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전 금요일. 여느때와 다름없이 제 발걸음은 동네 대여점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전날 보았던 '천룡전기'4~6권을 빌리기 위함이었지요.
급히 4,5,6권을 뽑아들고 계산을 하려던 저에게 책방 아주머니는
슬그머니 책 5권을 제 앞에 펼쳐보이시더군요
"신간 나왔는데.."
"아 그래요? 같이 주세요 전부다 "
비닐봉지 한가득 책을 빌려오는 이 모습은 저의 일상생활입니다.
무협 환타지소설을 읽는 것은 저의 몇안되는 취미 중 하나지요.
천룡전기6권을 덮고 지적 포만감에 잠시 뿌듯했던 제가 다음에 짚
어든 책은 "형산백응"이란 책이었습니다.
전 항상 책을 짚어들면 서문을 유심히 봅니다.
서문이야 말로 작가가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써놓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솔개는 약 40년의 세월을 보낸후에는 2가지 선택을 해야 한다.
그냥 죽을 날을 기다리거나,아니면 갱생의 과정을 통해 환골탈퇴
하거나이다. 갱생의 과정은 매우 고통스러운 것으로 부리를 바위에
쪼아 예전 부리를 뽑고 새부리를 얻는다. 그리고 그 부리로 발톱을
뽑아 새 발톱을 얻는다."
여기까지 읽고 저의 기대감의 수치가 상승하는걸 느꼈습니다.
"아 이거 주인공 무지 처절하게 성장하려나 보구나"
곧 몰입모드로 들어간 저는 싱크로더듬이를 이용하여 싱크대상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싱크로더듬이는 주인공 조연을 가리지
않는다는 장점을 지녔습니다.
책을 읽은지 몇페이지 되지 않아 곧 싱크대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백아"라는 주인공 소년이 등장 하더군요.
백아는 목표가 있는 인물입니다. 계속 언급되는 "화산의 그"라는
인물을 죽이는것이 백아의 목표이지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화산의 그"보다는 좀더 높은 무공을
닦아야 합니다. 근데 주인공의 상황은 그리 여의치 않습니다.
형산의 방침에 의하면 주인공의 배경은 평제자이상이 되기 힘듭니다.
배울 수 있는 무공은 "비파검법"이라는것이 한계지요.
주인공은 절박합니다. 또.조급함도 느낍니다.
"화산의 그"는 멀리있기만 한데 좁힐 방법은 여의치 않습니다.
절박한 백아는 많은 돈을 기부하고 무공을 사사받은 인물 중 한명을
꼬드겨 "건천공"이라는 내공심법을 배웁니다.
이 순간 전 주인공의 성격을 대충 파악하기 시작합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편법도 동원하는 놈"
강해지기 위한 주인공의 고뇌는 1권 1/3이 지나도록 계속 됩니다.
배운것만으로는 더 강해질 수 없다는 고민이 이어집니다.
백아는 의지가 강합니다. 집념까지 느껴질 정도로 백야는 우직하게
5년이 넘는 세월을 비파검법만 수련합니다.
백아에겐 사형이 있습니다. 비슷한 처지의 사형은 백야보다 조금더
강합니다. 그에게선 천재의 냄새가 납니다. 둘이 대화를 나눕니다.
"왜 형산에 남아있는거지?"
이 짧은 문장에서 우리는 백아와 그 사형이 처해 있는 암울한 상황을
유추해 낼 수 있습니다.
"어릴적 산에 올라가다 우연히 보게된 어느 도인의 검무는 나의 뇌리에서 잊혀지지않아." 라고 사형이 말합니다.
이로써 사형이 형산에 남아있는 이유는 납득이 어느정도 됩니다.
우연히 보게된 그 도인이 "형산의 도인"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
또 그 도인이 춘 검무가 형산의 것인지를 매우 어린나이에도 백아의 사형이 알아볼 수 있었던 안목의 유무도 알수는 없습니다.
여하튼 최소 백아의 사형이 형산에 미련을 가지는 이유는 어느정도
납득이 됩니다.
여기서 전 주인공을 돌아보게 됩니다. 주인공은 왜 유독 형산에
미련을 갖고 있을까라는 당연한 궁금함이지요.
다행이 몇페이지 지나지 않아 그 궁금함의 답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섬서출신인 난 화산에 가야 했지만 화산엔 죽여야 할 "그"가 있어"
여기서 전 조용히 책을 덮고 컴퓨터를 튼 다음 "스타크래프트"를
몇 판 한 후 편안하게 잘 수 있었습니다.
어느 무협지이던 문파나 방의 명칭이나 특징은 대개 비슷하게 쓰입
니다. 물론 서열도 존재 하지요. 대개 구파일방을 가장 높게 취급
합니다. 가끔 새로운 문파를 창조해서 구파일방보다 좀더 높게 설정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형산백응의 경우 역시 어느정도 서열은 타무협지와 비슷하게 설정
해 놓았습니다. 구파일방이 가장 우위 그 아래로는 오악검파 정도로
설정해 놓았더군요.
주인공은 애초 목표가 "화산의 그"를 죽이기위해 강한 무공을 익히
는 것입니다. "화산의 그"와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전 알지 못합니다.
작가의 설정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지요.
어떤 사정인지는 알 수 없으나, 주인공의 나이로 미루어 볼때 7살
이전의 사정입니다. 형산파에 입문한것이 7살이기 때문이지요.
