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소설은 과연 어디까지 현실적이어야 할까
*들어가기에 앞서 하나:
설 연휴를 전후하여 몸에 지독한 부하負荷가 걸린 탓에―앞서 2주간의 밤샘(평일에는 새벽 4시 이전에 자 본 적이 없습니다), 헌혈(우리 모두 동참합시다. 북적거리는 시내 한복판에서도 헌혈차는 한산하다 못해 파리가 날리더군요), 광란의 축구경기(고등학교 적 친구 녀석들과 간만에 죽어 봤습니다), 이틀 연속 산타기(성묘도, 등산도 싫습니다) 등등―정신이 술에 취한 듯 어찔어찔하여 이야기에 두서가 없어질 확률이 농후합니다. 그 점을 감안해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둘:
제 잡문이 대상으로 하는 것은 비단 일반적인 ‘판타지소설’뿐 아니라, 이른바 ‘장르소설’로 지칭되는 분야 전체의 ‘설정’에 대한 것입니다. 하지만 서술의 중심은 ‘판타지소설’이 될 것이므로, 위와 같은 제목을 정했습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1.
일전에 제가 조아라에서 활동할 무렵, 토론방 등지에서 소설의 ‘설정의 비현실성’을 이유로 작가님을 성토하는 회원 분들을 상당수 보았습니다. ‘이 인물은 역사적으로 이러이러한 인물인데 당신 소설에는 어떠어떠하게 나왔다. 당장 고쳐라’, 내지는 ‘당신의 글에 나온 설정은 과학적으로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 얼토당토않은 헛소리를 할 바에는 때려치우라’는 식의 언어폭력을 아무 거리낌 없이 퍼붓는, 좋게 말하면 신랄한 비평자이고 나쁘게 말하면 인간 같지 않은 종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써 갈기는, 이른바 ‘학문’의 이름으로 무장한 텍스트를 다수 접하며 저는 개인적인 의문을 품게 됩니다. 과연 소설은 어디까지 현실적이어야 할 것인가.
긴 글 싫어하시는 분들을 위해, 먼저 결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소설은 작가가 생각하는 만큼만 현실적이면 됩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필요 없습니다. 소설의 고유한 설정을 세우고, 그것을 기반으로 삼아 소설을 쌓아 올리는 것은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작자作者 고유의 권한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도 조건이 따릅니다. 설정은 나름의 완결성을 가져야 하며, 독자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만큼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 ‘설정’의 가치는 고작해야 허점을 감추기 위해 둘러대는 임시방편에 불과한 것으로 격하됩니다.
2.
설정은 동화 속 ‘마법의 지팡이’와 같은 놀라운 힘을 발휘합니다. 그 어떤 비논리적인, 상식의 이름으로는 용납될 수 없는 상황전개도 ‘설정’을 통해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삼국시대에 총을 들고 나타난 왜구들’도 이에 대한 확실한 설정―왜놈들이 초고대문명의 유산을 획득하여 화약제조능력을 확보했다거나, 본래 삼국시대에는 화약무기가 일반화되어있었으나 이 사실이 후세로 오며 왜곡‧은폐되었다거나, 하다못해 외계인들이 기술을 전수해 주었다거나―만 뒷받침된다면 얼마든지 ‘소설적 허구’의 일부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뱀 발 하나: 그 ‘삼국시대에 총을 들고 나타난 왜구들’에 대해서는 지난 번 잡문雜文에 언급되어있습니다. 별로 대단한 건 아니고, 그저 글 중간에 한두 줄 정도로 짧게 나와 있을 뿐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적잖은 수의 소설을 읽어 오면서 느낀 점이 설정이 좋은 소설 중에는 수작秀作도, 범작凡作도 나올 수 있지만, 설정이 나쁜 소설 중에 수작이라 부를 만한 작품이 나온 경우는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잘 해야 범작, 심하면 졸작이었죠.
참고로 이 글에서 설정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기준은 개인적 취향에 따른 호불호도 아니오, 일부 ‘사이비 비평가’들처럼 ‘어, 저거 먼치킨이네. 먼치킨은 일단 까고 보자’는 식의 막무가내식도 아닙니다. 작자가 얼마나 설정에 공을 들였는가, 그 설정이 얼마나 논리성과 완결성을 지니고 있는가, 바로 그것입니다.
3.
설정이 좋은 소설로 저는 ‘여왕의창기병’을 예로 들어 이야기를 끌고 나가겠습니다. 설정이 좋은 다른 작품들이 많이 있음에도 굳이 이 소설을 예로 드는 것은 저 개인의 취향이 아주 ‘강하게’ 작용한 탓이 큽니다(이 부분에 대한 태클은 사양합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 개인의 생각을 두서없이 주절거리는 잡문雜文에 불과합니다).
