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기도, 컴퓨터도 있기 전에 탄생한 RPG(롤 플레잉 게임)의 원조입니다.
자기가 맡은 캐릭터의 상세한 사항과 각종 능력치가 적힌 캐릭터 시트라는 종이와, 각종 상황에서의 행동에 대한 결과를 처리하기 위한 주사위, 그리고 그러한 '캐릭터', '상황', '결과처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규칙서(Rule book)으로 진행되는 게임입니다.
게임 제작사나 컴퓨터가 제공해주는 시나리오만으로 진행되는 컴퓨터 게임(CRPG)와는 달리, 세계와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마스터'와 캐릭터를 가지고 모험을 해 나가는 '플레이어'로 진행됩니다.
한때 한국의 판타지 붐에 일조했던 '
로도스도 전기'가 일본에서 '
소드 월드'라는 자체적인 룰의 리플레이(TRPG를 진행한 기록)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 이지요. 여기에는 다양한 뒷 이야기가 있기도 합니다만, 주제가 아니니 넘어가죠.
<일본에서 중세 판타지 붐을 일으킨 로도스도 전기. 기반이 된 '소드 월드'는 일본에 TRPG를 보급한 물건이기도 합니다.>
TRPG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조어로, 영미권에서는 그냥 'RPG'라고 부르거나 PnP(Pen and Paper)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화려한 그래픽과 사운드는 없지만, 다양한 특징과 배경을 가진 매력적인 여러 룰 시스템들과, 스스로 만들어가는 자신만의 모험과 이야기를 즐길 수 있어,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게임입니다.
요즘에는 인터넷의 발달로 각종 채팅, 주사위 프로그램을 사용해 진행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은
ORPG라고 부르죠.
<사진 : 미국 드라마 '커뮤니티' 시즌 2 에피소드 14. TRPG인 AD&D를 플레이 하는 내용이다.>
1. 최근의 TRPG 사정
90년대에 D&D, 소드월드 등의 룰이 한국에 수입되면서 폭발적으로 TRPG가 보급되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허나 다양한 내부적 사유와 IMF가 겹치면서 이러한 공식적인 지원은 끊기게 되었죠. 유일하게 남은 것은 다양한 세계, 장르를 플레이 할 수 있는
GURPS 시스템을 정발한 '
도서출판 초여명' 뿐이었습니다.
이후에도 초여명은 꾸준히 GURPS 시스템을 수입하여 왔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작 세계관을 다룬 책을 내기도 했죠.
<도서출판 초여명의 다양한 겁스 라인업. 위의 책들은 모두 국문 2판(영어판 4th)를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TRPG는 아는 사람만 아닌, 소수의 매니아들의 취미이고, 이제 와서 딱히 시장성을 가지기도 힘들기에 한국의 TRPG 시장이 더 커지는건 무리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습니다.
몇번인가 TRPG가
다른 매체에 소개될때마다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나긴 했지만, 그러한 사람들이 스스로 배워서 시작하기에는 TRPG의 문턱이 너무 높았습니다.
무엇보다 초기에 수입되었던 D&D나 소드월드가 절판된 현재, TRPG를 플레이 하는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룰북'이 한국에서는 제대로 접하기 어려운 물건이 되어 버린 상태였고, GURPS 같은 룰북을 구매한다고 해도 같이 플레이 할 사람을 찾는 것은 더 어려웠습니다.
<텀블벅을 이용한 첫 TRPG 출간 펀딩 프로젝트, 'Dawn of FATE'>
윳쿠리 TRPG 동영상이라는 물건 때문에 안그래도 TRPG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되는 신입이 증가하던 상황.
그러던 중, 도서출판 초여명이 정말로 오랜만에 새로운 한글판 룰을 내놓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
던전 월드'. 던전월드는 간편하고 참신한 시스템, 그리고
룰 전문을 인터넷에 공개한 상태에서 출간을 위한 후원을 받는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성원을 받아 5천 8백만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을 모으는데 성공했습니다.
<준비된 시나리오가 아닌, 즉석해서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추구하는 '아포칼립스 월드 엔진'에 기반을 둔 '던전 월드'>
이러한 후원의 열기는 기존 TRPG 커뮤니티 바깥에까지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서브컬쳐와 관련된 다양한 사이트 뿐만 아니라 각종 언론에도 '클라우드 펀딩'의 성공적인 사례로
소개되게 된 것이죠. 거기에 TIG에서는 TIG 기자분들이 던전월드로 실제 플레이한
리플레이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던전월드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자, 던전월드로 처음 TRPG를 접하시는 분도 생겨나고, 옛날 옛적 D&D를 즐기던 기억을 떠올리고 반가운 마음에 다시금 TRPG를 즐기러 관련 커뮤니티에 돌아오는 사람도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열기를 이어가듯, 또 다른 클라우드 펀딩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죠. 그것이 바로 '고민해결! 마법서점'입니다.
savage world는 미니어쳐 게임에서 시작된 물건으로, GURPS처럼 다양한 세계/장르를 플레이 할 수 있는 범용 시스템이지만 좀 더 간편한 구조와 화끈한 전투 관련 룰을 갖춘 시스템으로, 영미권에서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물건입니다.
