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적 시점은 집단, 혹은 사회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그리는 시점이고..
미시적 시점은 개인적 입장에서 사회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입니다.
문제는 이 두 시점이 어느쪽이 그르거나, 어느쪽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점이라는 사실이지요.
예를 들어, 학비 문제를 보겠습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성적 상위권이 되어 장학금을 타서 해결한다는 것은 미시적 시점의 해결책입니다.
대통령이 '학비가 비싸면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타면 되지'라고 떠들었다면, 이건 상ㅂㅅ이 됩니다...--;
왜인가 하면 대통령은 정치가이고, 정치는 거시적 시점에서 봐야 하기 때문이지요.
자동차의 결함 때문에 사고날 확률이 백만분의 일이다.
이건 미시적 시점, 곧 개인적 시점에서 봤을 때는...
그냥 타면 됩니다. 백만분의 일이면 신경그다지 안써도 되요.
반면, 자동차 회사 운영하는 입장에선 다릅니다.
백만대 팔면 한대는 꼭 사고가 나는 것이요. 천만대 팔면 열대가 사고가 나는 겁니다. 그 대처를 생각하지 않으면 멍청한 것이 됩니다.
성폭행에 대한 것도 비슷합니다.
미시적 시점에서의 대처라면, 몸가짐을 잘하고 조심하며 생활하는 겁니다.
거시적 시점에서의 대처는 전혀 다릅니다.
야하게 입고 다니더라도 성폭행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미시적 시점의 대처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문제입니다. 당사자만이 미시적 시점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라면, '거시적'으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왕따 당하지 않는 요령을 당사자에게 조언하거나, 당사자가 선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왕따당한 피해자에게 '너 좀더 요령있게 굴지 그랬냐?'는 몇대 줘터져도 될만한 개념없는 행동입니다. 왜? 그말을 하는 사람은 당사자가 아닌 겁니다.
왕따가 용인되는 세상을 탓하고, 왕따가 줄어들도록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이지요.
가끔보면, 미시적시점과 거시적시점의 사용법을 혼돈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거 사실은 엄청 개념없는 겁니다.
학생들이 학비 비싸서 고생한다는데, 장학금타면 되지..라고 떠드는 정치가는 뒤지게 맞아도 쌉니다.
슬럿 워크..는 여성이 야하게 입고 다녀도 안전한 세상을 만들자는 거시적 시점의 운동입니다만....
이걸 미시적인 걸로 착각해서, 난 야하게 입고 어두운 골목을 홀로 다니겠어..라는 미시적 선택이나 행동을 취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짓은 아닙니다.
(이 경우엔 당사자가 자초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거시적 시점이라면, 다수의 마린을 살리기 위해, SCV를 적진에 던지는 비정한 결단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미시적 시점이라면, 거시적 시점의 결단이 달갑지 않을 수도 있지요.
이 두 시점과 이 두 해법을 올바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이 이 불완전하고 때론 잔인한, 그리고 의외로 따뜻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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