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이라는 간판을 단 그 카페는 마치 60년대의 지방 도시, 그것도 변두리에 있는 한산한 다방과도 같은 후줄그레한 외관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사의 묘한 문체라니....
뭐라고 했더라?
섬에는 추절추절 장마가 계속되고 있고, 암캐 한 마리가 그 섬을 지키고 있고, 어쩌고 저쩌고....
궁상스러움, 청승스러움, 처연함....
내가 좋아하던 코드였다.
그 기사를 읽고 나서 아마 1,2년이 지났을 때 한 일 주일쯤 서울에 머무를 일이 생겼었다.
그 무렵 여대 졸업을 앞두고 있던 여동생이 나를 위해 하룻밤 서울 관광 가이드를 자원하고 나섰다.
어디를 구경하고 싶냐는 여동생의 말에 나는 단박 그 카페 이름을 떠올렸다.
무슨 고가도로 바로 옆이라는 카페 소재지 정보도 함께 대면서.
남산 아랫자락을 휘감아 도는 그 고가도로 이름이 삼일 고가도로던가....?
아무튼 '섬'은 그곳에 있었다.
저녁 시간이 지나고 아마 카페로서는 한창 피크 타임이지 싶은데도 실내는 텅텅 비어 있었다.
내 기억에 남아 있던, 아닌게아니라 청승스러워 보이던 잡지 사진과는 달리 거의 보이쉬한 느낌의 쇼트커트를 한 30대 여인이 여동생과 나를 맞았다.
바로 그녀가 '암캐'인 듯하였다.
그곳의 실내장식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돈을 별로 안 들인 집이었다.
싸구려 식탁, 싸구려 의자, 싸구려 선반, 그리고 그 선반에는 등이 벗겨진 책들이 뒤죽박죽으로 꽂혀 있었던가....?
아, 카페 한가운데 무쇠로 된 연탄 난로가 하나 있었던 것도 같다.
인상적인 것은 시커먼 맨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카페 바닥이었다.
이제는 어지간한 시골에서도 거의 보기 힘든 맨흙을 서울 한복판에서 보게 되다니.
잡지 기사의 야릇한 문체에 호기심을 느끼긴 했어도 이런 기괴한 분위기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어쩐지 주눅이 든 우리에게 비웃는 듯한 얼굴을 한 암캐가 다가와서 메뉴판을 건네고는 자기가 앉아 있던 탁자로 돌아갔다.
그래 봤자 좁은 가게에서는 팔만 길게 뻗으면 어깨가 닿을 거리였지만.
여동생과 나는 마치 숲에서 길을 잃은 헨젤과 그레텔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가 벙 떠 있는 것을 암캐도 알아챈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자기 자리에 다리를 포개어 앉아, 손님이니 뭐니 하는 부르조아적 가치관으로부터 자신이 철저히 자유롭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말겠다는 듯 우리가 있거나 말거나 신경쓰지 않고 음악에 맞추어 과자를 먹으며 발목을 까닥까닥거렸다.
ㅡ우리집에서 세련된 손님 접대를 기대하니? 꿈 깨.
그러다가 갑자기 종이곽을 확 구기더니 휴지통을 향해 집어던졌다.
휴지는 빗나가 바닥에 떨어졌지만 그녀는 다시 줍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흙냄새가 훅 끼쳐 오는 바닥 여기저기에 마치 일부러 그렇게 하기라도 한 것처럼 여기저기 구겨진 휴지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커피를 마실 때쯤 돼서는 종아리가 근질거리기 시작하였다.
벼룩이 있는 모양이었다.
커피를 마시자마자 우리는 카페를 나왔다.
그리고 밤거리에 서서 마주보며 씨익 웃었다.
"독특하긴 했다,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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