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재밌는 판타스틱 전쟁소설이 있을 수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사라전 종횡기는 기존의 무협과는 좀 다르지만, 출간된 무협소설의 책 표지에 흔히 쓰이는 ‘ 오리엔탈 판타지’ 의 의미에 아주 충실한 책이다. 좀 미안한 말이지만 작가의 전작인 ‘도둑 전설’은 읽다말고 포기했는데, 같은 작가의 작품인데도 어쩌면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 이해가 안될 지경이었다.
사라전 종횡기는 5권 6권에서 본격적인 전략전술 전쟁 스토리가 이어진다. 좀 허황된 듯 싶지만, 전쟁의 대의명분과 삶의 철학을 바탕에 깔고, 이야기 구석구석에 전쟁에 임하는 자들의 명분을 그럴듯하게 묘사해주기 때문에 진지함도 묻어나고, 가공의 내용이지만 현실감이 배어 있다.
서양 판타지 소설중에 전쟁을 소재로 한 것이 많고, 유명작가가 쓴 책도 다수 있다. 반지의 제왕도 그렇다. 전쟁이란 인간의 원초적 살육본능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인간이 가장 피해야할 그 무엇이지만 역사이래로 전쟁이 없었던 시절이 없었고, 우리나라도 항상 전쟁의 위협속에서 살아간다는 점에서 피할 수 없는 운명같은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작가는 기존의 무협에서 무력과 협의에 대한 것을 아예 통째로 들어내어 본격적으로 역사이야기를 하려는 듯 하다. 이 책은 삼국지나 초한지에 못지않은 대하역사전쟁 드라마이다. 큰 줄기도 그럴듯하지만 자잘한 에피소드와 전투씬도 몹시 흥미롭다. 특히 오십조에 대한 묘사는 굉장히 환상적이라서 주인공과 그들의 격돌장면은 저절로 흥분이 일정도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토록 조마조마하고 박력있게 읽은 적도 드물었다.
굳이 장르적 구분을 말하자면 이 책은 대체역사소설 이다. 작가가 너무 나가버린 것인가 걱정이 될정도로 역사적 시대상에 대한 패러디가 심하다. 그런데도 아주 적절하게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다.
이제 피튀기는 전략의 싸움이 점점 절정기로 치닫고, 소열을 비롯한 독수리 오형제의 활약이 빛을 뿜어면서 전쟁은 지략가의 대결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는다. 곽필과 손저의 대립. 이 얼마나 흥미진진한가. 놀라운 것은 이 대전략의 설계가 오직 작가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혹시 작가야말로 바둑고수가 아닐까. 아니면 군사전략가라도.
독자들중에는 책내용중의 전술무기에 대해 반감을 가질 사람도 있겠지만, 또 달리 생각해보면 중세시대에 그정도 기술발전은 가능할듯도 싶다. 좀 관대하게 봐서 17세기쯤 서구라파의 전쟁씬을 차용했다고 봐도 큰 무리가 없겠다. 총포와 칼을 조합하여 싸우던 역사도 한 몇백년쯤 되니까 스토리상의 큰 무리가 없는 이상 너그러이 봐줘도 될 듯하다.
이 책의 결말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없지만, 깔끔한 大尾만 지을 수 있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봐온 동서양 판타지 전쟁소설중에서 으뜸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어떤 면에서는 삼국지보다 더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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