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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v.1 용공폭도
작성
04.11.18 02:27
조회
1,070

무협 이라는 단어를 한자로 쓰면 武俠 이 됩니다. 굳셀 무 자에 호협할 협. 앞의 무 자가 나타내는 것이 무력,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해 '폭력' 이 될 것이고 뒤의 협 이라는 글자는 무협 주인공들의 성향을 나타내 주는 글자가 되겠지요.

'협' 또는 '협객' 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좌백님의 혈기린외전에서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만, 사마천의 사기 유협열전에서는 '원한과 은혜를 잊지 않고 의리를 소중히 하며 타인의 원한을 위해 목숨 바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라고 설명했습니다.(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는군요.) 이 협객이라는 집단은 기본적으로 사회 제도권 바깥에 있는 일종의 폭력배이고, 요즘말로 하면 양아치에 파락호, 망나니 일 것입니다. 다만 이들이 사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역사책에까지 그 이름을 남기게 하는 이들의 '긍지', 즉 '의협심' 이라는 것이 이들을 무가치한 불량배와 구별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다른 문화권이 아닌 중국이라는 문화권에서 유협이 등장한 이유를 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중국은 역사발전의 초기단계에서부터 사회적 질서로써의 법령과 정부체제가 완성되었으면서도 오랜 기간 패권확립을 위한 전란에 시달렸다.' 불안한 사회에서는 강력한 정부조직이 민중을 보호하기보다는 수탈하는 입장에 서기 쉽습니다. 그런만큼 중국의 민중들에게는 잘 정비된 중국의 정부조직과 법령이 오히려 무거운 족쇄로 느껴졌을 것 입니다. 그렇게 시달리는 민중들에게 희망이 된 것이 바로 '협객' 이라는 탈 제도권적 영웅이라고 보는 제 생각이 무리한 억측일까요?

그런 면에서 볼 때 유협에게는 아니키적인 측면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제가 정치학 쪽의 공부를 계속해서 나름의 연구를 시작할 수 있게 되면 꼭 정리하고 싶은 것이 무정부주의의 한 갈래로써 '유협주의' 를 정립하는 것 입니다. 대안적 사회 체제로써 기능할 수는 없지만 인간을 억누르는 사회질서에 대한 저항의 한 모습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요즘 한국의 무협소설은 무협 이라기보다는 무예소설이라고 불리는 쪽이 알맞은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예를들어 구파 일방이니, 오대세가니 하는 거대한 무력단체의 구성원인 주인공이 '협' 이라는 개념에 알맞다고 할 수 있을까요? 글의 앞머리에서부터 한 이야기이지만, 협객이란 평소에는 특별히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는 파락호 노릇을 하다가도, 자신의 신념에 따라 옳다고 생각되는 일이면 누구의 일이냐를 가리지 않고 목숨을 거는 사람이라고 하는 편이 어울린다고 봅니다. (물론, 환상소설의 범주에 속하는 무협에 정석이란 것을 찾는것이 어리석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그런 면에서 볼 때 장예모 감독의 영화 '영웅' 은 굉장히 실망한 영화였습니다. 영화 속에서 강하게 드러나는 오리엔탈리즘적인 문제는 일단 젖혀두고라도 진시황 이라는 거대한 사회제도적 실서에 순응하는 것이 협객다운 일 인지 의문입니다. 영화 속에서 조나라에서는 검(劍) 이라는 한 글자를 쓰는 방법이 열 아홉가지가 있다는 말에 시황제가 '너무 번거로우니 내가 천하를 통일하면 마땅히 한가지로 정리하겠다.' 라고 말합니다. 작가가 무슨 의도로 넣은 대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말 처럼 거대 독재권력의 속성을 잘 나타내주는 대사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독재에도 양면성은 있겠지만, 그 체제에 순응하는 것이 협객다운 일 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협객이라는 자유분방하고 비 합법적인 집단이 국가에 협력하는 것은 차라리 재앙에 가까운 일로, 국가 자신에게나 민중에게, 협객들에게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협객이란 반체제적인 입장에 서 있을 때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죠.

