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글 보고 좀 적어봅니다. 며칠 사이 양검술 떡밥이 많은 것 같아서 나중에 쓸까 하다가, 귀차니즘 발동하면 그냥 잊고 말 것이란 점을 스스로 잘 알기에...;;; 물론 제가 서양검술에 대해 전문가는 아니지만, 문외한 분들 보다야 많이 연구했고 직접 수련도 하고 있습니다. 하여 어느정도는 팩트를 전달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1.왜 서양검술에 대한 오해가 심할까?
일단 말씀드리면, 10년 전만 해도 서구쪽도 개판이었습니다. 온갖 억측과 오해가 난무하고 있었지요. 근대에 들어서면서 서양검술은 맥은 끊겼었지요.(서양애들은 쓸모없는 기술은 정말 쉽게 버린다는 느낌이 여러번 들더군요.) 그 후로 복원의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알프레드 휴턴), 솔직히 미미한 수준이었지요. 게다가 서양쪽은 이미 근대검술 시스템이 아주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었기에(패리-리포스트로 대변되는. Indes, Fulen, Binden 등의 시스템인 중세 검술과 다른.), 전혀 다른 중세-르네상스 스타일을 이해하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복원품이란 게 근대와 중세의 하이브리드인, 이상한 잡종의 이도저도 아닌 검술이었지요. 결국 금새 잊혀졌습니다.
서양쪽에서도 검술은커녕 심지어 도검의 명칭에 대해서도 헷갈려 했습니다. 근세기를 대표하는 도검인 브로드소드는 사실 바스켓 힐트로 대표되는 군용검입니다. 스코티쉬 브로드소드가 유명하지요. 도널드 맥베인 같은 브로드소드 마스터들도 그렇구요. (초기형 브로드소드로 분류하는 영국의 모쳐어리 소드는 바스켓 힐트가 아닙니다만, 그 발전과정을 보여주지요.)
헌데 TV다큐 프로에서 버젓히 중세 아밍소드 중 도폭이 넓은 타잎(오크셧 도검분류 13b타잎)을 들고 나와 ‘이게 브로도소드다!’라 설파하던 때였습니다. 또한 아밍소드와 롱소드조차 헷갈려 D&D에서는 한손검인 아밍소드를 롱소드라 설정했지요. 덕분에 국내에서 아주 오래, 롱소드는 편수의 검이란 관념이 자리잡혀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최근 많이 계몽되었지요. 개인적으로도 기쁘게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딴 수준이고, 복원도 미비한데 영화속에서의 중세검술은 얼마나 개판 그자체였겠습니까? 그냥 눈물만 주륵주륵... 멀리 갈 것 없이 왕좌의 게임 시즌1 초반부에 존 스노우가 슬픈 검술로 펠을 치고 있더군요.
하지만 서양검술계의 르네상스가 인터넷과 함께 촉발되지요. 사실은 그 전은 너무나 자료의 공유가 안됐습니다. ARMA의 수장 존 클레멘츠가 30년 전에 서양검술을 복권하고 싶어했을 때, 가장 큰 난관이 뭐였는지 아십니까? 검술서를 볼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서구에는 수많은 병법서(페흐트북)이 남아 있었습니다만, 공개된 것들보다 박물관에 쳐박혀 있었던 게 대다수였지요. 지금처럼 인터넷 스캔본으로 편하게 병법서를 볼 수 있는 때가 아니었습니다. (요즘은 정말 세상이 좋아져, 저는 독일의 메서 마스터인 레크흐너의 메뉴얼을 아이패드에 넣어두고 봅니다. 농민 무기로 출발한 메서를 가지고, 오만한 기사 양반들 때려잡으셨다는 그 분이요.)
존과 직접 만났을 때 그에게 들은 얘기가 있는데, 존과 친구들은 무작정 중세-르네상스 검술서를 보기 위해 유럽으로 날아갔답니다. (존은 미국인입니다.) 그리고 박물관 코디네이터에게 열람을 요청하자,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더군요. 그때 그 코디네이터 양반이 한 소리가 “후손에게 물려줄 귀중한 자료다. 당신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 였답니다. 하여 존이 말한 게, “우리가 그 후손이다. 책을 내놔라.”라고 했었답니다. 그래서 결국 중세시대의 병법서를 열람할 수 있었지요. 현재 세계적인 유명인사인 존 클레멘츠의 복원 사업이 그렇게 시작된 겁니다. (네셔널 지오그래픽 다큐에서 그가 칼 휘두르는 거 보신 분들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일화에서 볼 수 있듯이 황무지에서 출발한 게 서양검술입니다. 책만 잔뜩 남아 있었지 누구하나 검술을 전승받은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물론 서양쪽에서도 전통 운운하며 사기치는 장사꾼들이 있습니다. 어느나라나 전통 드립하면 혹세무민하는 건 똑같습니다.) 정말 방대한 서적만 아니었다면 솔직히 복원할 엄두도 내지 못하겠지요. (워낙 소스가 많으니 어지간한 내용은 교차검증으로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서양검술은 현재 거의 예전과 비슷한 형태로 복원이 가능합니다.)
