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마, 즉 불교에서 말하는 "업"은 신들조차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카르마는 이를테면, 회전목마 같은 것이죠.
불합리하고 잔인한 인과가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이죠.
예를 들면, 이런 경우도 있는 겁니다. 도로 근처 공사장에서 자재를 잘못 보관해서 파이프 하나가 도로에 흘러들어갔습니다. 자동차가 파이프를 못보고 질주하다가, 파이프가 바닥에 튀어올라 차를 덮쳤습니다. 차주인은 즉사, 차는 폐차 처리 되지요.
어처구니 없고, 어떤 악의나 논리도 없는 그런 죽음이죠.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면, 또다른 예를 들지요. 내가 오늘 햄버거를 먹었습니다. 이 햄버거의 고기는 어느 미국계 기업에서 만든 것인데, 그 기업은 대규모 목장을 운영하고 있죠. 그리고 목장주들은 나무를 전부 밀어버립니다. 온갖 오폐수들이 강을 타고 바다로 흘러갑니다.
다음날 아침 나는 그 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먹을 겁니다. 그들 목장주며, 미국계 기업의 회장도 맛있는 스시를 먹으러 레스토랑에 가겠지요.
이것 역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아주 어려운 경우라고 할 수 있죠. 부조리함, 오직 원인과 결과만 있는 기이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인과가 모이고 모여서 카르마가 됩니다. 카르마는 신들조차 탈출하기 어려운 그런 것입니다.
잔인하기 짝이 없죠. 첫번째 예의 자동차 주인은 무슨 죄가 있어서 그렇게 죽었을까요? 오늘 햄버거를 먹는 나는 과연 어떤 죄가 있는 걸까요? 약간씩의 죄는 있을지 몰라도 심각한 죄는 아니지요.
절대적인 신을 믿는 종교라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모든 것은 신의 뜻이다. 신께서 마련하신 길이다. 그 길만 따르면 된다."
그러나 절대적인 신을 상정하지 않는 힌두교나 불교같은 종교에서는 그런 해답이 없습니다. 그저 고통의 연속일 수밖에 없습니다. 환생조차도 축복이 아닙니다.
이런 카르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바로 각성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카르마라는 회전목마에서 내려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각성은 고난일 수밖에 없습니다. 각성을 이룬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합니다. 심지어 해탈을 가르치는 불교에서조차도 이렇게 말합니다. 수억, 수조년이 지나도록 환생을 거듭해도 깨우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각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구원은 회전목마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시각을 갖고, 자신의 길을 걷는 일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종교의 틀을 벗어나, 저는 인간의 역사는 항상 각성하는 자들에 의해 이끌어져 왔다고 믿습니다. 어느 종교, 어느 사회든 마찬가지입니다.
이 소설은 이 홍보문에 적힌 것처럼 진중한 소설은 결코 아닙니다.오히려 가볍고 유쾌한 소설입니다.
하지만 리안의 인생에 대해 알게 되면, 결코 쉽지는 않은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될겁니다. 리안은 환생하기 직전 이 훈이라는 이름의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사회중상류층에 속하는 친척을 두고 있지만, 어째서인지 이훈의 가족들은 평범한 서민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 훈은 반 친구들에게 왕따까지 당합니다. 이훈의 삶을 따라가보면, "다르다는 것", "그로 인해 고립된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씩 알게 됩니다.
자신만의 선(善)을 지키려고 애쓰지만, 항상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 훈은 철저한 패배를 맛보지만, 그래도 결코 선을 놓지 않는 인물입니다. 왜 그래야 했을까요?
부디 소설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이 훈의 또다른 전생인물 "운"은 다음과 같이 자신에게, 그리고 인류에게 묻습니다.
"인간이여, 충분히 고민했는가?"
부디, 제 소설을 읽거나 읽지 않거나 인간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셨으면 합니다.
포털입니다.=>카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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