[뱀 발 둘: ‘여왕의창기병Lancers of Regina’은 늑대호수라는 필명을 사용하시던 권병수님의 작품으로, 과거 하이텔 시리얼에 연재되었으며, 현재는 서점에서 책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중세 전쟁’이라는 소재를 이만큼 잘 살려낸 소설은 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꼭 한 번쯤 읽어 보실 것을 추천하는 작품입니다.]
여기서는 이 소설의 스토리 전개가 어떻고, 인물들이 어떻고를 논하지는 않겠습니다. 소설을 이미 읽어 보신 분들께는 지루한 이야기가 될 테고, 아직 읽어 보지 못하신 분들께는 자칫 네타―그냥 제게 익숙한 단어로 쓰겠습니다―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다만 제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이 소설의 치밀한 설정에 대한 부분입니다. 소설의 무대가 되는 대륙―이 소설 어디에도 대륙의 이름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대륙’일 뿐입니다―에 대한 작가님의 설정은 실로 고개가 숙여질 만큼 대단합니다. 대륙에서 사용되는 8개의 언어, 현존하는 20개의 국가, 국가별로 다른 화폐단위, 기념일, 수도, 역사, 심지어 귀족가문의 문장에 이르기까지 작가님의 설정은 그 모든 분야를 아우릅니다. 소설의 직접적인 스토리 진행과 관련 없는 부분까지 포괄하는 설정의 방대함으로 인해, 차라리 역사책을 다이제스트Digest해 놓은 듯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뱀 발 셋: 이 소설의 설정을 구해 읽고 싶으시다면, 책을 보시면 됩니다. 매 권의 뒷부분에 부록으로 국가별 설정이 올라와 있는데, 작중에 이름 정도만 언급되는 국가들에 대해서도 설정이 매우 자세하게 되어 있는지라 읽는 내내 정신적으로 몇 번이나 각혈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설정이 그토록 치밀하게 되어 있는 탓에, 책으로 10권 분량에 달하는 소설을 통틀어 상호 모순되는 서술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작중의 인물들이 대륙의 정세를 논하고, 문화와 언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은 물 흐르듯 매끄러워 위화감이 없습니다. 이는 작가님의 탁월한 필력과 더불어 치밀한 설정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4.
좋은 설정이라고 해서 굳이 이런 몬스터 급의 설정폭탄을 등 뒤에 짊어질 필요는 없습니다. ‘내 소설의 설정은 이런 것이다!’ 하고 공공연히 떠벌일 필요도 없지요(어떤 유명하신 작가님께서 설정은 작품의 뿌리이며, 뿌리가 드러나면 나무는 죽는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얼핏 기억납니다). 그저 판타지 쪽의 글을 쓰시는 분들이 대개 그러하듯, D&D의 룰을 빌려와 글을 쓰셔도 좋고(초기 판타지소설들이 대부분 D&D 룰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정립된 ‘양판소’의 일반 설정을 가져와 나름대로 살을 붙여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글 쓰는 분들이 나름의 확고한 설정만 정립되어 있으면 충분합니다. 중요한 건 충분한 ‘논리성’과 ‘완결성’이니까요.
글의 초반부터 제가 계속해서 들먹이는 ‘논리성’과 ‘완결성’이란 실은 그리 대수롭지 않은 것입니다. 먼저 ‘논리성’은, 중력가속도 g값을 가진 중력장 속에서 질량 m을 가진 물체는 m*g만큼의 중력을 받는다는 식―제가 전공이 이과 쪽이어서 하필이면 예를 들어도 이런 것을 듭니다―의, 현상의 지극히 당연한 귀결을 의미합니다. ‘완결성’이란, 설정이 서로 모순되지 않고 상호간에 조화를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앞 문장에서 ‘A = B는 성립하나, B = C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해놓고는 뒤 문장에서 다짜고짜 ‘A = C는 성립’이라고 말하면 곤란하겠지요(만약 참고서를 그런 식으로 써 놓는다면 아무도 사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멋진 발상으로 나름대로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설정일지라도, 이 ‘논리성’과 ‘완결성’이 결여되어있다면 결코 좋은 글이 나올 수 없습니다. 하물며 그런 설정이라도 제대로 서 있는지 의심스러운 소설이라면, ‘좋은 소설’이 되기란 그야말로 뽀글이 아저씨가 K모국의 ‘관습법상 수도’인 ‘아시아의 영혼’ 시에 ‘정상正常이 되고 싶은 사람들의 회담’ 참석을 위해 스트레이트파마를 하고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요원한 일이 되겠습니다. 바로 아래에 언급할 소설처럼.
5.
