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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작성자
Lv.1 노한(魯瀚)
작성
04.04.10 03:27
조회
930

아마도 중하교 1학년 때 인 듯싶다.

무협지를 처음 만화방에서 접한 시점은...

그 때 긴 밤을 지새우며 보았던 책들이 비연,비호,군협지... 헤아릴 수 없는

이름들이 떠오른다.

한 10년을 그렇게 파묻혀 살다가 싫증이 날 즈음 팔만사천검법이란는 긴 이름의 무협지를 접하게 되면서 기존의 무협과는 조금 느낌이 다른 이른 바

신무협을 접하였다. 새로운 기분으로 또 밤을 지새우게 되었다.그 많은 이름중에

야설록, 금강, 사마달, 서원평, 좌백, 그리고 용대운 등등의 기라성 같은 이름이 떠올랐다.

정말로 내가 좋아 했던 스타일은 아마도 야설록이라는 작가의 글인 듯 싶다,

주인공이 내 뿜는 허무함, 그리로 문체에서 드러나는 삶의 건조함. 내가 그의 이름으로 읽은 첫 작품은 아마도 '녹수장산곡'이라는 제목의 작품인 듯하다.

그 이후 그를 탐독하다가 금강의 '천마경혼'을 만났다. 그 신선함이란...

그러나 금강을 진정으로 좋아한 개기는 '발해의 혼'이라는 작품이었다.

그를 통해서 나는 처음으로 무협이라는 가상세계에서 존재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되었다.

많은 시간이 흘러, 서점에 나온 좌백의 '혈기린외전'이라는 작품을 사서 읽었다.

어느 작가가 서문에서 말한 것처럼, 무협적인 서사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래도 허전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인터넷을 뒤지다가 '구룡쟁패'라는 그의 새로운 소설을 보았다. 나는

비로서 좌백의 진가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그 동안 내가 느꼈던 허전함의 실체를

그때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나는 한족(漢族)이 아니다.

나는 산동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사천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대륙의 구석진 조그만 반도에서 태어난 한 변방인이다.

그 때서야 왜 이문열이 '변경'이라는 길고도 현학적인 글을 쓰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초한지와 삼국지, 수호지와 서유기에 묻혀서 잊어버린 삼국유사와 오래된 고조선의

이야기를 잊어버린 자신을 그제서야 되새겨 볼 수 있었다.

나는 요동 벌판을 달리던 부여, 고구려 싸울아비의 후손이요, 백제와 신라의 씨앗을 이어 받은 자다.

나는 양몽환이 아니며, 초류향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개소문과 계백, 김유신이라는 이름에 더 어색해하는

스스로의 이질성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웬지 모르게 나는 무협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 이야기들이 더 이상 '나'의 이야기가 아니었으므로.

아마도 내 전생은 唐이나 宋의 누항(漏港)에서 휘저어 다니던 협객이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더 오랜 楚국의 병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나는 그 옛날, 華族이 南蠻北賊 西戎東夷라 일컫는 오랑캐의 일족임을 모른체 중원의 영웅들이 서천의 뇌음사의 마불을 물리치는 모습을 보며 환호하는 무협의 독자였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꽤 오래된 시졀, 사마달과 검궁인의 '月落劍極天未明'이라는 소설을 보며, 정말 웅장하고 장엄한 영웅의 모습을 보았다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2004년 새로이 출간된 그 소설을 읽으며, 나는 울었다. 중원의 영웅들이 간악하고 교활한 북방의 오랑캐들을 물리치는 모습.

마지막에 주인공이 오랑캐인 여진족이 명나라를 뒤엎고

이민족의 왕조를 세우자 반청복명을 위한 지하세력의 주축이 되었다는

끝맺음이 끊임없이 나를 울렸다.

(지금은 그렇게 눈물흘린 나 자신이 부끄러워 눈물흘린다.)

한 참후에 '반지의 제왕'에 눈을 돌려 고대의 역사에 침잠해버리는

나 자신을 비웃었다. 아라곤과 프로도의 그 여행은 사실은 무협에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의 일부에 불과했으므로...

구무협과 신무협의 구분에 대한 많은 논란을 보면서도 나는 그저 그려러니 했다.

...

나는 '궁귀검신'을 보고 정말 기뻤다. '발해의 혼'을 본 그 이상 기뻤다.

이제서야 무협에도 나와 동질성을 느낄 수 있는 배달민족의 한 인물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소설적 완성도나 재미에 있어서 '궁귀검신'은 최고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나는 즐거웠다. 이제서야 '나'자신을 대입시킬 수 있는 무협이

등장했으므로...

