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스릴러의 거장 로빈 쿡, 테크노 스릴러(SF +Military)의 거장 톰 클랜시, SF거장 마이클 크라이튼, 법정 스릴러의 대가 존 그리샴. 중국 역사소설의 황제 이월하.
비온 후 창문 밖에서 서성이는 느림보 달팽이들도, 어쩌면 들어 알지모를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들입니다.
그들의 소설은 눈으로 마셔도 배로 저장됩니다. 얻는 충만감은, 바로 그들이 파고들은 장르에 대한 깊은 지식에서 비롯됩니다. 이외에 여러 가지 차별점이 있기에 성공한 것이지만 만약 소설을 틔워낸 토양(土壤)이 황폐했다면, 독자는 읽은 후 머리에 뭔가 차오르는 듯한 만족감은 얻어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의선은 바로 그와 같은 면에서 소양을 갖췄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친 충실한 고증덕분에 이월하의 제왕시리즈를 읽으면서 느꼈던 옛 중국의 흙내음을 의선에서도 얼핏 맡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단순히 “아! 사람 사는 곳이구나.”가 아닌, 옛 중국 사람들이 살던 바로 그 세계. 마치 조형 후 딱딱하게 굳은 점토물이 떠오릅니다. 작가 이현신의 손자국이 묻은 점토물의 빈속에는 주인공 양연소의 숨소리가 들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심장이 7년이란 세월을 딛고 거칠게 맥박하고 있었습니다.
강소성 금릉현 남경부의 도시경관이 펼쳐지면 이제 이야기는 시작입니다. 그곳에 대대손손 명의를 배출한 유명한 의가가 있습니다. 이 장씨의가의 대문 앞에 버려진 양연소는 어릴 적부터 하인처럼 부려졌지만 그를 눈여겨본 한 서당선생과 불타는 학구열 덕분에 여차저차 젊은 의원자리에 올라 있습니다.
장면이 바뀌어 숭산 소림사. 천하제일인이라 알려진 소림사의 한 유명한 고승이 원인불명으로 원적함과 함께 그 사인(死因)을 알아내기 위해 장씨의가에 의원을 청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이를 들은 장씨의가에선 무림의 일에 얽히면 그리 좋은 꼴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양연소를 희생양 삼아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이제 소림사로 떠나는 양연소와 함께 그의 구도기가 펼쳐집니다.
숨 쉴 틈 없이 읽어간 소설 앞에서 저는 당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분히 제 취향에 이르르면, 위에서 모험이 시작된다고 하지 않고 구도기가 펼쳐진다고 말한 연유 자체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더 나아가 소설 의선에서 말하는 깨달음이 만약 의원으로서의 고뇌가 담겨있는 도가적 깨달음이라는 시선에서 보면, 흔히 고행(苦行)에서 그 완성도가 평가되기 마련인 구도(求道)가 약합니다. 꼭 그런 시선이 아니더라도 양연소를 너무 싸고도는 스토리라 몇 안 되는 위기에서도 두려움과 분노 그리고 고통이 뭔지 제대로 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주인공이 상쾌히 활보할 수 있었다는 말이니 더 많은 독자들의 입맛에 맞았을 수도 있겠습니다.
아직 양연소가 행하는 선(善)은 대다수 사람들이 상황과 능력만 된다면 한번 쯤 행할 수 있는 정도의 인간적 따뜻함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은성씨의 소설 동의보감에서 허준이 우리의 가슴을 울렸던 까닭은, 자신의 살을 가를 정도의 희생에서 비롯된 선행이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건에서 무언가 큰 것을 포기해야 하는 힘든 선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양연소가 겪는 사건들은 아직 여린 맛이 있습니다.
양연소의 무학성취(武學成就)또한 잘 짚어보면 그 내공의 연원이 도화도주의 건강도인술에 있을 수밖에 없는 만큼, 의원이란 신분이 특수성을 지니는 것은 의술을 향한 학구적 열정과 범어에 대한 지식, 그로인한 인연입니다. 다시 말해 그 무학은 윤극사 전기의 십독십이약과 달리 그 연원을 무림에 두고 있습니다.
이에 소설 의선(醫仙)이 과연 어떠한 종류의 깨달음을 보여주려 하는 가는 아직 명확해지지 않습니다. 단순히 무학적 깨달음은 아닐 것이라 판단되기에 아직은 수많은 선택의 길 사이에서 혼란스럽습니다. 다만 3,4권의 무게가 대단히 커질 것이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습니다.
양연소. 그가 만들어 낼 레시피엔 과연 의술과 내공이 어떤 비율로 조합되어 있을 지 기대 반 설렘 반입니다. 그리고 3권에서는 작가분의 외침을 꼭 듣고 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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