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한상운
작품명 : 무림사계
출판사 : 로크미디어
솔직히 써놓고도 부끄럽군요.
제대로 작품의 매력을 표현할 수가 없네요.
그래도 3시간 정도 고민하면서 쓴 겁니당...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약간의 미리니름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원치않는 분은 백스페이스를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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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무림사계를 접한 것은 온라인을 통해서였다.
1화만 보려던 나는, 새벽 3시라는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앉은자리에서 연재분량 전부를 독파해버리고 말았다.
서점에서 2권만 있는 걸 보고 날아갈 듯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어차피 나에게 필요한 건 2권이었던 것이다.
(1권도 다음날 다시 빌렸지만)
이 소설은 달랐다. 결정적으로 달랐다. 뭔가가.
첫장을 넘기면서부터 나는 담진현에게 녹아들고 있었다.
아니, 이미 나는 담진현이었다. 「나」였다.
무림사계는 담진현에게 깊이 동화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담진현의 삶만이 흐르는 것은 아니다.
아주 짧은, 극도로 함축된 사이드스토리를 통해서 한 인물의 삶을
조명해 내는 구성은 이미 예술의 경지다.
담진현이 석방평을 죽이러 갈 때
'얼른 죽여라 얼른 죽여' 한 사람이 있을까?
석방평은 정말 나쁜놈이다. 사실 죽어 마땅하다.
그러나 그도 그렇게밖에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길 외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삶을 생각하기엔 삶 자체가 너무 치열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정을 붙이고 사는, 늙은 마누라가 있다.
늙은 할매가 할배를 위해 정성껏
데워놓은 음식에 손을 써서 석방평을 골로 보낼 때,
아무리 내가 담진현에게 빠져있다 한들
'이런 호로쉑' 한마디 정도 안뱉어낼 수는 없었다.
노부부의 수십년 정까지 이용해먹다니...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그러나... 그러나, 그게 강호의 삶인 것이다.
가능한 한 자기 손으로 처리하고 싶었고,
비록 질 경우를 대비해서 계책을 짜놓긴 했지만
그것까지 이용하긴 바라지 않았다고 고뇌하는 담진현에게
나는 또다시 동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노부부의 정을 위해 자기 목숨 갖고 도박까지 한 것이다.
어느 순간은 담진현에게 빠져든다.
어느 순간 다시 그에게서 멀어진다.
이것을 반복해가는 동안, 나는 깨닫게 되었다.
이런 갭이야말로, 비정강호의 모습이란 것을.
수많은 소설에서 말로만 떠들던 『강호의 삶』이라는 것을.
무림사계는 연극을 보여주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에게 주어진 배역따위 없다.
주인공을 기다리며 천년을 잠들어 있는 기연같은거 없다.
주인공에게 죽을 역할인 XX쌍살, XX오흉, XX칠절 등도 없다.
주인공을 돋보이게 해줄 머리에 똥만 든 명문의 자제도 없고,
주인공만을 위해 예비된 절세미모의 무림여협도 없다.
무림사계 안의 인물들은
그들만의 욕망과, 의지와, 꿈을 갖고 그저 살아갈 뿐이다.
그들이 존재하는 세계의 중심은 그들 자신이며,
담진현이 살아가는 세계의 중심은 담진현이다.
이들이 얽히고 설켜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흘러간다.
그리고 이런 생생한 강호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담진현과 동화한 채로,
거리 제로의 세계를 나는 맛볼 수 있었다.
수많은 무협을 보면서 느꼈던 '거리감'을,
무림사계에선 느낄 수 없었다.
이야기꾼으로써도 한상운님은 정말 탁월하다.
담진현과 하나가 된 내가 '이땐 이런 행동을 할 것 같은데' 싶으면
여지없이 그렇게 행동했다. 이건 내용의 예측과는 다른 이야기다.
정말로 담진현이 그만의 행동원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독자에게 느끼게 할 정도로 심화시켜 놓았다는 것이다.
약방의 감초격으로 히로인(?)이라고 하기엔 포스가 약하지만,
여성캐릭터도 등장시켜서 독자들의 갈증을 풀어준다.
아무리 커피를 좋아해도 가끔은 콜라도 마시고 해야 한다.
아무리 남자들 이야기가 멋져도,
가끔은 냄새나는 남자 이외의 존재도 필요하다.
그런면에서 앵앵이나, 이지하는 가뭄의 단비같은 존재였다.
살벌한 첫 이야기에서 그나마 아주 희미하긴 하지만
분홍빛 향기를 풍기게 만든건 다름아닌 앵앵이다.
두번째 이야기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든건
아름답고 주당이며 강한 이지하였다.
이정도 캐릭터는 나와주면 참 즐거울텐데
하는 시점에서 딱딱 등장해주더라.
그러면서도 의외의 일격을 곧잘 날린다.
이지하는 알고보니 XX녀였고,
더 알고보니 좀 쾌락주의자의 똘女기질도 보이고.-_-
처음 인상에서 점점 형성되어 가던 이미지를
제대로 뽀개 주는 한상운님이었다.
게다가 석방평 와이프님께서 일으킨 흑사방의 대반전을 보라.
누가 감히 주부파워의 돌풍을 예상했겠는가.
난 정말 놀랐고, 감탄했고, 폭소했다.
전투씬은 웅장한 맛은 없으나, 생사를 건 치열함이 있다.
초식명을 외치며 강기를 날리고 전설의 무예가 속출하진 않지만
피가 튀고 살이 찢어지고 뼈가 흩어지는 살벌함이 있다.
서로가 비장의 한수를 감춘 채 일격필살을 노리는 음험함이 있다.
무협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던 총기류도 나오고
서양무기인 레이피어 등도 등장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전혀 무리없이 묘사된다. 오히려 더 재미나다.
세상에는 수천, 수만의 무협소설이 있다.
읽다보면 머리 속에서 섞여서 카오스계를 형성할 지경이다.
그러나 그런 거대한 혼돈 속에서도 빛나는 작가가 있다.
자신있게「이곳만큼은 내 영역」이라고
선언할 수 있는 작가가 있다.
분명, 한상운님은 그런 작가다.
작가이름이 쓰여있지 않아도 몇 문장만 읽으면
아 이건 한상운님이구나, 하고 알아챌 수 있는... 그런 작가다.
그리고 이번 작품 「무림사계」는 그런 한상운님의 작품 중에서도
대표작이 될 가능성이 충분한, 놀라운 소설이다.
이런 명작을 읽게 해주신 한상운님께
감사의 뜻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http://blog.naver.com/serpent/110021028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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