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적유성탄은 인터넷 굿데이 소설 사이트에 연재하다가 중단된 소설로, 처음부터 작가가 그만큼만 연재하겠다고 약속하고 쓴 소설이다. 지금 2권까지 출간된걸로 안다. 천마군림은 고무림에 연재하다가 중단된 후로 현재 5권인가 6권인가 출간되었으며, 마교 십팔가문중에서 요동명왕종을 지나서 사자군림가와 흑사광풍가가 이야기의 중심그룹으로 등장하는데까지 나왔다.
좌백작가는 비적유성탄을 쓰고 싶은 글이라고 했고, 천마군림은 읽고 싶은 글이라고 하였다. 내 보기에 좌백은 꿈이 있는 작가이다. 그는 그 꿈을 활자로 현실화 시킬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천마군림은 개인사적인 스토리를 넘어서 대하 전쟁 역사 로망 환타지 소설이다.
반면에 비적유성탄은 좀 아기자기한 소설이다. 3인칭이지만 주로 왕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으며,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현재 주인공의 상황과 배경은 매우 소박하다.
이 두 소설은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현재 좌백작가가 지향하는 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좌백의 소설은 매 편이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독자들마다 취향은 다르겠지만, 나는 금전표를 제일 좋아한다. 또한 가장 감명깊었던 것은 혈기린 외전이며, 대도오에서 박력을 느꼈다. 야광충은 평범했고, 생사박은 특이했고, 금강불괴는 재밌었고, 또... 책이 그것 뿐인가... 진산마님과 공저한 책은 제외하고 연재중단한 구룡쟁패는 내버려두자.
독자와 달리 작가는 자기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연전에 이재일님은 묘왕동주가 부끄러운데가 많다고 얘기하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나도 조금 동의한다. 묘왕동주는 재밌긴 한데 어딘가 어설프고 문장이 매끄럽지 못해서, 조금 그랬다. 괜히 문장 운운하면 꼭 문학적 비판같지만 느낌이 그랬다는 것이다. 솔직히술술 읽히지가 않았다.
하지만 쟁선계는 얼마나 꼼꼼하고 세밀하게 묘사된 소설인가. 이처럼 같은 작가라고 해도 책마다 느낌이 다를 수가 있다. 물론 전편에 흐르는 작가만의 고유한 스타일이 있고, 이 점이 마니아를 만드는 비결일 것이다.
좌백의 장점은 술술술을 넘어서 꿀꿀꿀 꿀물 넘어가듯 읽히는 신묘한 글솜씨에 있다. 어떤 소재든 재미나게 표현하는데는 그만한 장사가 없다. 어떤 때는 아주 디테일한 구석을 아주 섬세하게 묘사하며, 행간에 흐르는 유머와 풍자는 그저 그만이다. 금전표의 진장자와 오행궁주를 생각해 보면...
그리고 좌백은 아주 개성이 강하고 자기 철학이 뚜렷한 작가이다. 소설에서도 이런 점이 여실히 반영된다. 금전표의 강태풍이나 혈기린외전의 황보장군은 매우 정의로운 인물로써 여짓껏 무협소설에서 이런 식으로 표현된 주변인물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천마군림에서도 곳곳에 이런 의식이 숨어있다. 주인공보다 더 매력적인 태양종의 종사. 그를 따르는 수하들. 전쟁의 명분과 전쟁을 통한 낭만과 의리, 로망, 역사성, 무려 18가문이나 등장시키는 바람에 자연히 설명해야할 역사적 배경은 이야기를 너무 크게 넓혀놓은 감이 있지만, 무협성 판타지를 읽는 독자라면 한번쯤 꿈꿔봤을 완벽한 세계가 아닌가.
이 책은 부족할 것이 없다. 기연을 얻어 출세하는 젊고 매력적인 주인공이 있고, 냉정하지만 매력적인 후견인이 있고, 더 매력적인 수많은 친구,여인,부하들이 등장하고 이 그룹들이 엮어가는 낭만과 처절한 이야기와 거대한 전쟁의 역사, 액션이 넘치는 장면, 개인의 무공뿐 아니라 용기와 투지와 전략이 필요한 전장, 여기다 환술,귀신,술법이 등장하고, 홍길동을 연상하는 조선인도 나타나고...앞으로는 여인천하와 무당천하까지 등장할 듯하고, 상대할 적도 실로 만만찮으니 정말 과장이 아니라 액션 어드벤처 호러틱 로망 스펙터클하다.
물론 이 책의 절대단점은 이야기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만약 한 열두권이나 열다섯권쯤 해서 깔끔하게 마무리된 완결판으로 나왔다면 무협소설계에 일대 선풍을 일으켰을지 모른다. 하지만 역부족으로 보인다. 지금 널려놓은 이야기를 마무리하기는커녕 한 권 한권 출간하는 것 조차 언제가 될지 미지수이니...
비적 유성탄은 스케일이 큰 작품은 아니지만, 좌백의 장기가 가장 잘 살아있는 이야기이다. 좌백은 표사라든가 하급무사라든가 이런 소박한 직종의 인간들을 아주 잘 표현한다. 이번에도 포졸로 분한 주인공을 그럴듯하게 잘 묘사해내었다. 이야기는 곳곳에 풍자와 유머를 깔아놓으면서 ‘절대 지지 않는’ 매력적인 남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왕필같은 남자 정말 매력적이지 않는가. 은근히 여자들이 꼬일 태세를 갖추고 있고(벌써 두명이 옷을 벗었고 세명이 관심을 갖고 있다.)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주인공은 항상 심드렁하다. 즉 쿨(cool)하다. 이러니 더 매력적이다. 이것은 아주 소박하면서 은근히 재미난 환타지이다. 돌멩이를 툭 던져서 고수를 단번에 죽일정도의 사실상 ‘천하제일고수’가 그날그날의 끼니를 걱정할 정도의 궁박한 삶을 ‘솔선수범’해서 살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대리만족이 어디 있을까.
요약하자면 비적유성탄은 백점만점에 백이십점. 왜냐하면 무조건 재밌으니까. 총과 서양인의 등장이 눈에 거슬리는 분은 이해바람. 사라전 종횡기도 그렇고 요즘 무협소설이 점점 산업화 되어가는 과정 같으니 대충 명나라 시대로 설정하고 쓰던 풍조가 점점 근세로 접어드는 경향이 생기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 무리...일까.
천마군림은 미완성이므로 점수자체가 없다. 다만 초기에 상당히 식상할 것 같았던 내용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짜임새가 있어지고 이야기가 풍부해지고 중량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덧붙일 것은 좌백작가는 손으로 쓰던 발가락으로 쓰던 스토리 묘사는 천재적이라는 것이다. 요동에서의 전투장면을 보면 기가 막힐 정도이다.
그러니 아무리 비판하고 싶어도 한계가 있다. 어쨌든 재미라는 면에서는 무림 십대고수중에서도 으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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