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감상

추천에 관련된 감상을 쓰는 곳입니다.



작성자
Lv.1 나타
작성
08.02.12 02:06
조회
2,555

작가명 : 이영도

작품명 : 피를 마시는 새

출판사 : 황금가지

이영도님 작품은 다 봤습니다.

눈을 마시는 새는 개인적으로 이영도님이 쓰신 소설중에서 제일 훌륭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독특한 세계관 구축부터, 적절한 캐릭터 구성, 이야기의 전개방식 등등 눈을 마시는 새에서 이영도님의 필력이 가장 빛을 발했다고 생각합니다.

피를 마시는 새는 이런 눈을 마시는 새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소설입니다. 전작의 주요 캐릭터로 '눈물을 마시는 새'로서 통칭된 사모 페이가 등장하지요. 그렇지만 사모 페이가 주 등장 인물은 아닙니다. 전작이 왕을 다뤘다면 이번 작은 황제를 다뤘다고도 볼 수 있겠죠.

작가가 바라보는 왕과 황제는 다릅니다. 왕은, 구심점입니다. 세상의 흐름 속에서 그 흐름의 눈물을 마시는 새입니다. 황제는 지배자입니다. 세상의 흐름을 지배하고 거기서 나오는 피를 마시는 새죠.

전작의 사모 페이는 세계의 흐름 속에서 눈물을 마셨고, 종국에는 신의 눈물마저도 마셨습니다. 그녀는 군림했지만 지배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번 작품의 메인 인물은 치천제입니다. 사모 페이 이후로 황제가 되어 제국의 기틀을 쌓은 천재적 인물 원시제가 이른 나이로 죽어서 완성되지 못한 제국을 지탱해 나가는 인물이죠.

본문에서는 제국이 완성되지 못했기에 이를 유지하려면 피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치천제는 따라서 하늘의 요새로 대변되는 하늘치에 도시를 설립해서 하늘을 떠돌아 다닙니다. 그리고 제국에 방해되는 것이 있으면 제거하지요.

그리고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얽힙니다. 인구수의 증가로 특성마저 변해 가는 레콘을 걱정하는 아실과, 황제를 살해하려는 레콘 지멘의 이야기. 차기 황제로 낙점받은 엘시 에더리. 그리고 도깨비에게서 자라서 규리하 영지의 지배자가 되고 아버지와 대립하는 정우. 기타 여러 인물들이 나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종국에 가서는 하나로 모입니다.

작가는 플라톤이나 마키아벨리의 철인 군주론처럼 능력 있고 잔혹한 황제를 등장시켰습니다. 본문에서 이러한 황제는 '제국'이라는 거대한 기둥에서 잘못된 곁가지들은 과감하게 쳐내는 정원사로 비유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궁극에서는, 지금의 황제 치천제 본인이 원시제가 제국을 구상하면서 제국의 영속성을 위해 대비해 놓은 것이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치천제는 용이었고, 용은 일종의 식물형 인간으로서 키우는 사람에 따라 어떤 형태의 생명체도 될 수 있지요. 원시제는 치천제를 일만 육천년 동안 제국 사람들의 발전을 위해 가지를 쳐 줄 정원사로 일구어 놓았습니다.

소설 내에서는 이 계획이 나름 원대하게 표현됩니다. 치천제는 초인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사람들을 통제할 힘을 갖추기 위해 신으로서 군림하려 합니다. 그리고 신으로서 걸맞은 힘도 갖춥니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제국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묻습니다. 제국을 위해 곁가지를 칠 수 있는 잔혹함은 과연 누구에게 부여받는지 묻습니다. 이는 인류의 자유 의지와 관련된 이야기도 됩니다.

엘시 에더리는 제국에 충성을 다하는 인물입니다. 그가 천재적인 전략가로 묘사됨에도, 정치적으로 고민만 반복하고 원칙만 고수하는 모습은 어찌 보면 바보스럽기까지 합니다. 엘시 에더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치천제에게 조종당합니다.