<사진 : Savage World는 미니어쳐 게임이 시초가 된 만큼 실제로 미니어쳐를 사용하여 즐길 수도 있습니다.>
마법서점의 제작자이신
'냐브'님은 이 새비지 월드로
"고양이를 부탁해요!"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를 플레이 한 후, 이대로 이 시나리오를 버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시나리오는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아기자기한 오컬트 해결사 물로, 그 시대에 소년소녀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다양한 소품들로 채워져 있었다고 하네요. 마치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처럼요.
<'고양이를 부탁해요' 플레이어 모집 당시 냐브님이 올렸던 이미지. 몇개나 알고 있는지에 따라 나이를 알 수 있을지도...>
그 '아까움'과, 플레이에서 느꼈던 '재미'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 마침 주목받은 클라우드 펀딩이라는 방식을 통해 마침내 '고민해결! 마법서점'의 펀딩을 시작하게 됩니다.
아마추어 출판으로도 가능한 일이긴 했지만, Savage world의 제작사인
피나클 엔터테인먼트에 출간 문의를 하자 매우 호의적인 반응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결국 '고민해결! 마법서점'은 Savage world의 오피셜 서플리먼트(공식적인 보조자료) 자격을 취득한 정식 출판물이 될 수 있었죠.
이윽고 ISBN을 따기 위해 '도서출판 롤'이라는 이름으로 출판사 등록을 하고, 그 덕에 '도서출판 초여명'과 함께 한국에서 2개 밖에 없는 RPG 출판사라는 타이틀을 획득하였습니다. 300만원 목표로 시작한 펀딩은 현재 2000만원을 넘은 상황.
일러스트 트럼프 카드, 주사위 등 다양한 소품들로 후원 특전이 구성되어 있는것과 더불어, 2천만원 돌파를 기념하여 Savage World의 채험판 격인 '테스트 드라이브 새비지 월드'의 번역, 공개가 확정되었죠.
<미국 중부의 황야에서 벌어지는 모험 이야기를 다룬 테스트 드라이브. 한글판은 오리지널 스토리로 제작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피나클 엔터테인먼트와의 후속 협상도 순조롭게 진행되어, 후원 금액이 3000만원을 넘길 경우 Savage World의 코어룰이 한국에 정발 될 것이 확정된 상태입니다.
이로서 GURPS 이후에 정말로 오랜만에 정식 범용 TRPG 룰 시스템이 정발 될 가능성이 열린 것이죠!
'고민해결! 마법서점'의 클라우드 펀딩은 앞으로 7일 남았습니다. 현 시각 모금액은 2천 1백만에 약간 못미치는 수준.
'던전월드' 펀딩 당시, 마지막 하루만에 1천만원 이상의 금액이 모였던 사례도 있으니,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3천만원이란 액수는 불가능한 액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요 사이의 TRPG 업계의 열기를 보자면 '불가능'을 논하는 건 무의미할 수도 있어요. 몇 년 동안이나 TRPG를 플레이 해 왔던 많은 사람들 중 누구도 이런 날이 올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요.
부디 3천만원을 달성하여, TRPG 업계의 활기가 죽지 않고 계속 되기를 기원합니다.
3. 초여명의 FATE core 시스템 번역 공지
각 인물의 데이터를 문장으로 구성된 배경과 특징을 토대로 구축할 수 있는 범용 RPG 시스템 'FATE'.
영미권 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RPG 시스텝입니다. 위에 소개해 드린 DoF 또한 이 FATE 시스템에서 기본 골자를 따온 물건이죠.
이 시스템은 최근 영미권 클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
킥스타터'에서 매우 성공리에
새로운 판본의 제작 펀딩을 마쳤지요. 그리고 많은 후원을 받은 제작사
Evilhat은
FATE Core 시스템과 간략본인
FATE Accelerated를
CC-BY 라이센스를 적용하여 공개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로서 다양한 상황에 대하여 철저한 데이터적 지원을 해 주는 GURPS, 간편한 룰과 직관적이고 빠른 전투를 가능하게 하는 Savage World, 캐릭터의 배경과 서사적 역할에 중심을 두는 FATE. 이렇게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진 범용 시스템의 한글판이 존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고민해결! 마법서점'의 펀딩이 3천만원을 돌파하여 Savage World 코어 룰의 정발이 결정되었을 때의 이야기지만요!
* 여러 사이트에 올리기 위해 종합적인 정보글 성격으로 써 봤습니다. 이대로 퍼 가셔도 아무 말 안합니다. 아니, 오히려 퍼 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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