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하루종일 집에서 뒹굴거렸습니다. 별 할 일이 없어서 뒹굴거리는건 도무지 끝날 계기가 없었죠. 결국 이대로 있다가는 집 안에서 망부석이 되어버릴듯한 느낌에 그냥 아무데나 나가보기로 하고, 그냥 정처없이 떠돌았습니다. 목적지도 없고, 언제 들어갈지도 생각해두지 않았죠.
근처 도서관에도 가고, 동네에 안가본 곳으로 계속 걸었습니다. 해가 지고, 슬슬 추워지기도 하기에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어요. 가면서 길은 다 외워두었기에 돌아가기는 별 문제가 없었죠. 사실 몇번 와본적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는 해가지면 잘 돌아다니지 않는터라 몰랐는데, 낮의 길과 밤의 길은 완전히 다르더군요 ㅡㅡ
결국... 저는 이 나이를 먹고 길을 잃었습니다. 아니 길을 잃었다는걸 깨달았을 때 그냥 얌전히 다시 돌아가려 마음먹었던 자리로 다시 가서 처음부터 길을 되짚거나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았다면 좀 시간은 걸렸겠지만 성공적으로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을테죠
그런데 그놈의 오기가 뭔지. 이왕 이렇게 된 거 내 스스로 길을 개척하겠어! 하며 그냥 저의 느낌대로 걸었어요. 결과는 뻔하죠. 갈수록 나락으로 빠져들었어요. 다시 되돌아갈까 했지만, 돌아설 수 없었죠. 저는 이미 너무나도 먼 길을 걸어오고 말았어요.
결국 저는 포기했어요. 아니 내가 왜 오기를 부렸을까? 하며 후회도 해보고, 저는 그냥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려했어요. 아는 곳만 어딘지 알면 집으로는 갈 수 있잖아요? 설령 아니라고 해도 근처 역에만 가면 집으로 갈 수도 있구요.
뭐, 어쨋든 저는 마음먹자마자 옆에있는 사람의 주의를 끌려고 했어요.
톡톡, 하고 어깨를 두드리며,
"저기요"
하고 말을 걸었어요. 힐끗 쳐다보지도 않고 무시하더라고요. 저는 약간 화가나서 좀 더 강하게 치며
"이봐요"
하고 말했죠.
그랬더니 갑자기 그 사람이 뒷머리를 튕기면서(그러니까 영화에서 보면 여배우들이 자신의 긴 생머리를 손으로 팍! 하고 살짝 거칠게 튕기는거요. 아오 이걸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내요. 어휘력을 높여야지 원...) 저를 쳐다보면서 말했어요.
"흥! 저 남자친구 있거든요?!"
... 어쩌라고? 남자친구 있는 사람에게는 길을 물어보면 안되니?
저는 순간 멍해졌습니다. 세상에... 길에서 누가 말을걸면 단번에 헌팅이라고 착각할정도로 이쁘다면, 저는 이해했을거예요. 계속 시달렸다면 예민해질만 하죠. 하지만... 아오...
어ㅤㅉㅒㅅ든, 그 여자는 흥! 하며 가던길을 갔어요.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대번에 욕이 나올줄 알았는데, 욕도 안나오더군요. 너무나도 황당한 나머지 그 여자에게 말을 쏘아붙여주지도 못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여자는 벌써 열 걸음정도 떨어져있더군요.
정신없던 시간은 지나고, 저는 열불이 치솟았습니다. 한마디 쏘아붙이려 했는데, 그 여자에게 전화가 왔는지그 여자가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다가 지갑을 떨어뜨렸어요. 저는 주워주면서 욕을 퍼부어주려고 했습니다.
"당신 내 취향 아니야! 길좀 물어보자고!"
라고 하려했죠. 그런데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댄 여자가 말했습니다.
"어, 미안해. 거의 다 왔어. 웬 못생긴 놈이 나에게 작업을 걸어서~ 구시렁 구시렁"
이년이... 내 핑계는 또 왜 대니. 저는 마음을 바꿔먹었죠. 에라, 요즘 경기도 안좋은데 고맙다!
저는 물어물어 길을 찾는것보다 더 쉽고 편하게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지갑 주은건 자랑
지갑에 당신 제 취향 아니예요.라고 쓴 편지를 넣어서 돌려준건 안 자랑
p.s 지갑 주은거 주인에게 돌여주지 않는건 불법입니다. 저처럼 지갑을 고스란히 우편으로 부쳐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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