그렇지만 엘시 에더리에게는 한 가지 원칙이 있었습니다. 제국의 황제가 사라졌을 때 그는 귀족원을 통해서 정상적으로 황제를 옹립하려고 합니다. 이는 제국의 황제의 권위는 제국이 부여하는 것이다라는 원칙일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엘시 에더리는 이 황제의 권위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요.

치천제는 엘시 에더리의 이런 생각마저 컨트롤하지는 못했습니다. 따라서 종국에 엘시 에더리는 치천제에게 반발하지요. 치천제는 결국 자신의 의도를 성공치 못하게 됩니다.

여기에 내용상에서 용은 인간이 아닌 것으로 나오고, 치천제가 용인 이상 인간이 아닌 것에게서 지배를 받을 수는 없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달리 말하자면, 아무리 신이라도 인간을 지배할 수는 없다는 말이지요.

피를 마시는 새는 작가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전작들보다도 더욱 심도있게 그려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읽기가 전작들보다 조금 힘들어졌다고 생각하며, 작가가 깔아놓은 복선들을 모조리 회수했다고 보기에는 조금 아쉬운 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작들보다 위트가 조금 줄었으며(아예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인물들은 더더욱 작가의 대변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제국의 필요성으로 설명되는 레콘의 변이가 나오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으로 작가는 절대자를 등장시켰지만, 등장 인물들이 절대자를 없앰으로서 이 레콘의 변이를 막을 적절한 방법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작가는 이 레콘의 변이를 제어하는 방법으로 종교를 깔아 주었습니다. 치천제는 자신이 신이 되려고 하면서 이 신의 신앙을 레콘들에게 주입시켜 주었지요. 그리고 엘시 에더리는 치천제를 죽이지는 않고 봉인합니다. 이는 드러나는 신은 절대 필요없지만 종교 자체의 의의는 부정하지 않는다라는 작가의 생각일 것입니다.

다만, 답변 없는 신앙은 신자가 해석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며 이러한 대상이 되는 신자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레콘입니다. 인류의 역사상으로도 십자군 전쟁이라던지 마녀사냥 등 종교의 광신으로 인한 살육은 매우 많았습니다. 레콘이 이 광신성을 띠게 되면 그 위험성은 우리 인류의 위험성보다 훨씬 배가되겠지요. 누구도 막을 수 없으니까요.

따라서, 작가가 인류의 실질적 지배자로서 신은 부적합하다고 설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레콘의 종교적 신앙이 과열되면 소설의 미래에는 다시 봉인한 신을 인간의 손으로 풀어 놓어야만 하는 결말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답변 없는 종교의 특성과 달리, 이 세계에서는 답변을 줄 수가 있으니까요. 문제는 인간이 봉인한 신이 자신을 봉인한 인간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입니다.

이외에도 치천제가 신으로 변화되는 과정이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피를 마시는 새는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 ' 12

  • 작성자
    Lv.1 나타
    작성일
    08.02.12 02:07
    No. 1

    쓰다 보니 눈물을 마시는 새를 눈을 마시는 새로 잘못 표기하였네요.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8 10억조회수
    작성일
    08.02.12 02:30
    No. 2

    아하하 눈을 마시는 새 ^^;; 정성이 담긴 글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6 isso
    작성일
    08.02.12 13:46
    No. 3

    레콘의 변이를 막을 적절한 방법을 설명하지 않았다니요? 작가는 레콘의 변이를 막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종교는 치천제가 레콘들에게 '통제할 수 있는 사회성'을 부여하려던 도구였죠. 레콘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길잡이, 대적자, 요술쟁이를 찾아냈고, 그 대응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주체적 결정을 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말해놓고 틀리면 쪽팔리는데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마르시앙
    작성일
    08.02.12 14:12
    No. 4

    정말 최곱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탐탐
    작성일
    08.02.12 14:48
    No. 5

    이영도님 전작과 연관 있는 후속작 들은 꼭 철학적으로 흐르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호불호가 참 갈립니다.