이제 설정이 나쁜 소설도 예를 들어보아야겠지요. 차후에라도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소설의 제목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그저 출판사가 책상자이며, 제목의 의미가 영어사전에는(관사冠詞를 붙여) ‘개인의 본능적 충동의 원천’을 의미하는 정신의학 용어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 정도만 말하겠습니다(이 정도만 말해도 아실 분들은 다 아실 듯).
어지간해서는 한 번 읽기 시작한 글은 완결을 보는, 말 그대로 ‘지뢰’를 밟더라도 끝까지 밀고나가는 성격―그래서 선작을 고를 때는 언제나 조심스럽습니다―의 저조차도 그 소설만큼은 도저히 완결까지 견딜 수가 없어서 그대로 던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마 소총을 한 탄창 다 비우고서도 죽일 수 없었던 몬스터가 칼질 몇 번에 숭덩숭덩 베어져 죽어버리는 대목을 읽고 나서의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일전에 제가 조아라에서 활동하던 시절에 모 작가님이 말씀하셨던 ‘보편적 타당성’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역시 그분의 말씀이지만, 아무리 환상 속이라도 ‘~한 일이 일어난다면 ~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보편적인 가정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제 생각은 약간 다릅니다. 마땅한 설정이 있다면 이는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읽은 책으로 읽은 소설 중에 ‘마계’라는 작품(작가님의 성함도, 출판사도 기억나지 않는군요. 죄송합니다)이 있습니다. 그 소설에서도 우리가 사는 곳에 다른 세상에서 온 괴물들이 나타나 ‘깽판’을 놓고, 총화기로 죽일 수 없는 놈들을 초인들이 칼질 몇 번에 숭덩숭덩 베어 넘겨 죽입니다. 그렇지만 전 이 소설을 던져버리지 않았고, 오히려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합당한 ‘설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그 설정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직접 확인해 보시길. 씨익~). 만약 제가 도중에 집어던져버렸던, ‘정신의학용어로 개인의 본능적 충동의 원천을 의미하는 단어를 제목으로 사용하는 소설’도 그런 합당한 설정―하다못해 ‘장인이 단조鍛造하여 만든 칼로 몬스터를 찌르면 몬스터가 앨러지Allergy 반응으로 가려움에 발광하다 죽습니다.’라는 황당한 설정이라도 좋아요―이 있었더라면 또 모릅니다. 끝까지 재밌게 읽었을지. 그러나 그 정도의 설명조차 없었기에 저는 그 소설을 집어던졌고, 지금 ‘설정이 나쁜 소설’의 예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6.
이와 같이 ‘설정이 나쁜 소설’들은 주로 퓨전Fusion 장르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퓨전’이라는 장르는, 본래 양립兩立할 수 없는 서로 다른 시대와 역사, 문화와 세계관을 혼합하여 그것으로부터 비롯되는 긴장을 통해 독자에게 재미를 주는 분야입니다(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으나, 최소한 저의 견해는 이렇습니다). 이쪽 부분의 소설을 읽다 보면 가끔씩 발견되는 문제점이, 글 쓰는 분들이 ‘장르의 혼합’에만 너무 골몰하신 나머지 가끔씩 ‘논리성’과 ‘완결성’에 대한 고려를 소홀히 하신다는 겁니다. 위에서 예로 든 소설처럼.
위에서 저는 분명 ‘설정을 공개할 필요는 없다. 그저 논리성과 완결성을 가진 나름의 확고한 설정만 가지고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설정은, 필요한 만큼은 반드시 공개되어야 합니다. 정히 ‘난 어떻게 되었든 설정을 공개하지 않아!’ 라고 외치시겠다면,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이 지닌 글을 쓸 생각은 포기해야지요. 구태여 설정을 감추겠다는 것은 독자님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룰’을 따르겠다는 의미가 될 테니까요.
7.
이른바 ‘양판소(DC쪽에서 많이 사용하는 표현입니다)’로 일컬어지는 소설들의 예를 들어보면, 그 암묵적인 룰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마법의 원천이 되는 힘 마나Mana가 존재하며, 마법사들이 있어 이를 사역使役한다.
2. 기사도와, 이를 따르는 기사 집단이 존재한다.
3. 시대적 배경은 중세 언저리로 맞춘다.
4. 몬스터가 등장한다.
5. 기타 직업(전사, 용병, 성직자, 도둑 등등), 경제(주로 초보적인 화폐경제), 사회제도(주로 봉건제) 분야의 설정들.
[뱀 발 넷: 주로 D&D의 룰을 차용借用했던 초기 판타지소설들은 굳이 설정을 밝힐 필요가 없었지요. D&D라는 단어가 모든 설명을 대신해 주었을 테니까요.]