당연히 한동안은 수준이 높지 못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힘들게 복원한 기예를 공유하기도 꺼려지는 게 사실이었구요. 마치 우물안 개구리들 같은 상황이었는데, 이게 인터넷의 발달로 서양검술계의 르네상스가 펼쳐지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간 열람하기 힘들었던 병법서들이 이제는 그냥 인터넷으로 스캔본을 볼 수 있게 되었죠. 또한 여러 단체들의 기술 또한 속속 인터넷에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최근에는 이탈리아 롱소드 계보의 거성이자 시조인, 마스터 피오레의 병법서 ‘전장의 꽃’이 고화질판으로 올라왔습니다. 이런 귀중한 자료가, 아무 대가 없이 공짜로 공유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복원에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상황이죠. 특이 이런 분위기는 서양인 특유의 사고가 한 몫하고 있습니다.
선순환은 선순환으로 이어집니다.
덕분에 불과 10년 사이에 빠르게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정말 해 년마다 눈에 띄게 발전해 가는게, 마치 개발도산국 도시에 끝없이 이어지는 공사현장과도 같은 느낌입니다. 제가 ARMA긴 합니다만, ARMA의 5년 전 영상을 보면 고개를 흔듭니다. (“잘하긴 하는데, 검리에 좀 결여된 부분이 있군.”)
그 정도로 현재 서양검술의 발전 속도는 신속합니다. (물론 아직도 박물관에 잠든 책들이 많습니다. 존 클레멘츠가 얼마 전에 스코틀랜드에 갔다가, 갑주를 입은 기사가 쌍 펄쳔을 하는 책을 발견하고 놀라서 사진을 올린 적이 있었지요.-무슨 드리즈트도 아니고;; 물론 그쪽은 쌍 시미터긴 합니다만.- 이 떡밥도 재밌는 이야긴데, 길어지니 넘어가겠습니다.) 덕분에 슬슬 최근 유럽의 영화를 보면, 중세 메뉴얼 같은 전투 자세를 잡고 있는 기사가 등장하더군요. (물론 갑주를 입고 평복검술을 하는게 마음 아펐지만.)
하지만 서구쪽도 이제야 그간의 암흑시대가 끝나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검술은 얼추 꽤나 복원되었지만, 이게 서브컬쳐 쪽으로 가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지요. 그런데 서구도 아니고 극동의 한국에서 서양검술이 제대로 본 모습을 드러내려면, 아직 얼마나 가야할 길이 험하겠습니까?
게다가 D&D와 희대의 개잡서인 판X지 라이브러리 무기와 방어구 시리즈(잘못된 지식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사악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마서이자, 어설프게 아는 놈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양산할 수 있는지 증명한.)로 이미 오해와 편견이 뿌리깊은 나무처럼 자리잡은 상황에서 계몽의 불길은 더욱 타오르기 힘든 것이지요. 당장 한국에서 롱소드를 직접 전문가에게 배운 사람은 11명 뿐입니다. 그 중에 인터넷에 글 좀 적극적으로 쓰는 사람은 2~3명 뿐이고요.
이 때문에 수많은 군중이 모인 인터넷 세상에서 저 같은 무명소졸 하나가 이건 이래요! 아 그건 아니구요! 한들 얼마나 변화가 일겠습니까. 더군다나 팩트를 접하게 된 사람이 판타지 소설을 쓸 확률은 또 얼마나 낮겠습니까. 당연히 판타지소설에서 서양검술이 본 모습과 전혀 상관없거나, 아니면 무술 좀 하신 작가님의 경우 검도나 다른 일본, 중국 무술을 쓰는 기사가 등장하는 건 어쩔 수 없지요.
참고로 말하지만, 서양검술에서 검도 같은 중단 안 합니다.
물론 고류 일본 검술의 우중단, 좌중단과 흡사한 플루크(Pflug)란 자세가 있습니다.
또한 오노파 잇토류, 야규 신가게류의 신켄노 카마에(眞劍勢)와 같은 랑은오트(Langenort)란 자세도 있습니다.
그러나 검도와 같은 중단은 안 하는데, 여기에는 검리적 이유가 명확히 존재합니다. 헌데 판타지소설에서는 기사가 중단을 하고 상대를 겨누죠. 심지어 검 끝으로 상대의 검 끝을 톡톡 건드리는 검도식 싸움까지 그대로 합니다. 껍질만 중세 서양 판타지지, 알맹이는 완전히 사무라이인 거지요.
[2편에서 계속.... 다 쓰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심력 소모가 크군요. 전 서양검술 포스트들 중에서 연무회원님들이 의문을 표했던 사안에 관해 계속 적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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