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T 대여점 어디 있는지 아세요 혹시? H 빌딩 2층이라고 하던데."
뒤돌아본 남자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로 나를 슥 훑어보더니 상냥하게 웃었다.
"예, 알아요. 여기서 왼쪽 코너로 돌아서 한 블럭 더 가시면 보여요."
─라고 자연스럽게 말하는 그의 말은 거짓이었다. 면접까지는 5분도 남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만약 내가 거짓말을 알아차리는 능력이 없었더라면 홀랑 넘어갔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 만큼 남자는 자연스럽게 거짓을 말했다. 그 스스럼없는 악의에 나는 울컥 화가 났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씀하시지 왜 거짓말을 하세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골탕먹이면 즐겁나요?"
팩 돌아선 나는 다른 지나가는 사람이 있나 보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맞은편에서 걸어가는 한 사람을 발견해 달려가려 했는데, 뒤에서 나를 붙잡았다.
"잠깐만. 거짓말?"
"그래요, 거짓말이잖아요."
"헤에. 어떻게 알았어?"
"무슨 상관이에요. 저 급하니 좀 놔 주시지 않을래요?"
붙잡힌 손을 뒤틀었는데 생각보다 남자의 손힘이 세서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아까 그 T 대여점, 나 위치 알고 있어. 가르쳐줄게. 이번엔 정말로. 대신에 내가 지금부터 하는 말이 거짓말인지 진짜인지 맞춰 봐."
남자가 그런 소리를 지껄이는 사이에 맞은편의 유일한 행인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 사라져 버렸다. 지금 뛰어간다고 해도 그 사람을 찾아낼 수 있을까 조금 자신이 없어졌던 데다가, 거짓말인지 진짜인지 맞추는 것쯤은 나에겐 숨쉬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기 때문에 어디 한번 봐주지 하는 심정으로 승낙했다.
"내 이름은 이하윤이야."
"거짓말. 그럼 이제 T 대여점 어딘지 가르쳐 주세요."
"정말로 맞추는 거야? 대단한데?"
그렇게 감탄한 남자는 갑자기 나를 끌고 가려고 했다. 그쯤에서 인내심이 끊긴 나는 붙잡힌 손목을 뒤틀면서 남자의 팔을 잡아 꺾어 바닥에 메쳐버렸다. 힘이 센 편은 아니지만 이래뵈도 태권도 4단이어서, 순간의 틈만 포착한다면 기술의 우위로 성인 남자 하나쯤은 몇 번이고 메칠 수 있다. 그리고 보통들 내 자그마한 체구에 긴장을 풀고 있기 때문에 그 틈을 파고드는 건 손쉽다.
"저기요, 저 바쁘거든요. 지금 분명히 이미 면접 시간에 늦었을 거거든요. 아르바이트 면접인데 감점돼서 떨어지면 그쪽이 제 학비 대신 내 주실 건가요? 가르쳐 줄 생각이 없으면 없다고 확실하게 말하든가. 남 시간이나 의미없이 뺏는 인간들은 진짜 최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아, 그건 동의. 확실히 그렇지. 남의 시간을 축내는 인간들은 세상에서 분리수거 되어야 할 쓰레기야."
"…그러니까 당신이 그 쓰레기라고."
메쳐진 주제에 그다지 타격을 입지 않은 듯한 남자는 툭툭 털고 일어나더니 나를 보며 씩 웃었다.
"너와 나 사이의 문제는 지금 너는 아르바이트 장소에 면접을 보러 가야 하는데 길을 모르고, 그런 너에게 내가 길을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거지? 넌 학비를 내기 위해서 반드시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고. 그런데 꼭 그 T 대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되는 건 아닌 거 아냐? 목적은 돈이지 대여점 아르바이트 자체가 아니니까. 그렇다면 너와 나의 문제는 이렇게 해결이 될 듯해. 내가 월급 듬뿍 줄 테니까 나한테 아르바이트 해. 어때?"
"…저기, 뭐라구요?"
"이백? 이백이면 되나? 아, 아니지. 요즘 물가 다 비싸니까. 그럼 삼백이면 될까? 선불로 전부 줄게."
이렇게 수상하게 구는 외간남자가 자기한테 아르바이트 하라고 하는데 덥썩 따라갈 리가 없지 않겠느냐고 쏘아붙이려던 나는 남자가 말한 선불로 삼백이란 말에 움찔 굳고 말았다.
야, 안돼, 저렇게 큰 돈 준다면서 끌고 간 남자가 너한테 시키려는 게 정상적인 걸 리가 없잖아, 라는 생각 반과 뭐하러 남자가 대학 동기들에게서 귀여워~ 남동생같아~ 하는 소리를 듣는 자신에게 수작을 걸겠나 하는 생각 반에 아무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멀거니 그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무슨 일 하시는데요?"
"정보상이야. 요즘 인터넷상에 꽤 유명한데. 의뢰만 하면 어떤 정보든지 찾아주지. 세상의 모든 정보를 취급하거든."
"아, 그 주소, 들어본 기억이 있는데…… 홈페이지 이름이 아마도……"
"카페 느와르."
느와르 부분을 너무 좋아서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발음한 남자의 눈동자가 묘하게 열의를 띠었다.
"네 그 능력이면 수집한 정보의 신뢰도가 팍팍 상승해. 수집할 수 있는 정보의 스펙트럼도 훨씬 넓어질 거고. 그러니까 나한테 아르바이트 해, 살아있는 거짓말 탐지기."
─ EPISODE [달의 뒷면] 중에서
인간의 모든 거짓말을 간파하는 소녀, 서윤이
세상의 모든 정보를 취급하는 남자, 서윤에게 아르바이트하면서 벌어지는
현대물 장르복합 단편 연작 <더블윤 스트라이크>
현재 두 번째 에피소드 [지상의 천사]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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