니 담장에 발 걸칠만한 높이로 아슬아슬하게 물건들을 올리기는 했는데
한 발을 올릴정도만 되고 나머지 발을 같이 올리기에는 높이가 또 미달, 부적절, 망함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시 중고 전자제품 가게에 가서 마지막 남은 의자 밑판을 올린 후에야 담장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산 넘어 산이라고 막상 담장만 넘으면 만사 형통일줄 알았는데 담장 높이가 그대로 착지하면 발이 정말 분지러지겠다는 직감이 딱 오더군요.
그래서 고양이가 담장에서 모로 걷는 것처럼 부들부들 일어나서 이층으로 점프하려는 시도를 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뒷집 문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더군요..
그 집이 큰집이었나봅니다...
처음 나오던 3명은 절 눈치 못챘지만 후발 주자 한 분이 너절하게 쌓여있는 물건들과 담장에 서있는 저를 봤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가타부타 아무말도 안하시고.... 뒤에서 눈빛만 느껴지는...
차라리 소리라도 지르고 성질이나 내면서 왜 거기 있느냐고 물어보면
열쇠가 없어서 그런다고 저 원래 여기 집에 사는 사람이라고 변명이라도 하는데..
빤히 쳐다보고만 있으니 또 시간은 한없이 지체...
하긴... 무슨 도둑이 형광 핑크색 수면바지 입고 담장 위에 서 있겠어요.....
그냥 그 분 시선 신경 안쓰고 2층으로 점프해서 결국 다시 집에 돌아왔습니다....
초성체로 ㅋㅋㅋㅋㅋ를 마구 날리고 싶은데 여기선 안되는 것 같아 쓰지 못합니다...
사실 담장을 넘어 그동안 쌓아놓은 너저분한 쓰레기들을 처지하고 들어가던 중
일련의 일들이 너무 일상에 활력을 줬는지 문고리도 부러뜨렸네요.
내일 부모님 오시면 그냥 문열다 부러졌다고 슬슬 넘기렵니다..
아무튼 이 일로 저는 장르 소설을 더 이입하며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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