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시하
작품명 : 윤극사 전기
출판사 : 청어람
이 작품은 소위 `집어 던져지고`, `찢어 버리고 싶으며`, `반도 안 보고 반납 되는`그런 소설일 수 있다.
주인공은 매사에 소극적이고 너무도 순수하며 선하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약한가 하면 그렇지 않다. 소설 속 주인공 윤극사는 권능을 지니고 이적을 행하는 신에 필적하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여기에는 무협적 재미의 골자인 호쾌한 활극이나 미녀들과의 애정 행각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독자는 더욱더 답답하다. 그토록 강한 신적인 존재가 매번 당하기만 하고 그 어떤 이득이 없으니 어찌 속이 터지지 않겠는가.
거기에 더하여 소설의 뼈대조차 무엇인지 모호하다.
어느 순간엔 의원인 주인공을 보다 어느 순간에는 검을 들고 심지어는 황제 되겠다고 한다.
독자는 시종일관 몽환적인 시선으로 주인공과 동화되지 못한 체 방관자가 되어 끌려 다닌다.
답답하고 속상하고 가슴 졸이는 장면들이 반복되며 어느 하나 통쾌하게 독자를 만족 시키지 않는다.
또한 고어체의 문체, 근자의 학생들에게는 낯선 한문학적 문장이 눈에 띄게 많다.
이는 근자의 대여점 위주의 장르 소설 시장상 조기 종결이나 반품될 운명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으나 다행히도 8권 완결로 무사히 출간되었다.
그러나 이것만이 전부라면 무엇 때문에 많은 문피아의 무협 애호가 여러분이 그토록 극찬을 하였을까.
이 작품은 본디 대여점의 1회용 심심풀이로 소화되는 그게 그거인 여타 청소년용 무협 소설과는 기획부터 달리한다.
작가는[저는 우리들의 삶이라는 것에 뿌리를 두고 생명과 운명, 사랑과 우정, 그것을 주관하는 절대자와 자기 자신에 대해 다뤘으면 했습니다.]라고 작품 후기에 말하고 있다.
우리네 삶의 질곡 그 모든 것과 심지어는 절대자의 모습까지...이런 광대한 주제는 일단 접근부터 난해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무협지 따위...’혹은 ‘무협지를 무슨 생각하고 보냐,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지’라고 말하는 소위 ‘섹스와 폭력이 가득한 마초들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무협지'에 과감하게 우리네 삶과 그를 주관하는 절대자에 대한 이야기를 아름답고 부드러운 문장으로 이야기 하기 시작한 것이다.
작품 속 갈등의 시작은 무림 세력들 간의 분쟁이나 주인공 개인의 사무치는 복수심이 아니라 제세의원과 백초곡의 대립인데 이는 제세의원의 인간 본연의 애정과 관심으로서 이루고자 하는 인간의 구원과 백초곡의 현대 문명의 원천인 석유 공학을 통한 이기(利器)들을 활용한 인간 생활의 이로움으로 인한 구원이라는 목적을 둔 양 세력 간의 대립이다.
갈등 구조 자체부터가 인간사 진정한 구원의 의미를 우리에게 묻고 있다. 편리한 문명의 이기를 통한 산업 혁명으로 각종 고난을 풀어 인간의 구원을 이루는가 혹은 인간 본연의 애정으로서 세상을 구원하게 할 것인가?
윤극사는 이런 대립의 전면에 서 있는 입장으로서 백초곡에 의해 사부와 사형들을 모두 잃고 복수를 다짐하건만 적극적인 대항(무협적인 뼈와 살을 분리하는 활극)이 없을뿐더러 후에는 백초곡의 목적과 그들의 대의(大義)에 대하여 이해하려는 모습마저 보인다. 작품은 윤극사와 백초곡의 대립을 통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아우르는 광의(廣義)로서의 사랑과 풍요로운 물질로 이룬 삶의 편리(便利)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당신들은 무엇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절실하다고 생각하는가?’
윤극사는 그의 부인 이영과 함께 세상이라는 거칠고 너른 바다 위에 의원이라는 작은 배에 의존하여 위태하게 항해하게 하며 전쟁으로 피폐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자신들의 누이와 아내의 정조를 한 줌의 군량미와 바꾸는 빈곤하고 비루한 그네들의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원수를 사랑하여 그를 속이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모녀의 비틀린 애정의 그 어찌할수 없는 애절한 사연과 그 과정에서 사소하게 흩어지는 한 두, 사람의 목숨에 숨겨진 절절한 인생사 까지...온갖 인간사 오욕칠정의 비, 바람에 휩쓸리고 표류하며 윤극사와 이영은 인간을 알고 그네들의 세상살이를 알게 된다.
그 여정은 점차 절대적인 존재로 화(化)해가는 윤극사로 인해 무척이나 순조로울수 있겠으나 작가는 윤극사에게 오욕칠정을 지닌 범부로서의 인간적 순수함을 끝까지 놓지 않게 하기에 그의 여정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결국 절대자로서 옅본 애처(愛妻)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위태하게 흔들리는 의원이라는 조각배를 버리고 날카로운 검을 들고 절대자로서의 자신을 자각하며 좀 더 능동적인 자세로 세상에 나서기 시작하고 결국 절대의 존재에 대해 자각한 그는 백초곡과 그들의 새로운 이상 국가인 유리 광국, 그리고 ‘푸른 달빛의 계곡속’에 넣어둔 자신만의 이상 국가를 뒤로 하고 마지막 선택을 한다.
본 작품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이 빼어난 작품을 내 가슴속에만 묻어두기에는 너무도 아까워 그 즉시 자판을 두들기며 감상을 적어 내렸다.
허나 감상을 쓰면 쓸수록 작품의 감동이 흐려지며 흩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몇 번을 고쳐 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다 점차 그 감동을 잊어가면서 감상에 대한 열망도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잊고 있던 근자에 시하님의 새로운 신작인 [무제본기]가 서운한 종결을 맺었고 다시금 연재하는 [윤극사 본기]에 대한 추천과 감상을 보자 잊고 있던 그 열망이 다시 살아난 결과가 이것이다.
*. 본인에게 있어 [윤극사 전기]는 소장하고 있는 수백 권의 작품 중 몇 번이고 다시 보고픈 열망을 일으키는 소중한 작품이며 누군가 이 작품을 집어든다면 얼른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은 작품이라는걸 말한다는게 이토록 길어졌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꼭 구해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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