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오늘 다시 마지막권을 만나게 되니 감회가 새로워 한마디 하게 됩니다.
준욱님의 글은... 뭐랄까 약간의 인내를 요구합니다.
건곤불이기나 괴선 하다못해 초단편 촌검무인에까지도 주인공은 느긋하게 등장합니다.
일장.. 이장.. 삼장.. 챕터가 바뀌면서 등장하는 인물도 바뀌고 이 사람이 주인공인가..하면 다음장에 가면 아닌 것 같고
또 다음장은 다른 사람이 나옵니다. 그래서 주인공 찾기를 포기할 무렵 쯤 되면 느긋하게 뒷짐지고 걸어나오는 것이 주인공입니다.
티비와 게임.. 그리고 인터넷으로 이어지는 문명 덕인지 요즘의 아이들은 빠르고 가볍고 경쾌한 것을 좋아한답니다.
그리고 십대의 한 가운데에서 물결처럼 번지기 시작한 빠르고 가벼운 유행은 어느새 우리 시대의 주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때 준욱님의 글을 읽자면 유행의 반대편을 보는 듯 하기도하고 때론 한없이 여유로운 옛시절의 밉지않은
풍류남아 한량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괴선은... 무협이 이럴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글입니다.
여전히 주인공은 일권 끄트머리에나 등장하고 절대 선도 절대 악도 보이지않는 글은 일면 답답함도 없지 않지만
무협을 읽으며 이렇게 한 편의 로맨스를 보듯 마음 떨려 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전작 촌검무인에서는 절절한 부정에
크리넥스 여러장을 버렸는데 이번 괴선에선 애틋한 연인의 사랑에 그만 펑펑 울었습니다.
유쾌 통쾌 상쾌의 대명사인 무혐. 이제까지 그 무협의 전형성에 반기를 든 작품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해피와 새드의 절묘한 경계선에서 줄타기하며 끝을 맺는 작가의 솜씨에는 그만 반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술법과 신선, 둔갑, 요괴.. 일반 무협에서 보기 힘든 소제 덕에 출간되고도 한동안 보지 않았다지요. 작가가 임준욱임에도 말입니다.
감히 고개 들었던 반기는 괴선 일권을 넘기지 못하고 꼬리를 감추고 아마도 다시는 싹도 틔우지 못할 것입니다.
작은 사람들에게까지 따듯함을 잃지않고 악인에게까지 자비를 베풀고 읽고나면 자신까지 마음이 따듯해질
그런 무협을 찾으신다면 괴선을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빠르고 경쾌함을 좋아하고 나쁜 놈은 나쁜 놈이고 호쾌하게
복수해야 시원하시다는 분도 괴선을 보시면 좋을겁니다. 저는 중국음식을 싫어하지만 잘 만들어진 자장은 가끔 찾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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