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동방불패'란 영화가 인기를 끌때가 있었다. 중국영화의 과장성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보지 않았는데, 소설을 워낙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내용이 어떻고, 본 사람들의 반응이 어떤지는 궁금했다. 마침 중국영화를 무척 사랑하는 친구가 한명 있었기에 그 친구에게 영화에 대한 반응을 물었더니 그 친구 왈 "영화 보는 사람들이 왜 사람이 휙휙 날라다니는 지 이해를 못하더라구" ,
그 말을 듣고서 '경공'에 대한 몰이해로 영화에의 몰입을 못했을 관객들을 생각하니 좀 안타까웠다.
장르문학, 특히 '무협'이라는 장르문학은 독자가 그 세계관을 이해해야 문학으로서의 성립이 가능하다. 장풍을 쏘고, 경공으로 하늘을 나르는 데 대해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치부해 버린다면 이미 그 사람에게는 문학이 아닌 '헛소리모음집'이 되는 것이다.
결국 무협이라는 장르는 '강호'라는 세계를 이해하고, 납득하는 독자들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인데, 그 독자층이 넓지 못하다는 것이 늘 안타깝다.
특히 이런 좋은 소설을 읽고 나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강호'란 세계를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무협소설을 읽으며 느끼는 이 기쁨을 보다 많이 공유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어렸을 적에 보았던 김용의 '영웅문'이 좋았던 것은 무협의 세계관을 잘 이해시켜줬기 때문이다.
금강의 '절대지존'이 좋았던 것은 실타래처럼 꼬인 현실을 읽는 순간 만큼은 전복시킬만한 대리만족을 주었기 때문이다.
좌백의 '대도오'가 좋았던 것은 식상할 대로 식상한 구무협의 틀을 깨고도 남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산의 '대사형'이 좋았던 것은 강호인도 감정이 흐르는 인간이란 걸 느끼게 해줬기 때문이다.
설봉의 '산타'가 좋았던 것은 작가의 노력이 무협소설의 가치를 격상시킴을 느꼈기 때문이다.
장경의 '빙하탄'이 좋았던 것은 '강호'를 약간은 피상적으로 바라보던 나에게 강호의 비정함과 그속에서의 많은 아픔들을 재인식시켜줬기 때문이다.
임준욱의 '촌검무인'이 좋은 것은 용대운이 '군림천하'에서 언급했듯이 한없이 무정한 듯 보이면서도 따스한 정이 있는 곳이 강호라는 것을, 그 곳도 인간이 사는 곳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사실 임준욱의 작품을 읽고 나서 다소 헷갈리는 것은 이 작품이 주는 기쁨이 내가 가슴에 '강호'를 담고 살기에, 그곳에서 좀처럼 발견하기 어려운 유정함을 발견하기에 기쁜 것인지, 아니면 장르문학으로서의 뛰어난 작품을 접했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물론 필력이 뛰어나기에 '유정함'을 나에게 인식시킬수 있었겠지만, 강호란 세계를 처음 접하는 독자는 어떨까. 이제 막 강호의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그들에게도 나같은 간접체험을 할 수 있는 감성이 우러나올 수 있을까? 무공에 대한 몰이해로, 장풍과 검기에 대한 거부반응으로 글속에 면면히 흐르는 감성들을 놓쳐 버린다면 그보다 안타까운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좋은 작품을 읽고 나면 늘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좋은 작품을 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지 못할까. 이처럼 노력하는 데 왜 인정받지 못할까.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강호'를 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세계가 너무나 매력적이고 멋지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이 보석같은 작품들을 좀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했으면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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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검무인의 감상을 쓴다는 것이, 처음 올리는 글이라 무협에 대한 개인적 소견들이 마구 뒤섞여 버린 점 읽는 분들께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촌검무인'이 워낙 인기가 좋은 탓인지 벌써 앞에 3개쯤 있었으니 글에 대한 촌평이 짧았던 것은 이해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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