그런 협의 대의를 잘 표현한 만화를 하나 예로 들겠습니다. 제목에서 거론한 북두의 권 입니다.(제 나이보다 좀 많으신 분들께 이 만화 이야기를 하니, 얼굴에 추억의 빛이 샤악~ 깔리더군요. 요즘 애장판으로 다시 나왔는데)

이 작품의 주인공 켄시로는 전형적인 협객 이라고 할 만 합니다. 세상을 떠 돌며 자기 개인이 행사할 수 있는 폭력으로 자기 신념에 배치되는 악(주로 집단화된 폭력을 통해 민중을 착취하는 세력) 과 싸웁니다. 특별한 사상이나 이념에 따라 행동하는 것도 아니고 사회의 대안이 될 만한 새 체제를 제시하는 것도 아닌,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따라 눈 앞에 있는 불의와 싸우는 것 입니다. 만화의 첫부분에서 악의 무리와 싸우던 켄시로씨는 에필로그에서 까지 악의 무리와 싸웁니다. 즉, 악당들을 수없이 때려잡았어도 세상에는 여전히 악당들이 많더라.. 라는 거겠죠. 그런 부조리가 없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은 제도권 안에 있는 사람들, 진시황으로 대표되는 위정자들의 몫 이겠죠. 그에 상대되는 입장으로써 협객은 법질서라는 가치를 넘어 양심의 소리에 따라 힘 없는 민중을 보호하는 것 아닐까요. 같은 작가의 현대물 '공권력 남용 수사관 MEA' 를 보면 그런 특징이 좀 더 눈에 띕니다. 헌법조차 초월해서 부패범죄에 대한 수사권을 부여받은 주인공 이라는 설정을 보면 협객의 초 법규적 성격이 잘 드러난다고 봅니다.(후속편으로 똑같이 켄시로 라는 주인공이 나오는 신작 '창천의 권' 에는 다소 실망했습니다. 여전히 폭력은 마구 휘두르는데 전작처럼 곧은 양심은 보이지 않더군요.)

처음에 말 했듯, 저는 무협을 일종의 아나키즘(무정부주의 라기 보다는 절대자유주의 라고 하는쪽이 오해의 소지가 적겠군요)으로 간주합니다. 흔히 무정부상태 라고 말하는 강제력 없는 혼란 속에서는 오히려 협객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강한 질서가 민중을 억압할 때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질서 바깥에서 등장하는 것이 유협, 협객이 아닐까요.

(쓰고보니 게시판 목적과 좀 거리가 있는 글이군요..)


Comment ' 4

  • 작성자
    Lv.1 용공폭도
    작성일
    04.11.18 02:31
    No. 1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설봉님의 '대형 설서린' 에서 독사일당 쪽이 협객이라는 범주에 적합하다고 봅니다. 그 파락호를 무시하는 무인들은 사실 전통적 협객관과는 좀 거리가 있는 듯.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용군
    작성일
    04.11.18 09:55
    No. 2

    한번쯤 생각을 하게 해주는 글이네요. 저도 어느날부터인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武俠의 '俠'은 어디갔는가? '武' 만 남았고 '俠'은 사라지지 않았는가?
    저역시 국내 무협에서 '협'의 의미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은 혈기린 외전이 아닌가 싶습니다. 초반에 주인공이 진가장과 천?채(정확한 이름이 기억이 안나네요)에 대해 복수를 할때 도와주던 그 사람들(역시 ㅡㅜ 의형제들이죠...정확하게 기억이 안납니다.)이 정녕 진정한 '협객'의 모습이 아니었을런지요.
    요즘 나오는 작품들중엔 너무나도 제멋대로인(심지어 망종에 가까운)주인공이 많은 것 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용군
    작성일
    04.11.18 10:00
    No. 3

    아, 그리고 '북두의권'...
    북두의권 특징이 '정말 더럽고 밥맛없게 생긴 괴물같은 이름도 없이 잠시 나왔다가 두들겨 맞고 죽어버리는' 조연급 악당이 아닌, '강하고 어느정도 특색있게, 잘 생긴 주연급 악당' 들은 그들이 악당이 될 수 밖에 없는 슬픈 과거가 꼭 있지요. 그리고 마지막에 후회하며 눈물을 흘리며 사라지는...
    참 남자아이들의 가슴을 옴팡지게 파고드는 작품이었습니다.
    (OVA로 보고 실망...'와따따따따따~' ㅡㅡ;)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둔저
    작성일
    04.11.18 15:09
    No. 4

    아....특히...
    북두류권인가? 그 권법의 계승자이자 권왕 라오우의 형이 자신의 상처투성이의 몸을 보여주면서 자신은 상처 하나마다 정을 잊었다면서 하자 켄시로가 자신의 상처투성이의 몸을 보여주면서 자신은 상처 하나마다 마음을 묻었다고...
    그리고 적이 공격하자 그것을 그냥 맞자 적이 왜 그러냐고 물으니....
    이 상처가 그의 마음을 담아준다고...
    크으.ㅠ.ㅠ 정말 대감동.

    찬성: 0 | 반대: 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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