    좋아하시는 분에게는 최고 이지만 고깝게 생각하시는 분에게는
    왠 개똥 철학이냐 지겨워 죽겠네 반응 인거 같더군요.

    전 개인적으로 후자 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작품에 작가의 개인적인 사견이
    직접적으로 들어가는게 싫어지더라구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유후(有逅)
    작성일
    08.02.12 22:02
    No. 6

    아...사라말....<<<<<사라말의 최후를 보고 그만 충격받아 그 후의 이야기를 제대로 섭취하지 못한 유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 K.L
    작성일
    08.02.12 23:39
    No. 7

    탐탐님//
    작품에 작가의 사견이 들어가지 않으면
    그게 어떻게 문학이 됩니까 ;;;
    모든 소설은 작가의 세계관이 반영되어야 시작되는 걸텐데요.
    100개의 신간 중 7~80여개는 양판소라 불리는 현실에서
    작가의 사상이 세뇌수준으로 주입되어 있더라도
    이런 글이 나올 수 있다는 자체가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탐탐
    작성일
    08.02.13 00:20
    No. 8

    K.L님//
    어느정도 들어가는건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만
    피마새는 좀 그 양이 많죠.
    저도 중고딩 까지는 사견이 많이 들어가는걸
    좋아 했습니다만 지금은 딱 질색 입니다.

    작품에는 작가의 사상이 안들어 가면 이상하다
    생각하지만 막상 그게 눈에 보이면 싫더군요.
    지겨워요.
    그 작가 철학 볼려고 책을 보는것도 아니라서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 만득
    작성일
    08.02.13 00:29
    No. 9

    개인적으로 피마새는 하늘치가 무너지기 전과 무너진 후의 스토리필력이 너무 다른 것 같아서 눈마새만큼의 충격은 받지 않았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1 난방랑자
    작성일
    08.02.13 09:50
    No. 10

    솔직히 8권 분량은 지나칩니다. 양이 많다는 게 아니라, 사족이 많다는 뜻입니다. 스토리나 구성을 위해 희생된 8권이라면 모를까, 정말 사족에 지나지 않는 대화가 분량을 차지하는 부분이 좀 많지 않았나 싶습니다.(8권 모두 소장 중이긴 합니다만, 솔직히 출판되자마자 사서 읽었던 당시의 심정은 '돈 아깝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이야 그 분노가 많이 희석됐습니다만.)
    K.L님의 의견에 한마디 하자면, 사견이 '글 전체의 주제와 얼마나 어우러지느냐'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여쭙고 싶네요. 아무리 봐도 지키멜(독행왕이었던가요.)과 그녀의 남친의 대화라거나 하는 것들 중 여러 부분에서 사족이란 느낌을 받게 되네요.
    개인적으로 이영도 씨의 디스코그라피 중 최고로 치는 눈마새의 후속작이었기에 더욱 아쉬움이 들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곁가지 같은 대화나 이야기들이 전체적인 책의 주제와 스토리를 위해 이용되는 게 아니라, 스토리가 곁가지에 휩쓸리는 현상을 책 읽는 내내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2 나찰(羅刹)
    작성일
    08.02.14 23:31
    No. 11

    눈물을 마시는 새를 보고 정말 이영도님은 대단하다는 생각만 들었었던...
    피를 마시는 새도 봐야 하는데 이상하게 처음 읽다가 손이 안가서 안 읽고 있었는데 평을 보니 눈물을 마시는 새를 봤던 기대감으로 보면 안되겠군요...
    그러고보니 이영도님 요즘 신작이 안 나오는 듯한...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철중당
    작성일
    08.02.20 17:39
    No. 12

    대단한 걸작이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철학서같은 넘기 어려운 벽이었다는 느낌도 듭니다. 이영도님의 글은 대중적인 몇개의 소설과 비대중적인
    몇개의 소설이 다 성공을 거두었지만, 언젠가는 좀더 쉽게 읽을 수 있는
    글들도 생전에 몇개 남겨 주셨으면 합니다.
    예를 들면 괴테가 파우스트라는 철학적인 작품을 남기기도 햇지만 공전의 히트작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그의 작품품이라는 사실과 같은

