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쥬논
작품명 : 흡혈왕 바하문트
출판사 : 드림북스
앙신의 강림, 천마선, 규토대제로 이어지는 삼부작으로 커다란 인기를 모은 쥬논님의 네번째 출판작, 흡혈왕 바하문트를 읽었다. 이것을 선점하기 위해 대여점에 전화를 걸고, 이른 시기에 들러서 보채고 별 짓을 다했다. 결국 그 정성이 빛을 발해서 나오자마자 첫번째로 집어들 수 있었다.
◇ 그의 향기 ◇
흡혈왕을 읽은 첫인상은 쥬논님 답다는 것이었다. 저자명을 모르고 읽더라도 이건 쥬논님의 글이구나 하고 알 수 있는 강렬한 분위기, 그것이 흡혈왕에도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었다. 독하고, 교활하고, 강인하며, 흉폭하지만 절제를 아는 바하문트는 이전 작품의 주인공들이 갖고 있던 특성을 상당부분 계승하고 있다. 전체적인 글의 분위기는 음습하며 피비린내가 나지만, 그것이 기분나쁘다는 느낌이 아닌 남성적이고 야성적인 강렬함으로 다가온다는 것도 그러하다.
◇ 이야기의 시작 ◇
흡혈왕은 이미 결말을 다 알려주고 시작한다. 프롤로그에서 바하문트는 대륙의 지배자나 다름없는 위치이며, 상당부분 그 과정까지도 알려준다. 그리고 24년 전으로 돌아가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예지적 서술'은 독자의 흥미를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과정이 중요해도 결과를 다 알고 시작하면 김샌다는 이들 많지 않은가.
그러나 흡혈왕은 예외가 아닐까 싶다. 이 글은 쥬논님의 작품인 것이다. 애초에 규토대제 역시 전작인 천마선에서 대략적인 행보는 누설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쥬논님은 규토대제를 훌륭히 써냈고, 이는 쥬논님의 필력과 독자들의 충성심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난 프롤로그를 자신감의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다 알고 봐도 재밌을 거라 선언하는.
물론 프롤로그 자체의 완성도도 훌륭하다. 미래의 행보로 독자의 시선을 확 끌어들이면서, 몇가지 떡밥을 던져서 그 눈길을 그대로 묶어둔다. 일례로, 프롤로그 마지막 부분에 네스토라는 인물의 이야기가 슬쩍 나온다. 그리고 작품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그 이름이 또다시 언급된다. 자연스레 그에게 관심이 간다. 궁금해진다. 계속 읽는다. 쭈~~~욱 읽는다. 이쯤 되면 책을 내려놓을 수 없다.
◇ 기이한 능력, 신선한 묘사 ◇
쥬논님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남들과 다른 소재를 발굴해내는 기발함, 그것을 맛깔나게 꾸미는 묘사력, 이 두가지가 아닐까.(개인적인 의견이다) 각종 특이한 능력을 지닌 존재들이 저마다 자신의 기량을 뽐내고, 그 하나하나가 흥미롭기 이를 데 없다. 식심차력, 규토의 주술, 네크로맨시와 독술, 검강, 음양합벽, 각종 신비로운 기물들, 열거하려면 한도끝도 없다. 규토대제에서는 주인공이 사용하는 무기조차 그 흔한 검이나 창이 아니라 무려 '사슬달린 곡괭이'였으니, 쥬논님의 기발함에 대해서는 더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물론 반짝 아이디어만으로는 부족하다. 기발한 발상을 재밌게, 흥미롭게 꾸며서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나야만 한다. 그리고 그러한 분야에 있어서 쥬논님의 솜씨는 이미 경지에 올랐다. 예전부터 그렇게 생각해왔던 거지만, 나는 쥬논님께서 '능력자 배틀물'로 라이트노벨을 써도 대성공할 수 있을 거라 본다.
