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오래전 일~~~
고등학교 시절 책상 끝머리에 걸쳐 교과서를 방패삼아 은밀히 돌려 읽던 그때!
한창 연정에 빠져 무림속의 협객이 되보고, 풍운남아가 되보기도 하고, 풍류공자가 되보기도 하던 그때 말이죠
김용의 전서를 모두 독파하고 허전해진 마음에 수능마저 어영부영 망쳐버린 그때.
지금 생각해도 그때만한 열정이 없었답니다. 후회가....
청강만리는 그 시절 열정이 사그라들때쯤 여름날 무심코 집어든 만화방에서 처음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생소한 이름인 왕도려.!
신파가 설치기 전..아 그러니까 신파라 함은 김용과 양우생, 와룡생, 고룡등을 일컫죠. 그러니가 그 작가들이 필력을 휘날리기전 세대의 작가라는 서문의 해설을 읽고 이거 울나라 박씨전등과 같은 고어체의 지루한 글이겠거니 생각했었죠.
총 15권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
청강만리의 몇가지 단편적 사견들을 이야기해보죠
사막의 대도 나소호와 옥교룡의 연애담이 1부를 장식합니다.
보통 무협소설의 특징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고 보면 옳겠지요.
하나는 영웅담 하나는 연예담
청강만리는 후자쪽이며 낭만이란 휴지로 현실을 대충대충 닦아내는 여타의
무협소설과는 그 근본이 틀리답니다.
혹독하리만치 냉정하게 현실을 반영하고 그 안에서 애정이란 소품이 이리저리 휘둘리고 좌절하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사막의 대도 나소호는 나름대로 제 세상에서는 부족할게 없는 사내죠.
하지만 옥교룡은 대부호의 딸로 역시 부족할게 없습니다.
나소호가 옥교룡을 알게 되고 그녀의 사랑을 얻고자 할때 현실이 브레이크를
걸어 버린다. 여타 다른 무협소설에서는 이럴 경우 영웅호한이라는 미사여구로
충분히 미녀를 얻을수 있겠죠. 하지만 청강만리는 나소호를 한낮 대도로 취급하며
도둑놈이 감히 대부호의 딸을??? 이라는 의문을 던지죠
그리고 두 사람의 애정전선에 태클을 걸어 버린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으니 바로 주인공들을 묘사한 부분이죠.
나소호는 그저 사내다울뿐 거칠고 세련되지 못했으며 옥교룡은 천하 어느누구도
반하지 않고는 못견딜만큼 절세의 미녀랍니다.
여주인공의 묘사를 놓고 보면 천편일률적인 무협의 미인계보를 잇는게 아닌가 생각되어지지만 그 성격면에서 작가는 비틀어버리죠.
기이하도록 파탄적인 성격! 그래서 어느 누구도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는
이상기가 철철 넘치는 성격!
쉽게 말해 현질적으로 대가집 규수라면 어려서 어찌 자랐을지는 뻔한법!
또한 여주인공만의 약간의 양념섞인 성격 설정을 곁들이니 참으로 납득할만한
성품이 탄생되어진게 아닌가 여겨지기도 합니다.
혹자는 옥교룡을 나소호와 비교하여 우위에 놓고 이것을 페미니즘이라 칭하기도
한다. 이 글이 쓰여진 연대를 보면 페미니즘이란 단어가 얼마나 혁신적인지를
실감하게 될것입니다.
소설은 3대에 걸쳐 장구하게 펼쳐지죠.
나소호와 옥교룡이 언해피엔딩으로 끝을 내고 그 바통을 그녀의 자식이 이어받게 됩니다.
다시 애정담이 펼쳐지고 뒤바뀐 운명의 두 남녀주인공이 끝내는 현실을 극복하고
결실을 맺는것으로 마감합니다.
한철방이던가?? 옥교룡의 아들네미...
청강만리는 읽고나서 참으로 지루했다라는 느낌을 떨쳐버릴수가 없었습니다.
그만큼 고어체의 투박함과, 한자체 그대로의 묘사등을 번역해버린 탓에 읽기가
신통치 않았음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죠.
하지만 15권을 모두 덮고 일어섰을때 마치 먼길을 돌아오며 힘들게 세상을 살아온듯한 아련한 느낌이 가슴을 잔잔히 적셔주는것만은 틀림없었습니다.
절세의 미남자가 기연을 수차례 반복하며 미인들을 줄줄히 낚아채어 이방에 모셔놓고 저방에 모셔놓고 밤마다 행복성을 터뜨리는 무협지를 읽고나서도 과연 이와같은
여흥이 남을것인가?
특별히 시간에 여유가 있고 또한 참을 인자 두어개를 가슴에 품고 사는 독자라면
한번쯤은 독파해봄직한 소설임을 알려드립니다.
잔잔한 여흥을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으리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문득 와호장룡의 원작 이야기가 어디선가 흘러나와 청강만리에 대한 단편적인 생각들을 몇가지 적어 보았습니다. 감상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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