    찬성: 0 | 반대: 0 삭제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감상란 게시판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16553 기타장르 암센터Terminal를 읽고 +3 Lv.22 무한오타 08.02.12 620 0
» 판타지 피를 마시는 새(아직 안보신 분은 보지 마... +12 Lv.1 나타 08.02.12 2,556 2
16551 무협 아아! 매아상이여! 생사박 +1 Lv.1 nacukami 08.02.11 1,791 1
16550 기타장르 치명적 치료Fatal Cure를 읽고 Lv.22 무한오타 08.02.11 759 0
16549 무협 투혼지로ㅡ걸작을 예감하다 +3 sogmy 08.02.11 2,830 1
16548 판타지 제논 프라이어 4권을 읽고(미리니름 약간??) +2 Lv.13 얼음꽃 08.02.11 1,348 1
16547 판타지 카디스 4권이야말로 절정이군요 +11 Lv.19 [탈퇴계정] 08.02.11 2,830 3
16546 판타지 저에겐 드래곤라자는 아닌 것 같군요. +42 Lv.1 RAZ 08.02.11 3,675 9
16545 무협 뭔가 낚인듯한 느낌. 노는칼 +8 Lv.1 nacukami 08.02.11 3,552 0
16544 무협 천애고검기 -양우생과 백상의 후예를 보는... +4 Lv.15 LongRoad 08.02.10 2,226 0
16543 판타지 뒷북이지만 흡혈왕 바하문트 +7 Lv.1 평천하 08.02.10 2,060 1
16542 무협 이길조 - 숭인문. 정규연재란의 또 하나의 ... +24 Lv.11 KoCaPan 08.02.10 2,636 0
16541 무협 [비뢰도 24권] - 비뢰도는 계속되겠지(누설... +20 Lv.74 새누 08.02.10 4,344 0
16540 기타장르 [마검사 15권] - 천우는 강하다(누설) +5 Lv.74 새누 08.02.10 2,772 1
16539 무협 십전제 3권을 읽고..(누설있음) +6 Lv.72 천극V 08.02.09 2,110 0
16538 무협 비뢰도 24 +9 Lv.60 코끼리손 08.02.09 2,078 3
16537 무협 진가도 1-3권을 읽고 +7 Lv.73 닥터콩 08.02.09 2,701 0
16536 판타지 카디스 1~4권을 읽으면서 +8 Lv.6 인형법사 08.02.09 2,571 5
16535 판타지 폭풍의 넬을 읽고 +1 Lv.1 연녹천 08.02.09 931 1
16534 기타장르 0시0분0초 +1 진아眞牙 08.02.09 1,097 3
16533 판타지 [With Wish] 현실, 그보다 사실적인 그 곳. +2 Lv.1 방랑하는자 08.02.08 1,064 0
16532 판타지 차원대전 +16 Lv.45 순백의사신 08.02.08 4,575 0
16531 무협 정규란, 숭인문 +14 Lv.14 박현(朴晛) 08.02.07 3,275 11
16530 무협 광풍가도 4권 Lv.38 박세팅 08.02.07 2,120 0
16529 로맨스 더 세틀러를 추천합니다. +11 Lv.68 로얄밀크티 08.02.06 3,856 1
16528 판타지 다이너마이트 감상... Lv.7 태봉이다 08.02.06 1,323 0
16527 무협 김운영님의 <칠대천마> 완결을 읽고. +11 Personacon 검우(劒友) 08.02.06 4,266 4
16526 판타지 †얼음나무숲†을 읽고 Lv.1 영황위도 08.02.06 1,053 1
16525 무협 월가검무 2권을 읽고. +3 Lv.86 GB11 08.02.05 1,948 0
16524 무협 무명 1권을 읽고. +1 Lv.86 GB11 08.02.05 1,424 0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genre @title
> @subjec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