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현민
작품명 : 자베스
출판사 : 로크
뒤늦게 자베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언제고 한번쯤 보고 싶었는데... 저희동네 책방에선 1,2권 들여놨다가 빼버려서 못 읽고 있었죠...;
결국 이번에 큰 맘 먹고 질러서 보게 되었습니다.
아래는 걍 순수한 제 감상..
------------
자베스를 사면서도 걱정이 앞섰습니다. 워낙 여러 말들을 들었었거든요.
오랜만에 보는 정통판타지다운 수작이라는 반면, 다른 쪽에선 용두사미라고 하더군요.
읽고난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만족스런 책이었지만, 양 측의 의견이 모두 틀리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의 1인칭에선 보기 드문 표현력과 안정성. 기발하면서도 독창적인 사건들의 배열. 마음을 쏙 빼놓는 은유와 상징이 섞인 설정들.
까놓고 말해 이 정도로 공을 들인 소설을 최근 별로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적어도 출간작에서는요]
특히 1인칭으로 비롯되는 특유의 표현력에선 종종 감탄이 나왔어요.
와, 진짜 이 작가 글 잘 쓰는구나.
단, 뒤로 가면 갈수록 왜 사람들이 용두사미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어요.
이 책은 주제적으로 굉장히 폭넓고 난해한 지점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크게 보자면 인간[생명]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좁게 봐도 인간과 사회를 이루는 다방면의 이야기들. [정치, 인식론, 존재론, 심리학까지]
요즘의 포멧으로 이걸 전부 다루기에 6권은 너무 짧아요.
기본적인 대리만족과 통쾌함을 보장해야 하는 요즘의 포멧에서 이 광범위한 주제를 6권 안에서 다루려면, 이영도를 뛰어넘는 필력이 필요하겠죠.
재미와 통괘함을 보장하는 동시에, 치밀하게 계산된 지면과 사건의 배분, 단 몇 문단의 말로써 주제를 드러내는 경제적이며 감각적인 표현까지. 쉽지 않은 일일 겁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현민 작가의 필력은 그 정돈 아닌 것 같아요.
덕분에 종종 텔링 자체의 쾌감과는 상관이 없는,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사건과 지문 등이 삽입되었고 저는 그럴 때마다 푹 빠졌던 작가의 세계에서 튕겨나오는 경험을 했어요.
인내심을 가졌거나, 이런 류의 독해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그런 경우를 참고, 다시 작가의 독창적인 세계로 빠져들 수 있겠지만, 다른 대다수의 독자들은 거기서 책을 덮거나 한참이나 시간을 허비하겠죠.
[막판 6권에선, 개인과 집단의 문제를 놓고 3~4페이지를 할애해서 화자 혼자 어떤 대화나 행동 지문도 없이 혼자 썰을 풀더군요. 스토리 자체에 있어선 굳이 없어도 되는 내용으로요.]
이런 부분들은 제가 볼땐 정말 필요가 없는 부분 같았어요. 작가는 이럴 때마다 다방면의 인문학적 썰을 푸는데, 아는 사람은 다른 인문 서적에서 수 차례 본 내용 소설에서 또 볼라니 지겹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니깐 지겨워질 것 같았어요.
끝맺으며 결론은, 자베스는 한계가 명확한 소설인 것 같아요.
하지만 그 한계를 상쇄시킬 만큼이나 새롭고 독창적이며 잘 짜여진 소설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최근 몇년 동안 저는 자베스를 읽을 때처럼 작가가 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사건과 지면을 넣었는지. 이 설정이 어떤 상징과 은유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마치 작가와 대화를 하는 듯한 독해를 해본 경험이 드물었거든요.
취향 차이를 떠나서 희소성이 있는 글이고, 한번 쯤 봐도 후회는 안 할 것 같은 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