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아흔 여덟까지 사셨어요.
장수하셨지요.
두 해 전에 곡기를 끊으신 적이 있었습니다.
자식을 셋이나 앞세우고 너무 오래 사시는 것 같다고 부러 그러셨지요.
모두 달려갔었고...
할머니는 맏손녀의 애원에 다시 수저를 드셨습니다.
그리고 두 해를 더 사셨네요.
여름에 무척 힘들어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무더운 여름 버텨내셨습니다.
조마한 마음 한숨 돌릴즈음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자마자 홀연히 가셨네요.
문상객들 더울까봐 걱정하셨던 걸까요?
빈소를 지키면서 물끄러미 사진을 들여다 봅니다.
집에도 할머니 영정사진이 있습니다만 흑백이지요.
스무 해 쯤 전에 찍어놓은 사진입니다.
당신 생각보다 훨씬 오래 사셨던 거지요.
집에 있는 사진은 곱게 늙으신 사진입니다만, 영정사진으로 찍은 최근 사진은 조금은 힘들어보이십니다.
특별한 병앓이 없이 편안히 가셔서 그나마 마음이 가볍습니다.
호상이었어요.
입관 때 할머니 마지막 모습을 뵈었습니다.
편안히 눈을 감으셨더군요.
무척 작았습니다.
우리 할머니, 무척 작아지셨더군요.
발인하는 날, 하늘이 무척 맑았습니다.
햇볕도 반짝였지만 그리 덥지는 않았어요.
한 삽씩 할머니 묘지 위에 흙을 뿌렸습니다.
봉분을 올리고 돌아왔어요.
가시기도 편안히 잘 가셨고 발인도 장지도 좋았습니다.
편히 가셨습니다.
오늘이 삼오제라 또 뵈러 갔습니다.
절을 했습니다.
간 김에 할아버지 묘 벌초도 하고 왔네요.
사소한 일들이 많이 기억납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 방의 다락은 보물창고였지요.
꼭꼭 숨겨둔 맛난 것들.
많이도 입을 즐겁게 해주셨습니다.
형님 양발은 손수 떠주셨는데 제 것은 안 떠주셔서 삐쳤던 기억이 납니다.
땡깡도 부리고 그랬지요.
큰 고모가 돌아가셨을 때, 제 손을 꼭 잡고 '니 큰 고모가 갔구나. 어쩌면 좋냐?'고 하시던 게 기억납니다. 눈물을 많이 흘리셨지요.
자주 뵙지도 못했던 무서운 고모로 큰 고모를 기억하던 어린 저에게 할머니의 눈물은 당황스러웠습니다.
할머니의 슬픔을 함께 느낄 수 없었던 게 미안했어요.
같이 울어드릴 수 없는 게 미안했어요.
이제 편히 쉬시겠죠.
우리 할머니.
편히 쉬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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