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사귄지 몇 개월쯤 지나면 어느 정도 상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이유도 얼추 감을 잡게 되었다.
한적한 카페.
단단히 무장하고 온 얼굴 화장.
진지하게 굳은 입술.
이것들이 의미하는 바가 뭐겠는가?
물 보듯 뻔했다.
그녀는 지금 나와 이별을 통보하려는 거였다.
“그래. 진희야. 말해봐.”
“오빠. 있잖아. 돌직구로 말할게. 오빠한테는 미래가 없어.”
것 봐라. 딱 내가 예상한 대로였다.
저게 헤어지자는 이야기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먼저 깨지자고 말하기에는 뭐하니까 이런 저런 변명을 대고 있는 거였다.
난 나쁜 년이 아니야. 네가 나쁜 거야. 이해해? 알았지?
“이제 오빠 나이도 생각해봐. 솔직히 군필에 공시도 3번이나...”
“진희야.”
“잘 들어봐. 이대로라면 언제 공무원으로 취직하겠어? 안 그래? 차라리 다른 걸로 돈 버는 편이 빠를 거야. 오빠는 진짜 공무원에 자질이 없어. 이게 오빠한테도 좋고 오빠 가족한테도 좋은 길이야.”
“....진심이니?”
“오빠. 미안한데. 난 합격했고. 이제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해. 우리 공무원 준비하면서 만났을 때 약속했잖아. 서로 행복하게 해주기로. 이제 구차하게 굴지 말고 따로 갈 길 찾아보자. 응? 나도 이제 행복하고 싶어.”
“....”
“이런 관계는 둘 다 힘들어질 뿐이야. 솔직히 1년 기다려 준 것만 해도 대단한 거 아냐?”
개소리였다.
1년을 기다리기는 무슨?
여태까지 내가 보낸 전화나 문자도 씹었던 그녀였다.
그것도 모자라서 그녀 친구 SNS를 보니 어장이나 꾸미고 있었다.
[친구랑 친구 남친이랑 더블데이트 왔어요!]
[친구는 9급 공무원이고 친구 남친은 무려 대기업 사원! 연봉 억이 넘음!]
아직도 기억이 생생했다.
그걸 보고 얼마나 어이가 없었던지 말문이 턱 막혔었다.
“...”
“미안해. 나도 진짜 미안한데. 솔직히 인생은 원래 이런 거야. 서로에게 도움이 되면 만나고. 아니면 헤어지고. 원래 헤어짐이 있으면 만남도 있는 법이니까 금방 좋은 인연 찾을 거야. 나랑 만났던 것처럼.”
“1년은 무슨... 너 사실...”
아니다. 그냥 들추지 말자.
고개를 흔들었다. 말은 똑바로 하자고 입을 열려다가 꾹 다물었다.
헤어지는 참인데 폭언이나 퍼부어서 뭘 하겠는가?
이제부터 보지 않을 인연인데 여기에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후... 그래... 내가 미안했다...”
“그래. 오빠. 하지만 우리가 헤어져도 좋은 친구로는 남을 수 있을 거야. 이래보여도 공무원이야. 좋은 인맥 하나 생겼다고 생각해.”
좋은 친구는 무슨? 좋은 어장이겠지?
이미 모든 정이 다 떨어져버린 그녀였다.
나는 깔끔히 여자친구. 아니 전 여자 친구에 대한 마음을 접기로 했다.
그래. 잘 가라. 만나서 더러웠고 더 이상 만나지 말자.
“그럼 커피 값은 내가 계산할게. 앞으로는 좋은 친구로 지내자.”
그게 마지막 양심이냐?
피식-
이제 와서 대인배처럼 보이려는 그녀의 노력이 가상해서 웃음만 나왔다.
뭐. 그래도 가난한 공시생에게 커피 값을 내준다니 고맙기는 했다.
“그래. 참 고맙...”
오늘 커피 값은 굳었네?
마지막 인사를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그리고 눈을 깜빡였더니 모르는 형광등이 보였다.
“어?”
카페 조명은 저게 아니었는데?
“여기! 환자가 깨어났어요!”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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