'서기명지담'이라는 허접한 판타지소설을 보면서도 나는 모든 걸 용서했다.

삼풍백화점 붕괴라는 지극히 현실적이고(이 때 현실적이라는 말은 20세기와 21세기를 걸쳐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나라에 살고 있는 나 자신이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물리적인 현실태로서 발현되는 시간과 공간적인 총합체로서의 현상을 말한다.) 공감할 수 있는 이름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여러가지 기행과 어설픈 구성은 기대에 어긋난 만큼 나를 슬프게 했다.

자유연재란의 '발해검귀'나 '화랑도'라는 습작들을 보면서도 이를 악물고 용서했다.

'강호비가행'이라는 훌륭한 작품을 읽다가, 내가 왜 그 장구한 중화인들이 짜낸

무림의 역사에 동참해야 하는지 질문을 했다.

구조적으로 잘 짜여진 장이모우의 '영웅'과 김희선의 어설픈 연기가 춤추는 '비천무' 중 나는 어느 것에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한국작가가 중국대륙을 무대로, 천축의 마불과 청해의 빙굴에서 도전하는 도적을

물리치고 무림의 기상을 세우는 영웅의 이야기를 주절거리는 걸 '신무협'이라고

할 것인가?

'열하일기'와 '초우'를 읽으면서, 그토록 고무림의 독자들이 열광하는 '삼류무사'를

덮기로 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조선의 조그만 구석에서 태어난 반도인이므로, 무당을 제압하고, 소림과 마교를 억누르는 중화족의 대영웅은 더 이상 되고 싶지 않았다.

'검신'과 '뇌신 추소옥'이라는 불완전한 작품을 보면서, 내 어릴 적 상상세계를 사로잡았던 서극 감독의 '촉산'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하는 스스로를 느끼며 울었다.

이경숙님의 道德經 해설에 중원의 옛주인이 동이족이라고 사족처럼

붙여놓은 것도 있지만, 그렇다고 '노자검'이라는 작품에 내 모든 감정을

이입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방황하는 날들 가운데, 어느 날 서점에서 책을 하나 집어 들었다.

김훈의 '칼의 노래'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1,2 편을 다 읽었다. 점심 때

들어와서 책을 덮고 나니 5시가 다 되었다, 황망함에 후다닥 자리를 떠났다가

그 다음날 다시 와서 책을 샀다.

무장 이순신의 삶을 그가 작성한 난중일기를 토대로 1인칭 시점에서 풀어낸

소설이었다. 어느새 나는 이순신의 마음 한 가운데서 작가가 펼치는 감정의

결을 따라 임진왜란의 한가운데를 걸어가고 있었다.

'一揮蕩掃 血染山河'

그가 깊은 밤 바닷가에서 적정을 살피며 받쳐 기대었을 그 큰 칼에 새긴

글귀이다.

나는 비로소 진정한 무협에 눈을 떴다.

그 다음에 찾은 것이 '현의 노래'이다.

나는 잊었던 나 자신의 환타지와 고대의 정적을 느끼며 울었다.

우륵이 그랬던 것처럼

진정한 신무협이 무엇일까?

왜 무협은 깊이 있는 소설이 되지 못하고, 재미로만 읽혀야 하는걸까?

역사에 대한 인식

주체성에 대한 확신

그리고 문체와 새로운 敍辭의 힘

그것만이 桓人의 후예를 신무협의 기치아래로 끌어들일 수 있다.

'군림천하'가   '대망'이나 '미야모도무사시'와 같은 중후한

대하 역사 소설이 되지 않고 '무협'의 범주에만 머무를 이유가 있는가?

횽벽초의 임꺽정이나 황석영의 장길산외에

남녂 땅 4천만이 역사의 한 지평에서 한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질 수 있는

영웅이 나오길 기대하는 것이 정말 과욕인가?

고무림의 벗들의 나의 주절거림을 이해해 주시길.

서기 2004년 어느 봄 날에 소주 한 잔 걸치고 돌아와

고무림의 많은 작품을 읽었다

못 내 지쳐 울다 한 줄 쓰다.


Comment ' 2

  • 작성자
    Lv.17 Monophob..
    작성일
    04.04.10 05:25
    No. 1

    아... 느끼는 바가 정말 많은 글이었습니다.

    제가 느끼고 있던 부분과 비슷한 생각을 하신것 같습니다.

    우리 이야기에 대한 갈증.

    언젠가는 이루어 질것으로 믿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은하장주
    작성일
    04.04.10 13:52
    No. 2

    나도 좀 생각했던 부분이네요
    어찌 된게 한국인이 중국을 배경으로 하니......
    그렇지만 충고하는데 그러다가 우울증걸립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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