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마법사의 도시를 읽으며 만화 야후가 끊임없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리 다르지도 않습니다. 너무나도 잔인한 세계 앞에 발가 벗겨져 유린 당하며 끊임없이 캐릭터가 고뇌하고 또 고뇌하니까요. 다만 야후가 팩션으로 방향을 잡아 나아갔다면 마법사의 도시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픽션으로 방향을 잡아 나아갔습니다.
야후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너무도 세상앞에 나약한 것과 달리, 마법사의 도시 주인공 김유예는 세상앞에 당당해 할 힘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그렇기에 처음에는 자신이 세상을 상대로 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저항합니다. 하지만 그 저항은 전혀 김유예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저항은 오히려 김유예를 구석으로 몰아넣습니다. 힘은 김유예를 코너로 밀어놓고 세상은 잔인하게도 강펀치를 연달아 쑤셔넣습니다. 김유예는 몰리고 또 몰립니다. 정신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모든 것에서 끊임없이 밀립니다. 마법은 김유예에게 구원이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희망고문이 됬습니다. 눈 앞에 있는 것들을 구할 수 있다 유혹만 한 후 너무나도 잔악하게 낚아채 부쉈습니다. 망연자실해있는 김유예에게 이리 귓속말합니다. ‘아깝다.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구했을지도 모르는대.’. 즉, 마법은 후반이 되기 전까지는 김유예에게 희망은 커녕 절망만을 줍니다. 마법은 김유예를 구해주는 초월적인 힘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후려치고 또 후려치는 희망‘만’ 찬 힘입니다.
그렇다고 후반이 됬을 때 김유예에게 희망을 주냐면 과연 그런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김유예는 아무런 갈망도 아무런 굴레도 없습니다. 한가지를 빼고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대, 그것조차 김유예 스스로의 갈망이 아니라 타인의 갈망을 대신 이뤄주는 것일 뿐입니다. 작중에 김유예가 그것으로부터 희망을 느낀다는 묘사는 따로 없었습니다. 작중에 나오는 김유예는 그저 끊임없이 이리저리 부평초처럼 휘둘리다가 부평초처럼 텅텅 빈 채 아무것도 없게 된 캐릭터로 묘사됩니다. 그게 과연 살아있는 사람일까요. 마치 타고 나서 재만 남아 이리저리 바람에 휫날리는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마법사의 도시는 성장소설입니다. 캐릭터가 자라나고 변화하는 모습을 섬세한 필력과 묘사로 잘 표현해냈습니다. 팩션으로 나아갔다면 현재의 픽션보다는 더 괜찮아졌을 것 같지만, 그것은 저 혼자만의 욕심일 뿐이고 전체적으로는 매우 괜찮은 소설입니다. 다만 갑작스레 나타난 여주인공과 그 후부터 급격하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스토리 진행은 호불호가 크게 갈릴 수 있습니다. 저처럼 그 부분이 용납 가능하기에 이야기의 호흡에 빠져든다면 수작으로 보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졸작으로 보일 것입니다. 작가분께는 죄송하지만 명작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우선, 6권에 캐릭터를 너무 성급히 완결 짓느라 갑작스레 기존까지 짓어온 캐릭터를 크게 신경쓰지 않고 되는대로 이야기를 종결하기 위해 이야기를 썼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6권까지 원하던 만큼 원없이 이야기를 풀어내셨다면 여력이 딸리신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중간에 여주인공이 갑자기 나타나는 부분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하셔서 뜬금없다라는 느낌이 크게 나왔습니다. ‘기존까지의 이야기는 그저 캐릭터를 짓기 위한 이야기일 뿐이였고 앞으로는 크게 영향을 끼치거나 다시 언급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고 이제 내가 쓰고자 했던 원래의 이야기를 쓰려고 하니 기존의 이야기를 좋아하던 사람들은 이것도 좋아하거나 아니라면 그냥 ㅂㅂ’ 라고 작가님이 직접 말하는 것만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여주인공이 나타난 부분을 기점으로 2개의 독자적인 이야기들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조악한 실력으로.
더 있습니다. 주인공의 성장에 초점을 맞췄다보니 주인공 주위의 타인들의 성장은 크게 대두되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동안 나머지 캐릭터들은 제자리걸음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남선이란 캐릭터를 예로 들어봅시다. 남선은 매우 잘 짜여져 있는 캐릭터이지만 여주인공이 나타난 후에는 가끔 나타나 이야기를 원활하게 진행시키기 위한 윤활제 역활로 돈만 뿌려주고 사라집니다. 그 후에는 정말 편리하게 주인공이 통역기계를 이용해 세계평화를 이루려 하니 정말 편리하게도 사장이 되어있어 정말 편리하게도 팔아줍니다. 주인공 주위 타인들은 그저 이야기를 원활하게 진행시키기 위한 윤활유가 된 느낌입니다. ‘주인공에게 자극이 있어야 해. 이놈 죽여야겠네. ㅂㅂ. 주인공에게 돈이 필요해. 돈 내놔 이놈아!’. 초반부터 잘 짜여진 캐릭터들이 많았기 때문에 중후반부터 주인공에게만 포커스가 맞춰지며 나머지가 무시되니 제법 아쉬웠습니다. 캐릭터들을 모두 살리며 주인공에게도 포커스를 맞췄다면 2개의 이야기들을 좀 더 원활하게 이어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정리하자면, 재밌습니다. 취향 맞다면 수작이고 아니라면 졸작입니다. 대중을 위한 명작이 될 수도 있었다는 가능성이 보여가지고 좀 아쉽습니다. 다음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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