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김.선.일)을 추모하고 애도해 하시는분들께서는 서해교전때 돌아가신분들 이름한분이라도 기억하실런
지.. 물론 군인의 의무가 나라를 지키다가 죽는다 하여도, 그분들도 군입대전까지만 해도 우리와 다를바 없는 일
반 시민이였습니다. 더군다나 서해교전당시에 전사하신 분들의 시체가 '고속정 357호'에 있던 마지막 모습을 보
신 분들이라면, 고인의 참사가 뭐가 대수라고...까지 생각되실 겁니다.
그당시 해군정보부쪽에서는 국가에게 계속해서 "북한해군의 움직임이 이상하다. 주의 요망한다"라고 말을하자,
국가에선 "햇볓정책이 활발한상황인데다가, 월드컵이 한창인 현 시점에서, 북한하고 관계 깰일있냐?"는 식으로
답변했습니다. 그리곤 6월 29일. 북한해군은 결국 NLL을 넘어, 결국 전사자 4명, 부상자 19명, 실종자 1명의 결
과를 만들었습니다.
그분들 이름이나 기억나십니까??
직격폭격맞은 357호...
정확히 세발의 85mm포와, 총탄, 기관포탄을 뒤집어쓴 배였지만, 357호 승무원들은 고장난 자동형 40mm주포까
지, 수동으로 바꾸어 가면서 싸워내었습니다.
20mm발칸포를 쏜 조천형 중사는 불길에 휩싸여서 전사하였고, 다른 발칸포를 쏘던 황도현 중사는 머리에 직격
탄을 맞아 전사하셨지만, 그분들의 시체의 손가락에는 끝까지 방아쇠에 손가락이 걸려 있었습니다. 375호 정장
윤영하 소령님은 이미 죽음을 앞둔 상태셨고, 부정장님은 양쪽 무릎이 없는 상태에서도 전투지휘를 계속하셨습
니다. 윤소령님 앞의 권기현 상병은 K2기관단총을 한손으로만 사격하였습니다. 그럴수 밖에요.. 왼손가락 4개가
잘려저 나갔으니까요..
그렇지만, 권상병님은 오른손만으로 탄창을 바꾸고, 왼손팔뚝위에 총을 올리고 다시 사격하셨습니다.
이렇게 억울하고도 너무나 비참하게 돌아가신분들도 계신데..6.25일 에도 고인(김.선.일)씨의 죽음에만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서 마음이 아픕니다.
이틀후면 서해교전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2주년이 되는 때인데..그분들 이름조차도, 또 그사건 조차도, 거론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6월 29일, 바로 내일입니다. 꼭 이분들의 명단과 함께 추모의 글을 올려주셨으면 합니다.
2002년 6월 29일 서해교전 피해자 명단.
○ 전사자(4명)
* 소령 윤영하(28, 정장)
* 중사 조천형(26, 병기사)
* 중사 황도현(22, 병기사)
* 중사 서후연(21, 내연사)
(전사후 이분들은 국방부에서 전원 1계급 특진에 추서하였습니다.)
○ 부상자(19명)
*상사 이해영
*중사 김현
*중사 김장남
*중사 황찬규
*상병 김면주
*상병 권지형
*상병 박동혁
*일병 이재영
*일병 김상영
*병장 고경락
*상병 김용태
*일병 김택중
*하사 곽진성
*중사 이철규
*병장 김승환
*하사 전창성
*상병 조현진
*중위 조외건
*중위 이희완
○ 실종자(1명)
*중사 한상국
추신. 참 착찹합니다. 고인(김.선.일)씨의 죽음과 관련되 유가족들이 정부와 나라와 국민에 하는 요구들이
너무나 착찹합니다. 국립묘지요...거액의 보상금이요...추모교회 건립이요....위의 젊디 젊은 군인들의 죽음
이..너무나 무색해 지는 순간입니다..고인(김.선.일)의 유가족분들께선 고인의 주검이 한국에
오기전부터 변호사를 선임해 정부와의 보상협상과 국립묘지 안장을 들어주지 않으면 장례일마저 연기시킨다
는 그말...그말..너무나 가슴아픕니다. 보상은 해줘야 하지만 국립묘지와 추모교회 건립은 국민들의 혈세입니다.
뼈빠지게 내형제 내가족들이 번돈으로 명분없는 일에 그돈이 세어나가면 우리는 또다시 매꾸어야죠..힘이
없으니까요...이제 그만들좀..하십시오..고인(김.선.일)씨 유가족 여러분...하루라도 빨리 고인(김.선.일)이 편
안히 잠들게 해주시길 모든 국민들이 원하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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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자에서 퍼왔습니다.
아마 그... 김선일씨의 어머니라는 분이 6개월 동거녀라죠?
그 참...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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