이 암묵적인 룰은 지금까지 많은 작가님들과 그분들의 소설을 통해―다소의 허점은 있을지언정―나름대로 충분히 정립되어 있습니다. 그런 고로 이를 따라 소설을 쓰는 건, 세세한 설정을 세우고 이를 설명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서라면 방법론적으로 과히 나쁘지는 않습니다.
8.
문제는 퓨전소설에서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판타지와 현대물을 믹싱―그 Mixing말입니다. 현대인을 판타지세계로 날려 보냈건, 판타지세계의 인물을 이쪽으로 끌어왔건, 방법은 다양하겠지요―한 소설들의 경우, 그 문제는 ‘판타지소설의 정립된 설정’이 현실세계의 ‘상식’이라는 설정과 충돌하게 됩니다. 지난 수천 년에 걸친 인문-자연과학 발전의 결과물들을 향유하며 생활하고 있으며, 이 발전의 도상途上에서 탄생하고 발견된 수많은 ‘법칙’과 ‘현상’들을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 속의 우리가, ‘비현실’을 전재로 만들어진 설정을 맞닥뜨리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물리-화학의 기본전제인 질량-에너지보존법칙마저 깨끗이 무시해버리는 설정들조차 판타지소설 속에서는 얼마든지 받아들여질 수 있었습니다. Fantasy는 말 그대로 환상이니까요.
이 ‘현실과 환상의 간극間隙’을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글 쓰는 분 나름의 확고한 설정과 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인데, 어째 이것이 누락되어버리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아마 ‘이 정도 설명은 생략해도 충분할 것’이라고 글 쓰는 분 나름대로 생각하신 탓이겠지요. 하지만 환상과 현실의 간극은 생각보다 넓으며―예를 들어 마법을 ‘에너지보존법칙’으로 설명해 보시겠습니까?―그 간극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설정’과 이에 바탕을 둔 설명입니다.
[뱀 발 다섯: 개인적으로는 그 분량이 너무 지나쳐 스토리 전개를 해치지 않는 이상에야 설명은 충분할수록 좋다고 봅니다. 설명을 생략해도 되는 부분은 ‘확고한 상식’으로 굳어진, 예를 들어 기본적인 마법의 발현 형태 같은 것들이나, 기본적인 기사도에 대한 부분 정도가 되겠지요.]
9.
이 ‘암묵적 동의에 따른 설명의 생략’과 ‘자신의 설정에 바탕을 둔 설명’이 잘 조화된 작품으로는 소설가 이문열님의 ‘호모 엑세쿠탄스’를 들고 싶습니다. 일단 성격은 정치현실에 대한 비판 쪽에 가까운데, 그 소설 전반에 깔린 분위기가 워낙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이어서요.
[뱀 발 여섯: 이 분의 정치성향과 소설의 작품성에 대해서는 이래저래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최소한 위에서 언급한 ‘호모 엑세쿠탄스’만큼은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특정 작가의 정치성향에 대한 지지나 반대에 대한 언급을 ‘절대’ 하지 않을 것임을 밝혀둡니다. 따라서 이에 관련한 태클도 절대 사절합니다.
아시다시피 이문열님의 정치성향은 ‘골수 우익’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그가 어떤 식으로 참여정부 집권하의 대한민국을 바라보았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의 소설이 독자층으로 겨냥하는 대한민국의 성인들은 대개 고등교육 이상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소설의 진행을 위해 역사적 사실들을 차용해 오면서 고대 로마가 어떤 국가였는지, 유대 반란을 진압한 로마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최소한도로 생략합니다. 다만 일반인들이 생소할 ‘유대 반란’에 대한 설명과 자기 나름의 해석에 대한 부분은 매우 충분하게 제공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소설의 배경으로 삼고 있으므로, 사회적-문화적인 부분에 대한 설명은 별반 특기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그가 바라본 ‘현실’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은 등장합니다.
[뱀 발 일곱: 글쓰기를 업으로 삼아 수십 년 경력을 쌓은 이문열님 같은 노련한 작가를 비교대상으로 삼는 것은 물론 상당히 무리한 일인 줄 압니다. 하지만 그의 텍스트를, 자신의 글을 돌이켜 반성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교재로 삼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10.
이렇듯, 소설은 적절한 생략과 충분한 설명―물론 마땅한 설정이 그 기반이 되어 줄 필요가 있겠습니다만―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하며, 이번 주의 잡문을 끝내겠습니다.
PS.1
문피아 회원 여러분들께서는 새해 복 많이 받으셨습니까?
모두 복된 한 해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PS.2
2주 동안 밤을 새우며 한 일이란, 그간 하드에 받아두고도 보지 못한 애니메이션을 모조리 클리어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정담란에 잡문 몇 자를 적어보고 싶습니다.
PS.3
역시 가이낙스는 대단하더군요.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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