7살의 지능과 식견을 어느정도까지 설정해 놓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
다만, 소설을 읽고 앞뒤를 판단해 볼때 7살 소년이었던 백아의 식견이
구파일방 정도는 알 수 있었다고 판단됩니다. 또,7살 소년이 "화산의
그"를 죽이는게 목표가 됬을 정도로 그 원한(?)이 매우 깊고 사정이
매우 복잡했었다고 생각됩니다. 덧붙여서 백아는 비파검법만 7년을
넘게 수련할 정도로 우직하고 매우 집념이 강한 성정을 지녔습니다.
소설의 설정에 형산의 세가 테산보다기운것은 백아가 12세 였을 당시부터 10년전으로 나옵니다. 기부금이 없다면 평제자 이상으로 받아
들이지 않지요. 그런 백아가 왜 유독 첨에 형산에 몸을 의탁했을까요?
백아의 성정으로 보나 그 절박함으로 보나 구파일방 아래이고 또,
기부금이 없으면 무공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는 약점까지 가진
형산을 선택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아 갑자기 슬램덩크의 4컷까리 만화가 떠올릅니다.
능남의 안감독이 중3에서 고등학교로 올라오는 인재를 포섭하는
장면인데. 1컷부터 3컷까지의 인재들은 안감독의 포섭을 거절합니다.
전부 북산의 감독을 흠모해서 거절합니다. 근데 맨 마지막 4컷의
서태웅은 다른 이유로 거절합니다.
"넌 왜 북산으로 가려느냐 너도 북산의 감독때문이냐?"
"가까워서..."
단지 섬서출신이고 형산이 가까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백아가
유독 형산을 선택했다는것은 제 머리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가더군요.
3일 전에 조용히 덮은 책을 다시 읽은건 오늘 오후였습니다.
좀더 읽어본다면 납득할 만한 내용이 있을거라고 믿으면서 말이죠.
이미 저와 백아를 연결했던 실은 가닥 가닥 끊어진 상황이었습니다책 중반쯤을 읽자 백아는 강호로 출도합니다.
그리고, 모종의 사건에 얽혀 왜구와의 일전을 벌이게 되지요.
백아 일행의 숫자는 3~40... 왜구의 숫자는 100가까이 되는 숫자
입니다. 숫자의 열세를 뒤집기 위해 백아는 모종의 물건을 꺼내듭
니다. 그리고 그 모종의 물건으로 인해 저와 형산백응을 연결했던
마지막 실이 끊어지는걸 느끼더군요.
책 58~59페이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육합문으로 가야하나"
좀더 강해지기 위해 주인공은 형산을 버리고 다른 문파에 의탁할
생각까지 합니다. 미루어 판단하건데 형산에 특별히 미련이 있는것
은 아닙니다. 단지 좀더 강해지기 위한 수단으로써 형산이 필요했던
거지요.
주인공은 결정합니다. 다만 강해지는게 목표였다면 마교나 녹림에
가는것이 더 나으리라. 하지만 그럴순 없다. 왜?? 평판이 낮아지니
까...
네, 그렇습니다. 위의 내용으로 처음에 제가 가졌던 도저히 납득이
안갔던 사실 중 일부가 해소 됬습니다. 9파일방이 아니더라도
마교나 녹림에 왜 들어가지 않았을까라는 그 의구심 말이죠.
주인공은 평판에 신경을 매우 씁니다. 주인공에겐 야망이 숨어 있
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화산의 그"에게 복수 하는 일이 저의
생각보다는 덜 절박할런지도 모릅니다.
여하튼 주인공은 평판을 매우 신경쓰며 남의 눈을 매우 의식합니다.
정파의 일인으로써 칭송받기를 원하며, 또 "화산의 그"에게 복수하는
일은 반드시 정파의 일인이어야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지요.
이런 의식을 가지고 있는 그가 왜구의 싸움에서 그 "모종의 물건"을
사용합니다.
그 모종의 물건은 그 뒤로 이어진 묘사로 미루어보건데 "벽력탄"
의 일종으로 판단되어집니다."
벽력탄의 사용 후 설명이 이어집니다.
[ 무려 팔 년을 가지고 있었던 물건이었다.그럼에도 무리 없이 작
동했다는 것에 만족하면서도,한편으로는 씁슬한 느낌이 들었다.
이건, "화산의 그"에게 사용하려 준비했던 물건이었으니까.]
이 설명을 읽고 전 "덜 절박할런지도 모른다"라는 저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됩니다. 주인공은 매우 절박합니다. 폭탄을 써서
라도 "화산의 그"를 죽여야 합니다. 원한이 보통 깊은게 아닌가 봅니다. 맨처음 제가 생각했던 주인공의 성격에 약간 수정이 필요함을
느끼게 됩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편법도 동원하는 놈"에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놈"으로 바뀝
니다.
꼭, 무공만으로 죽여야 하는 상대가 아닌가봅니다.
주인공이 매우 절박하게 무공을 익힐려고 고뇌했던 순간들이 모두
덧없어 집니다.
이젠 구파일방에 왜 들어가지 않았는가라는 의구심에 더해
왜 "살문"에 들어가지 않았나 라는 생각까지 더 해집니다.
폭탄까지 쓸려는 주인공이 평판을 신경쓰면서 마교나 녹림에 들어가
지 않는 모습에선 이율배반적인 느낌까지 마구 솓습니다.
이어지는 왜구와의 전투에서 칼이 도가 됬다가 도가 칼이 됬다가
갈팡질팡 합니다. 이미 저에게 밉보인(?) 탓인지 출판사의 오타 정도
로 넘어가지지가 않아집니다. 급히 호흡을 가다듬은 전 한결 평온
함을 느끼며 공허한 눈빛을 한 채 1권을 다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냥 보면 되지 참 별별거를 다 생각하면서 책본다"며 제 안의 다른
누군가가 외칩니다. 팔자려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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