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무협, SF 등의 소설 분야를 장르 소설로 여기는 시각을 그대로 따릅니다.
요즘 심심치 않게 논쟁거리가 되는 게 '장르 소설의 개연성'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개연성이 없다.'고 일축하거나, '다른 소설과 달리 개연성이 있어서 재밌다.'고 감탄하거나, 혹은 같은 글을 두고 '개연성' 여부에 대한 의견이 달라 언쟁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더군요.
그래서 몇 가지를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거창하지는 않고, 간단하게 하겠습니다.
1. 장르 소설과 일반 소설의 차이점은 뭔가?
2. 개연성은 뭔가?
이 두 가지가 중요한 문제겠죠.
소설은 '있을 법한 일'을 꾸며서 쓴 글입니다. 이 말에는 다들 동의하실 거예요. 일반 소설과 장르 소설의 차이는 '어디에서 있을 법한 일인가?'에서 옵니다.
일반 소설은 현실에 뿌리를 두는 게 보통입니다. 즉,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루는 게 대다수를 이루지요. 그래서 현실의 법, 경제, 사회, 윤리, 권력 구조 등을 기초로 세계관을 짭니다. 정확히 말하면, 현실보다는 단순한 모형을 짜고 거기에 맞는 사건을 통해 주제를 드러내지요.
장르 소설을 무협과 판타지, SF라고 가정하면, 현실에 뿌리를 두지 않는 이야기가 되지요. 그래서 세계관이 매우 중요합니다. 현실이 아니라 '있을 법한 세계'를 새로 짜고, '만들어낸 세계관에서 일어날 법한 사건'을 그려냅니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입니다. 왜냐하면 '현실'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이 소설 속에서면 통용되는 규칙을 납득시키고, 이해시키고, 나아가서는 숙지하도록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소설 속 캐릭터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려내야 하죠. 그래서 톨킨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에 찬탄하는 겁니다. (이야기의 재미는 논외로 치더라도요)
그럼 이제 개연성에 대해 얘기해 보지요. 앞서 적은 바와 같이 소설은 '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있을 법한'이 우리가 말하는 개연성입니다. 개연성의 의미는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 정도로 정리할 수 있거든요. 즉, 개연성이 없는 글은 (제대로 된) 소설이 아닙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소설'에서 개연성을 찾는가? 그건 우리가 그 소설에서 묘사된 세계를 납득하지 못한 것이죠. 제가 장르 문학을 보고 나서 내용을 되짚어보는 기준은 아래와 같습니다.
세계관에 충실했던가?
캐릭터가 세계관에서 주어진 규칙에 엇나가지 않았나?
사건의 인과관계가 납득할 수 있게 드러났던가?
아주 기초적인 기준입니다. 그런데 장르 소설은 태생적 문제로 개연성을 드러내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바로 '초월적 능력' 때문이죠. 현실의 인간을 넘어서는 초월적 능력 보유자들의 행동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제약'을 무시하거든요. 투명 드래곤? 개연성 있습니다. 우주에서 제일 세다는데 뭘 어떻게 합니까? 어떤 규칙도 투명 드래곤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투명 드래곤은 선하지도 않습니다. 아, 물론 제가 직접 읽어보지 않고 소문으로만 접한 글이라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각설하고 요약하자면, 잘 짜여진 글은 얼마나 제약을 잘 활용할 수 있겠느냐가 되겠습니다. 가위, 바위, 보 게임이 살아남은 것은 확고부동한 제약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에디터를 써서 깬 게임이 재미 없는 이유는 제약을 무시해버리기 때문입니다. 먼치킨이 재미 없는 건 제어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장르 문학 독자가 원하는 개연성은 곧 초월자들을 묶는 규칙이 얼마나 납득할 만하고,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캐릭터의 개성은 논할 필요도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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