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서 개연성은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문제죠. 특히 이게 중시되는 것은 일반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주로 쓰고 있는 환상 문학의 경우는 개연성이 설정이라는 존재로 커버된다고 생각하고요.
네크로드님의 글대로 하나의 환상 문학에서 설정이란 그 세계관을 책임집니다. 그 설정의 굴레에서 움직이는 것은 어떻게 되든 개연성이 맞는 것이죠. 그러니까, 한 세계에 작용하는 절대적인 법칙에 적용되는 것 말입니다.
뭐, 신이 존재하는 세계가 있다고 칩시다. 현대에서 신부가 아무리 기도를 한다고 해도 말기암에 걸린 사람이 환하게 빛나며 금세 자연 치유되거나 하는 일은 없습니다.(종교에 대한 비하의 의도는 없습니다.) 현실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이건 개연성이 없는 것이겠죠. 흔하게 작위적이다, 라는 표현이 개연성이 없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이런 경우 역시 개연성의 부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신이 존재하는 설정에서 신의 힘을 빌어 사제가 병자를 치료했다면 이건 있을 법한 일입니다.
오히려 환상 문학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더욱 신경써야 할 것은 핍진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설정이야 뭐 자기가 원하는대로 짤 수 있겠죠. 토끼가 먹이 사슬의 절정에 섰다, 뭐 이런 설정을 짜든 말든 아무런 제약은 없습니다. 그러나 독자가 이 설정을 제대로 받아들일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렇기에 만약 토끼가 먹이 사슬의 절정에 섰다는 설정을 쓰기 위해서 글을 쓰는 사람은 그에 걸맞는 근거를 들어 독자를 '설득'해야 합니다. 이러한 세계에서 이러한 일은 있을법하다, 라고 독자가 생각하게 하는 것이 핍진성이고, 제 소견으로 환상 문학을 쓰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핍진성을 확보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 물론 지나친 우연, 개념없는 작위성, 이런건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만.....적당히 해야겠죠. 극중인 장치를 설정하기 위해 어느정도 우연을 집어넣을 수 있지만 그게 지나치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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