흡혈왕은 아직 두권밖에 안나왔기에 많은 부분이 드러날 여지는 없다. 하지만 당장 드러난 것만으로도 감탄할 수밖에 없다. 바하문트가 자신을 '외부에서 관찰'하며 객체화 시키는 능력이라던가, 고대 흉왕에게 물려받은 드레인 능력, 엄청난 뇌의 기능을 십분 활용한 심상훈련, 어떤 플루토나이트도 할 수 없었던 극한의 멀티태스킹 등. 각각의 소재가 완전 100% 독창적인 거라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쥬논님만큼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감칠맛나게 그려낼 수 있는 이는 거의 없다.
◇ 새로운 시도, 플루토 ◇
흡혈왕은 '기갑물'이라 불리는 부류의 판타지 소설이다. 묵향이나 나이트골렘, 제이코플레닛 같은 작품들을 생각하면 쉽게 개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플루토'라 불리는 인간형 기갑병기가 등장하며, 엄청난 비중을 차지한다. 현대로 치면 핵무기와 동등하게 취급되고 있는 듯 하다.
앞에서 서술했다시피 설정의 독창성과 그 구현에 있어서 쥬논님의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것은 플루토에서도 마찬가지라, 치밀하게 짜여진 섬세한 설정을 만날 수 있었다. 증식금속과 마정석의 개념, 플루토가 실체화할 때의 묘사, 전투시 플루토의 위용 등 무엇하나 흠잡을 곳이 없다.
그러나 실질적인 이야기의 진행은 이제부터이므로 플루토라는 새로운 시도가 과연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쥬논님의 글이 가진 매력의 상당부분은 기이한 능력자들의 이능력전투가 차지한다고 본다. 그러나 플루토라는 기갑병기를 활용해 싸우면 아무래도 그런 내용의 비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플루토 자체에도 몇몇 마법처리로 특수능력을 가질 수는 있는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는 칼싸움에 파워싸움 아닐까. 아무래도 방향성이 고착될 수밖에 없어보이는데, 과연 거기에도 쥬논님의 기교가 파고들 틈이 있을런지.
물론 사서 하는 걱정일 것이다. 쥬논님은 계속해서 독자를 깜짝 놀라게 만들 아이디어 보따리를 움켜쥔 채 풀어놓을 날만 기다리고 계실 거라 믿는다. 아주 약간의 걱정과 큰 기대를 갖고 3권을 기다리는 중이다.
◇ 바하문트 ◇
주인공 바하문트는 전작들의 주인공과 비슷한 면이 많다. 특히 규토와 많은 유사성을 느꼈다. 규토같은 경우 모종의 이유로 방향성이 고정되어 있었지만 바하문트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 다를까. 처음엔 곱게 자란 귀족 도련님이었으나, 그때부터 이미 짐승의 기질이 잠재되어 있었다. 그리고 역경을 거치며 그의 집념과 의지는 빛을 발하고, 점점 더 강해져간다.
쥬논님 글은 대체적으로 성장물 형태를 가진다. 열심히 단련하고, 보물을 획득하고, 특수한 힘을 체득하며 점점 더 강해져 간다. 그리고 그 성장과정이 너무나 즐겁다. 마치 내 자식 무럭무럭 크는 거 보는것처럼 뿌듯함마저 느껴진다. 항상 의외의 방식으로, 기발하고 톡톡 튀는 묘사를 보여주기에.
◇ 총평 ◇
책의 재미를 판단할 때 여러가지 기준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내 기준은 이렇다. 읽는 도중에 딴 생각이 안나면 재밌다. 읽고 나서 다음권에 목마르면 재밌다. 딴 생각 안날 정도로 몰입할 수 있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미칠 정도라면 당당하게 '이거 재밌어!'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흡혈왕 바하문트 두권을 읽는 와중에 난 핸드폰 소리도 듣지 못했고 화장실 한번 가지 않았다. 2권 마지막 장을 덮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다음권!!'이었다. 쥬논님의 집필발표 이후 제멋대로 한껏 높아진 나의 기대를 멋지게 충족시켜 주었다. 다른 이들에게도 자신있게 권할 만한 글이다.
http://blog.naver.com/serpent/110027207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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